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작가를 사칭하며 레이첼이 다이아나의 죽음에 관여되었다고 주장하던 조나단이 살인범으로 체포되자 슈만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레이첼에게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상황이 복잡하고 혼미할 때는 명상에 몰입하는 게 좋다. 명상을 하다보면  여러 갈래로 엉크러진 실타래가 풀리며 한순간에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음악 명상보다 명상 호흡법이 더 효과적이다.

478 호흡법으로 깊은 명상에 잠긴 슈만은 마음의 평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4초동안 코로 숨을 들이쉬고, 7초동안 숨을 참고, 8초동안 입을 오무려 천천히 숨을 내쉰다.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이완되면서 잡다한 상념과 잡념들이 사라지고, 곧이어 맑은 정신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몇 번을 거듭하여 호흡에 집중하다 보니 슈만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세상 만사가 저 멀리 물러가고, 삼라만상이 안개처럼 사라지면서  우주 안에 홀로 있는 자신의 모습만 지각되었다. 

어느덧 겉사람의 자아가 물러나고, 중간의 합리적인 마음이 나타나더니 그에 이어 속사람의 자아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속사람안에는 평상시 감지하지 못하던 슈만의 영혼이 고요한 가운데 슈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주의 숨소리가 들리고, 우주의 파장이 심장에 울려왔다. 고요한 가운데 가슴 속에 깃들어있던 깊은 내면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그대는 레이첼의 어떤 점이 좋아 결혼에 이르렀는가. 지금은 또 레이첼의 어떤 점이 마음에 걸리는가. 레이첼의 예쁘고 영리한 것만 사랑한다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레이첼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어두운 부분까지 품어줄 수 있어야 그것이 사랑이 아니겠는가. 

슈만이 레이첼에 대해 생각을 집중하고 있을 때  내면의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 과거의 아내였던 다이아나에 대해서는 어떤 점이 끌려서 결혼했는가. 결혼 후에는 어떤 점이 싫어서 다이아나를 멀리하고 냉대했는가. 이 모든 게 오로지 다이아나 탓인가.  그대는 아무 잘못이 없는가. 모든 게 다 '내 탓'이라는 걸  정녕 깨닫지 못하겠는가.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슈만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젊어서 다이아나의 우아함에 반해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이 불행했던 것은 누구 때문이었는가. 슈만은 그 원인이 다이아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고집스럽고 오만하며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다이아나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럴까. 슈만 자신에게는 원인이 없었을까. 이제 보니 자신도 다이아나와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다이아나의 우아함은 부와 명예로 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부와 명예를 지닌 여인은 자기도 모르게 오만과 편견을 지니게 마련이다. 결혼 전에 다이아나의 외모만 보고 다이아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 사람은 슈만 자신이 아니던가. 그래놓고는 결혼후에 다이아나의 단점만 보고 다이아나를 내쳤다. 결코 잘했다고 볼 수 없는 처사였다. 돌아보니 실로 무책임한 남편이 아니던가.

그때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다이아나를 죽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슈만 자신이라는 것을.  다이아나는 육체가 사망하기 전에 이미 정서적으로 기가 죽은 상태였다. 다이아나를 정서적으로 죽인 사람은 슈만 자신이었다.  다이아나가 검은태양단에 거액을 기부하려고 했던 것도 어쩌면 슈만 탓인지도 모른다. 다이아나와 깊은 정을 나누고 감미로음을 자아내는 부부 생활을 했더라면 기부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슈만은 다이아나에게 냉담했고 그녀를 방치했으며, 그로인해 다이아나는 죽음으로 내몰렸다. 다이아나를 죽인 건 슈만 자신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레이첼이다. 레이첼의 아담하고 귀여운 이미지에 끌려 결혼했다가 레이첼이 모함을 받고 궁지에 몰리자 이제 와서 레이첼을 내치려 하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슈만의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이 모든 사태의 보이지 않은 중심에 슈만 자신이 있었다.

슈만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어떤 소녀가 보였다. 소녀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어두운 구석에 홀로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소녀을 안아주고  위로해주려 다가가 그 소녀의 눈물을 닦아주자 소녀의 모습이 레이첼로 바뀌었다. 슈만은 레이첼 안에서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상처입은 내면 아이를 보았다. 어린 시절 유대인으로 자라면서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따돌림당하던 레이첼의 모습이 보였다. 그 열등감과 분노로 모사드에  지원하여 유대인 혐오조직과 맞서 싸우고 있는 여전사 레이첼의 모습이 보였다.

다이아나에게 냉담하여 다이아나를 죽게 만들더니 이제는 레이첼에게 냉담한 자신을 돌아보았다. 다이아나를 죽음으로 몰고, 이제 레이첼마저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다. 레이첼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이상 검은태양단의 타깃이 되어 어느날 살해당할 수도 있다. 아! 생각해보니 레이첼이 아니다. 검은태양단에게 제공될 예정이던 다이아나의 거액을 상속받은 사람은 슈만이다.

레이첼보다는 슈만 자신이 검은태양단의 블랙리스트 1호에 올라있는지 모른다. 자신만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레이첼을 살려두면 슈만의 자산을 레이첼이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에 레이첼도 죽일 것이다. 그러고보니 자신과 레이첼은 말 그대로 공동운명체이다. 잘못하면 한 날 한시에 검은태양단에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출차 ; Pixabay)
(출차 ; Pixabay)

슈만은 화들짝 놀라며 명상에서 벗어났다. 레이첼과 화해해야 한다. 레이첼을 용서하는 차원이 아니다. 용서를 구할 사람은 슈만 자신이었다. 다이아나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레에첼에게 속죄하며 다가가야 한다.  아침 일찍 따뜻한 차를 마시며 마음을 추수린 슈만이 레이첼에게 죄진 자의 심정으로  참회하듯이  말했다.

"잠시 마음이 흔들려 당신을 의심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겠소. 주님은 구름을 타고 오시고, 악마는 틈을 타고 온다고 하던데, 내가 바로 그 짝이 났나 보오. 나를 용서하고 받아줄 수 있겠소?"

슈만이 계면쩍어하며 사과하자 마음이 풀어진 레이첼도 슈만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진실과 의혹이 뒤섞여 난무하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분별력을 잃기 쉽지요. 슈만!  나에게 돌아와줘서 고마워요."

슈만과 레이첼은 서로가 다시 없는 귀한 존재임을 깨닫고 뜨거운 포옹을 했다. 꽃같이 감미로운 부부생활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둘은 잃었던 신뢰와 애정을 회복할 전기를 마련했다.

조나단이 체포되자 메로나 마을은 일시적인 정적 상태에 빠졌다. 주민들은 이것으로 사태가 종결되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알렉스를 비롯한 무리가 조용히 물러날 것 같지는 않았다. 엘리스는 이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알렉스가 궁지에 몰리면 어떤 돌발적인 행동이나 극단적인 행동에 나설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월식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월식이 다가올수록 알렉스는 광기어린 행동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초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불던 날 저녁 윤리위원 카포팅어가 사라폰티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날은 월식이 예견되어 있는 날이었다.

"월식이 일어난 후  마을에서  사망자가 나올 겁니다. 그로부터 그 사망자는 10시간 이내에 소생할 것입니다. 그 사망과 소생에 알렉스가 관여되어 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질 것입니다. 이것을 메시지로 보내는 이유는 후일의 증거로 삼기 위함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을 다비드와 공유할지 여부는 알아서 판단하기 바랍니다."

사라폰티는 다비드와 이 메시지를 공유했다. 카포팅어는 의학박사 출신이다. 장난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낼 사람이 결코 아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카포팅어만이 알고 있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지난번 긴급 윤리위원회에서 카포팅어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나중에 보고할 게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다비드와 사라폰티는 긴장한 채 하룻밤을 지새웠다. 과연 카포팅어 말대로 누군가 죽은 후에 부활하는 일이 일어날까. 다음날 아침이 되자 과연 간밤에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망자는 딜마다드였다. 딜마다드는 월식을 구경하러 산책 나갔다가 들어가는 길에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으나 바로사망했다고 한다. 그 후 새벽에 달마디드가 다시 살아났다. 그 소생에 알렉스가 관여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소생시켰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다비드는 세 번째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이번에는 윤리위원장 사라폰티와 레이첼, 둥가돌프 외에도 윤리위원 카포팅어를 증인으로 참석시켰다.

거두절미하고 다비드가 카포팅어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줄을 미리 알았는지,  알기 쉽게 설명해주면 고맙겠소."

"우선 2년 전 겨울, 태고 마을에서 월식이 일어날 때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메로나 마을의 한시적 체류자인 샤몽키츠가 태고 마을에서 죽었다가 알렉스 덕분에 다시 살아난 케이스라는 것도 알고 계시는게 좋겠습니다."

다들 이 설명만으로는 납득이 잘 안되었다. 카포팅어가 말을 이어갔다.

"이번 일이  알렉스에게는 세 번째 일어나는 일이지요."

"그럼 첫 번째 사례가 또 있었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4년 전 겨울 알렉스가 독일 작센주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처음 발생했습니다."

"2년 주기로 일어나는군요. 그때도  월식이 있었나요?"

"그렇습니다. 또 다른 한시적 체류자인 발란스키가 작센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지요."

 

                                                                             (출처 : PxHere)

 

다들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그럼 알렉스가 월식 때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흑마술이라도 시술한다는 겁니까?"

"알렉스가 한때 흑마술에 관심을 보인 건 사실입니다.  보다 자세한 건 생명공학 기업체인  '휴바콤'에서 조사 중에 있으며,  그 분야의 전문가인 아그팡힐 박사에게 정식으로 자료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중요한 건 알렉스 이전에도 이와같은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알렉스는 13번째 사례라고 알려져 있어요."

"알렉스 같은 자들은 전염으로 발생한 겁니까, 아니면 유전으로 인한 겁니까?"

"알렉스처럼 타인을 죽였다가 살리는 사람들을 휴바콤에서는 '드라큘라 - 좀비 증후군'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약칭으로 '드좀증'으로 부르겠습니다.  드좀증은 전염도 아니고 유전도 아닙니다.  휴바콤에서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었다가 소생한 사람들은 자기를 살려준 사람의 정신적 노예가 된다는 거지요. "

"좀비처럼 살게 된다는 말이군요. 어떻게 죽였다가 소생시키는지는 파악되었나요?"

"알렉스의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알렉스는 월식이 되면 몹시 흥분 상태에 빠져듭니다. 그 상태에서 자기가 주시하고 있던 인물을 골라 월식이 있는 날 그의 목을 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목을 뭅니다. 목을 물린 사람은 12시간 이내에 목숨을 잃게 되지요."

"그랬다가 어떻게 죽은 자를 살린다는 겁니까? 딜마다드는 어떻게 다시 살아난 겁니까?"

"알렉스는 죽은 딜마다드의 입에 자신의 타액을 흘려 넣었습니다. 알렉스의 타액이 달마다드의 입으로 흘러 들어간 지 3시간 후에  딜마다드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타액으로 말할 것 같으면, 평상시의 타액이 아니라 월식을 맞아 드좀증이 재발한 알렉스에게 생성되는 특유한 호르몬이 가미된 타액입니다. 샤몽키츠와 발란스키도 그런 방식으로 죽었다가 살아났지요."

다들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알렉스는 그동안 메로나 마을 주민들을 선동하고 다비드와 윤리위원회에 대한 음모와 모함을 일삼던 자였다. 그런 알렉스가 얼마 전에는 검은태양단의 일원으로 신나치조직에 속해 있다고 밝혀 주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자신 안에 있는 괴물성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연 인간일까, 괴물일까. 다들 궁금증과 더불어 뭔가 모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다비드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형태의 괴물이 등장한 셈이군요. 칸 영화제에서 <티탄>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우리를 구분짓고 가두는 규범이라는 벽을 밀어내는 무기이자 힘은 괴물성이다'라고 말한 바 있어요. 혹시 알렉스는 지구 위기와 더불어 멸종해가는 인류를 표상하는 일종의 표본이 아닐까요?" 

그러자 레이첼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인류의 몇 퍼센트는 신경섬유종증이나 에드워드 증후군처럼 태생적으로 희귀병이나 기형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통계가 있긴 해요. 뒤쿠르노 감독의 영화 <로우>를 보면,  주인공이 수의학대학의 신입생 신고식에서 토끼 생간을 먹고 난 뒤 끔찍한 피부 발진을 경험하며, 식인본능에 눈을 뜨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요."

"그런데 알렉스는 왜 하필이면 월식 때마다 드좀증이 도지는 걸까요?"

 카포팅어도  확신하지 못한다는 듯이 답변했다.

​"개기월식을 블러드문(blood moon)이라고 부르지요. 고대 그리스에서는 블러드 문으로 불리우는 붉은 달이 뜨면 티탄족의 여신이자 주술과 마녀의 신으로 알려진 '헤카테(Hekate)' 여신이 저승의 개를 몰고 지상을 누비면서 저주를 퍼뜨린다는 전설이 있었지요."

(출처 : Pixabay)
(출처 : Pixabay)

 

"그리스 신화로만 본다면 알렉스는 헤카테 여신의 저주로 드좀증에 걸린 셈이네요. 블러드문의 저주가 과학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요?"

"블러드문을 불길한 징조로 여길만한 과학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달빛이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보고가 있었지요.  달의 움직임에 따라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수치가 달라질 수 있으며, 이러한 수치 변화가 인간의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지요. 알렉스가 걸린 드좀증의 경우도 표본 집단이 더 많이 생성되면 그때 과학적인 분석이 가능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둥가돌프가 긴급 발언을 했다.

"조나단의 구속으로 입지가 좁아진 알렉스가 좀비들을 동원하여 과격 행동에 나설 우려가 큽니다.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가 관건입니다.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든가 무슨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들은 영화에서 나오는 좀비들과는 다릅니다.  원시 고대 사회에서는 그 당시 한때 창궐했던 좀비들을 처리하기 위해 죽은 시신을 조각조각 절단하여 재를 뿌리거나 불로 태우는 방법을 썼으나 지금은 문명시대입니다.  현재 이들은 정신적 좀비들로서 문명 세계에 맞게 진화했기 때문에 그들을 처리하는 방법도 문명세계의 법도에 따를 수 밖에 없지요. 정신적 좀비들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과거의 행적을 조사하면 그들을 법적으로 구속시킬 죄악을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레이첼은 문득 '절규'로 유명한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가 떠올랐다. 

"뭉크는 자신의 가족 핏줄 속에 마치 원죄처럼 병을 부르는 기질이 있다고 여겼어요. '나는 아버지에게 광기의 씨앗을 물려받았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공포와 슬픔과 죽음의 천사들이  내 곁에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지요.혹시 알렉스도 그런 광기를 물려받은 건 아닐까요?"

카포팅어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신의 뜻으로 저주받은 몸이 되었다는 중세 시대의 믿음은 터무니없다는 걸 우선 말씀드리겠습니다. 뭉크의 경우 어렸을때 모친이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누나 소피도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었으며, 남동생 또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폐렴으로 사망하였고, 여동생은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지요. 뭉크는 자신이 저주받은 피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었습니다만 그는 저주받지 않고 81세까지 살았습니다."

사라폰티는 얼핏 최근의 기사가 떠올랐다. 독일 <슈피겔>의 보도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에 대한 선거구민들의 지지율과 코로나 감염률 사이에 매우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지요. 극우 성향을 지닌 자일수록 바이러스 감염률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알렉스도 극우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드좀증 바이러스에 취약한 게 아닌가 하는 추정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카포팅어가 심각한 표정으로 답변을 했다.

"<슈피겔>의 보도를 봤습니다. 그럴 가능성을 두고 아그팡힐 박사도 연구 중에 있습니다. 중요한 건 좀비들이 월식을 지나면서 더욱 과격해지는 성향이 있다는 겁니다. 태고 마을의 경우를 보면 당시 발란스키와 샤몽키츠가 알렉스의 사주를 받아 마리앙팡 여사의 지지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전례가 있습니다."

둥가돌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알렉스 일당이 조나단의 구속으로 한풀 기가 꺾이긴 했지만 아직까지 마을 기금을 탐내고있는 걸로 보아 다비드와 재무처장 머거본디에게 위해나 협박을 가할 우려가 있습니다. 금일부로 신변 보호를 한층 강화할 예정입니다." 

그러자 레이첼이 의문을 제기했다.

"휴바콤같은 기업체에서 드좀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할 가능성도 있어요. 희귀병 치료제라든가 백신 개발을 위한 실험용으로 말이죠."

카포팅어도 애써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체의 생리상 그럴 수도 있겠지요."

다비드는  마을 보안에 철저를 기하고 향후 시 당국과 협의하여 경찰청에 협조를 구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다비드와 둥가돌프가 마을의 안전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을 때 엘리스도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행동대장 노릇을 하던 조나단의 구속으로 알렉스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태고 마을에서 그랬던 것처럼 메로나 마을에서 주민들을 선동하고 음모와 모략질로 마을을 장악하려던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알렉스가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월식때 딜마다드를 죽였다가 다시 살리지 않았는가. 

사태를 주시하던 엘리스에게 메시지가 떴다. 알렉스에게서 온 것이다.

"이제 마지막 행동 개시를 해야 할 시점이요. 1차 타깃은 다비드와 머거본디이고, 2차 타깃은 레이첼과 슈만이오.  행동 개시할 시점은 추후 통보할 것이니 그리 아시오."

엘리스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행동 개시할 시점을 알려주겠다고 했으나 미리 움직이고 사후에 알려줄 가능성이 높다. 다비드와 머거본디는 둥가돌프 보안팀이 철저히 보호하겠지만, 레이첼의 경우는 사각지대이다. 알렉스가 레이첼 부부를 어떻게 처리할 지는 예측 불가이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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