다비드와 윤리위원장 사라폰티는 스티브의 정체를 마을 주민들에게 공지하기로 했다. 강간과 사기 전과가 있는 자가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일이 아닌가. 공지문은 다비드와 사라폰티의 공동명의로 발표되었다.

- 그동안 메로나 마을에서 말도 안 되는 의혹을 제기하며  메로나 마을을 어지럽히고 소란을 일으켰던 스티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스티브로 행세하는 자는 실제로는 가짜이며 그의 정체는 폭행과 강간을 저지른 전과 5범의 조나단입니다. 스티브와 조나단은 쌍둥이 형제이며 조나단은 그동안 스티브 행세를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스티브와 조나단의 본국인 영국의 런던 경시청에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가짜 스티브 행세를 한 쌍둥이 형 조나단은 마을 주민들에게 사죄하고 메로나 마을에서 즉각 떠나기를 바랍니다. -

공지문을 본 마을 주민들은 발칵 뒤집혔다.  여지껏 강간과 폭행을 저지른 전과5범이 메로나 마을에서 함께 거주했다는 자체가 너무도 충격적이고  끔직한 일이다. 마을 주민들은 스티브 행세를 하는 조나단에게 마을에서 즉각 떠나라고 아우성쳤다.  주민들은 다비드에게 조나단을 즉시 추방하라고 요구했다.

다비드와 사라폰티의 공지문이 발표되자  가짜 스티브였던 조나단과 알렉스를 비롯한 무리는 찍소리도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엘리스가 들여다보니 태고 대화방이 시끄러워졌다. 논란이 일자 잠자코 지켜보던 알렉스가  말했다.

"스티브가 조나단이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요. 사태를 관망하다가 다비드에게 치명타를 입힐 테니 두고 보세요. 우리에게는 다이아나의 사망이라는 히든 카드가 있어요. 다비드와 레이첼에게 지옥의 뜨거운 맛을 보여줄테니. "

가짜 스티브였던 조나단이 열흘간의 긴 침묵을 깨고 SNS에 글을 올렸다.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한 것이다. 

"나를 조나단이 아니라 스티브로 인정하고 한시적 체류 허가를 내준 것은 윤리위원회였습니다.  따라서 이는 전적으로 윤리위원회의 실수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조나단의 신분을 속이고 스티브 행세를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윤리위원회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 일입니다.  윤리위원장 사라폰티는 지금이라도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시인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사죄하고, 다비드 또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마땅합니다."

마을 주민들은 조나단의 파렴치한 주장에 치를 떨었다. 사기와 폭행 전과가 있는 자가 뻔뻔하게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끝까지  윤리위원회를  물고 늘어지고 있지 않은가. 정의감에 불탄  어거스틴과 가브리엘이 조나단을 향해 일갈했다.

"살다 살다, 별 지저분한 인간 다 보겠네. 잘못했으면 깨끗이 시인하고 물러날 일이지, 왜 이렇게 추잡하고 더러운 짓거리를 하는가? 뱀같이 사악하고 교활한 혀로 무책임한 말을 내뱉으면서   반성이라고는 눈씻고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는 후안무치한 인간 같으니라구." 

(출처 : PIXNIO)
(출처 : PIXNIO)

"커뮤니티 활동하면서 진작 알아보기는 했지만 조나단은 사람의 심장을 장식용으로 달고 다닐 뿐이며, 가학적이고 약탈적인 짐승의 심장을 지닌 자입니다. 뱀의 혀가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은 오른쪽과 왼쪽을 감지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조나단의 혀는 때에 따라 이 말 저 말을 갖다 붙이고 있으니 열 개의 혀를 지닌 사탄같은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조나단이 수세에 몰리자 알렉스가 가세했다. 알렉스의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윤리위원장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해야 합니다. 서류상으로 스티브는 메로나 마을 윤리위원회로부터 인정받은 공식적인 입주자입니다. 조나단이 스티브 행세를 했다해도 그것을 제대로 심사하지 못한 잘못은 입주자격을 심사한 윤리위원회에 있는 것입니다. 윤리위원장 사라폰티와 윤리위원들은 부실 심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해야 합니다."

알렉스는  조나단의 파렴치한 잘못을  윤리위원회의 실수와  잘못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주민들은 크게 동요했다. 조나단과 알렉스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지만 이들을 강제 추방할 방도가 없었다. 녹색운동 커뮤니티에 있는 회원들이 들고일어났다. 행복경시대회에서 7점을 받은 플랑코의 아내 올리비아가 나섰다.

"신분을 속인 조나단은 자숙하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강간과 사기, 폭행 전과가 있는 자가 메로나 마을에 버젓이  상주한다는 건 메로나 마을의 수치입니다. 즉시 마을을 떠나주세요."

그러자 조나단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나는 죄의 대가를 다 치른 사람입니다. 이미 다 지난 일이고 끝난 일입니다. 더구나 그 일은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이곳 메로나 마을에서는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없습니다. 향후 나의 전과를 들먹이는 자가 있다면 가만 두지 않겠습니다."

사태를 주시하던 레이첼은 조나단이 소시오패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소시오패스는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거짓말과 궤변에 능란하며, 자신의 주장에 편집증적인 집착 증세를 보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전혀 자아 성찰이라고는 눈꼽만큼도 할 줄 모르며, 타인의 인격이나 인권은 무시해도 좋다고 여긴다. 

그에 더하여 발란스키와 샤몽키츠가 기어이 폭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누구 사주를 받고 주제넘게 나서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밤길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앞으로 조나단의 전과를 들먹이는 자들은 명예 훼손죄로 고발할 테니 그리들 아세요."

이쯤 되면 거의 협박 수준이었다. 이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었다. 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이를 즈음에  메로나 마을 초기에 임시로 행정실장을 맡았다가 해임된 바 있는 지할퐁크가 조나단을  거드는 글을 올렸다.

"사람은 누구나 한때 실수를 저지릅니다. 지금 조나단은 과거의 일로 인해 메로나 마을에서 비인격적인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며 인권을 누구보다 앞세우는 메로나 마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

다비드를 비롯하여 윤리위원들 모두가 기겁했다. 아무리 임시직이지만 명색이 행정실장을 지냈던 자가 조나단을 비호하고 나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지할퐁크가 던진 발언의 파급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주민들이 지할퐁크의 발언에 흔들리고 있었다. 지할퐁크의 발언으로 면죄부라도 받은냥 조나단이 맘껏 활개를 치고 있었다. 

안개와도 같은 인생길 (출처 : Pixabay)
안개와도 같은 인생길 (출처 : Pixabay)

다음 날 다비드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은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니다.이번 사태도 곧 지나가리라. 그러던 차에 소피아가 얼굴을 붉히며 다비드에게 다가왔다. 마을 SNS에 올라온 글을 다비드 앞에 내밀며 말했다.

"다비드, 나에게 뭐 할 말 없어요?" 

SMS에는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스티브와 알렉스 일당이 새벽에 올린 글은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들이었다.

"다비드와 사라폰티가 오래전부터 불륜 관계였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한적한 숲길에서 다비드와 사라폰티가 정답게 손을 잡고 걷는 것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다비드는 사라폰티와의 불륜을 시인하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저런 부도덕한 자가 마을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은 수치스럽고 창피한 일입니다.한시라도 빨리 사퇴할 것을 촉구합니다."

다비드는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들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폰티와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간담회 겸 티타임을 가지며 마을 현안에 대해 논의할 뿐이다. 그 이상의 사적인 관계는 없었다. 소피아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소피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다비드!  묻고 있잖아요. 나에게 할 말이 없냐구요."

다비드는 어이가 없었다. 스티브와 알렉스 일당이 제기한 엉터리 의혹에 소피아가 넘어갈 줄이야. 의혹이라는 게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킬 줄은 몰랐다.

"소피아, 진정해요. 사라폰티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품은 적이 없다는 건 당신도 잘  알잖아요."

"그거야 모를 일이죠. 내가 당신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사라폰티를 만나는 건 사실이잖아요. 그러면서 정이 들었을지 누가 알겠어요?"

다비드가 구축해놓은 성이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조나단과 알렉스 일당이 노린 것도 이런 것일 게다. 

"어떻게 해야 나를 믿어줄 거요? "

"내가 당신을 못 믿어서 그러는 줄 알아요?  앞으로 커뮤니티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나가야 할지, 주민들 앞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야 할지 난감해서 그래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뭐하고 있었어요?  당신, 마을의 현자 맞아요?"

소피아가 다비드를 거칠게 몰아세우더니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휑하니 찬 바람이 불었다. 다비드의 마음에도 찬 바람이 일고 있었다. 근거 없는 낭설이며 모함이라고 밝혔지만 일단 불륜의 딱지가 붙은 이상 주민들은 다비드와 사라폰티를 볼  때마다 불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자신도 난감하지만 사라폰티는 어쩔 것인가. 사라폰티가 걱정이 되었다. 

사라폰티도 집에서 SNS에 올라온 글을 보았다. 사라폰티가 남편 차나드슈에게 물었다.

"당신도 내가 다비드와 모종의 썸씽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언제든 말해요. 당장 짐을 싸서 당신 곁을 떠날 테니까."

차나드슈가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 나는 한 번도 당신을 의심해본 적이 없으니 신경 꺼요. 누가 봐도 스티브와 알렉스 일당이 꾸민 모략질이 뻔한데 내가 거기에 넘어갈 사람 같소?"

사라폰티는 차나드슈의 다짐을 받으며 안심이 되었다. 뻔한 음모와 모략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생각은 의혹을 따라간다. 한번 제기된 의혹은 의혹으로 그치지만 연이어 반복해서 제기되는 의혹은 사람들의 뇌리를 장악하게 된다. 의혹의 당사자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정당한 해명조차 구차한 변명으로 치부될 것이다. 

 

생명을 가진 것은 무엇이든 죽는다.( 출처/ pixabay.com)  -  사이언스온 한겨레
생명을 가진 것은 무엇이든 죽는다.( 출처/ pixabay.com)  -  사이언스온 한겨레

그날 밤에  승세를 굳히려는 듯  조나단과 알렉스가 청천벽력같은 글을 올렸다.

"메로나 마을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이아나의 죽음에 대한 의혹입니다. 오스트리아의 폰 브라운 백작 가문에서는 다이아나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정황을 포착하였습니다.  이에 폰 브라운 가문은 나와 알렉스에게 다이아나의 죽음에 대해 조사해 줄 것을 위임한 바 있으며 이에 그 조사 결과를 일부 공개하겠습니다."

"다이아나의 죽음에 레이첼이 관여되어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으며,  다비드가 레이첼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레이첼과 다비드는 다이아나의 죽음에 대해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경찰에 자진 신고할 것을 권유합니다."

주민들이 발끈하고 일어섰다. 모함이라도 그 정도가 있는 것이다. 다이아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윤리위원회에서 법의학팀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아무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주민들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자 알렉스가 나섰다.

"다이아나가 사망한 날은 우파 단체인 검은태양단에서 다이아나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날 사망했을까요? 레이첼이 모사드의 사주를 받고 다이아나의 죽음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됩니다. 그 증거로 다이아나와 검은태양단에서 주고 받은 이메일 내용을 공개합니다."

알렉스가 공개한  이메일에는 다이아나가 검은태양단에게 거액을 기부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제 주민들은 조나단이 전과자였다는 사실보다 레이첼이 과연 다이아나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가에 관심이 쏠렸다. 이번에는 소피아가 나섰다.

"레이첼이 다이아나의 죽음에 관여되었다는 정황이 무엇인지 밝히기 바랍니다. 또한 그 배후에 다비드가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지 명확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알렉스가 즉각 답변을 올렸다.

"억울하면 고소하시든가요. 그러잖아도 폰 브라운 가문의 의뢰를 받고 레이첼과 다비드를 고소할 준비를 하고 있는 참이거든요. 다비드는 행복경시대회를 개최하여 슈만에게 9점 만점에 9점으로 최우수상을 수여했지요. 그게 바로 다비드가 관여했다는 정황입니다. 슈만의 최우수상 수상으로 다이아나는 자신의 부부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발설했고, 슈만은 갑자기 체코 대학으로 강의가 있다면서 출장을 갔습니다. 그리고 다이아나가 원인 불명으로 사망했습니다. 누군가 정교하게 짜맞춘 냄새가 나지 않나요? "

주민들은 조나단과 알렉스가 제기한 의혹을 믿지는 않았지만 레이첼과 다비드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었다. 레이첼은 다이아나의 죽음으로 인한 가장 큰 수혜자이다. 멋진 남편 슈만과 결혼했으며 다이아나가 남긴 거액의 유산도 상속받았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의혹인가. 주민들은 사태를 관망하며 레이첼과 다비드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레이첼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자들은 짐작한 대로 극우 조직과 연계되어 있었다. 신나치조직인 검은태양단과 다이아나가 주고받은 이메일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미 증명이 되지 않았는가. 갑자기 일격을 받은지라 레이첼도 한동안 당황스러웠다. 이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주민들보다는 슈만과의 일이 급선무다. 슈만이 시름에 잠긴 채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첼이 슈만에게 다가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슈만, 설마 저들이 제기한 얼토당토않은 의혹을 믿고 있는 건 아니겠죠?"

레이첼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질문을 했지만, 슈만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다정다감하던 슈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무겁고 어색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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