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하는 형용 모순의 시대(1)

준보 아버지의 넋두리

저녁 먹고 마당의 모깃불이 사윌 즈음이면 그 소리가 들렸다. 신작로에서 고샅길 누비면서 허공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준보네 아버지! 지금도 깡마른 체격에 허리 궤춤 추스르면서 삿대질하던 모습이 삼삼하다.

그분은 그렇게 밤만 되면 동네방네를 휘젓고 다녔다. 술 한 잔 드셨다 하면 위아래가 없고 니집 내집이 없었다. 어찌 보면 동네에서 내놓은 악바리였다. 신작로 옆, 샘이 딸린 길갓집 탓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분의 귀착지는 늘 우리집이었다. 대문도 없으니 여닫고 할 것도 없는 초가다. 20여 호 남짓한 조그만 동네다. 할머니는 그가 언제쯤 들이닥칠지 훤히 알고 계셨다. 동네 어귀가 떠뜰썩해지면 이미 등잔불을 끄고 문고리를 거셨다. 가뜩이나 무섬증이 많은 나는 동생이랑 이불 속에서 숨을 죽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분은 마당에 들어서면서 일장 연설을 했다.

한 많은 세상사 어린 내가 어찌 알까마는, 지금 생각하면 가진 것 내세울 것 없이 맨손으로 살던 민초들의 넋두리였으리라.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인공(人共 : 인민공화국) 때 순사들에게 잡혀가서 모질게 당했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머슴을 살면서 새경(‘사경(私耕)’이 변한 말로, 머슴이 한 해 동안 일하고 주인으로부터 받는 품삯)을 받아 제법 넉넉하게 살았는데, 노름빚에 넘어갔다는 말이 들렸다. 당시에는 놉을 팔아 연명했는데, 그나마 벌이가 시원찮아 나환자촌인 ‘칠거지골’까지 가서 계란이랑 방비를 받아다가 오일장을 돌아다니던 장돌뱅이 아저씨로 기억한다.

그분은 건뜻하면 할머니 손을 잡고 자기 말 좀 들어보라고 했다. 그날도 ‘매씨’를 연발하며 평상에 앉아 술 한 잔 달라고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참다 참다 망단(望斷)한 할머니가 ‘삼학’ 소주를 한 ‘고뿌’ 건네주면 단숨에 주욱 들이키고 군말 없이 가셨다. 이튿날 아침 어김없이 똥장군을 지고 밭으로 가던 준보 아버지! 5학년 무렵에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들렸다. 사람들은 급살을 맞았다고 혀를 찼다. 이렇다 할 밭뙈기 하나 없는 처지라, 준보 큰형이 아버지를 가마니에 둘돌 말아 지게에 지고 밤중에 남산 어딘가에 묻었다고 했다. 그 뒤로 준보네는 군산 어딘가로 야반도주를 하고, 입때껏 나는 준보를 만난 적이 없다.

초가집(출처 : Wikimedia Commons)

 

60년쯤 전에 있던 이야기다. 갑자기 왜 준보 아버지인가? 술만 취하면 늘어놓던 푸닥거리 때문이다. 다른 말은 전혀 기억에 없다. 말하는 사이사이 되풀이해서 내지르는 말이 있다. 아직껏 귀에 쟁쟁하다.

“말이 아니면 하지덜 말고, 질이 아니면 가지덜 말어. 이 잡놈들아!”

나는 그분이 내지른 ‘잡놈’이 누구인지 모른다. 또, 그 ‘잡놈’이 그분을 골수에 사무치도록 뼈저리게 한 ‘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민초들의 한은 엄연히 존재하고, 그 한을 풀어주지 못할 때 ‘그분’의 넋두리는 응어리가 돼 정처 없이 팔도를 유랑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장부일언중천금(丈夫一言重千金)이라고 했다. 장부라면 천금을 줘도 말을 바꾸지 말라는 뜻이다. 남존여비 사상에 찌든 옛말이지만, 대장부든 여장부든 사람이라면 한 입으로 두말하지 말라는 경구다. ‘그분’의 멍울을 치유하기는커녕 여기서 이말 하고 저기서 저말 하면 누가 그를 신뢰할까? 염치없이 사는 갈지자걸음뱅이와 다름없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시레베잡놈 소릴 들어도 싸다.

이기수 선생은 ‘팔도 고향론’(경향신문, 2021.12.09.)에서 “유난히 지역 연고를 입에 올린 이는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다. 그는 ‘호남의 손녀’ ‘충청의 딸’ ‘동작의 딸’을 자칭했고, 둘째 아들을 낳은 곳이라며 ‘부산의 어머니’라고도 했다. 그가 ‘팔도가 고향’이란 핀잔까지 듣게 한 말이다.”고 했다.

한편, 어떤 대선 후보는 선대위 첫 회의에서 “저는 충청의 아들이고 충청은 제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같은 날 재경 광주전남향우회 간담회에선 “호남은 마음의 고향”이라고 했다. 사퇴하기 직전에 대구에 가서는 “어려웠던 시기에 저를 따뜻하게 품어줬던 고향”이라 하고, 그다음에 가서는 “(코로나19) 초기 확산이 대구 아닌 다른 지역이었으면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또, 강릉 중앙시장에 가서는 “강릉의 외손이 여러분을 뵈러 강릉에 왔습니다.”고 했다. 이쯤 되면 지연과 연고를 조장하는 잔꾀가 선거 전략이란 당의로 포장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팔도가 고향’ 시리즈 2탄인 셈이다.

“대업 공부를 하려면, 생문방(生門方)부터 알아 두라. / 사문(死門)은 입구멍이요, 생문(生門)은 똥구멍이니라. / 입은 사문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못 하느니라. / 병(病)은 입으로부터 들어가고, 화(禍)는 입으로부터 나오느니라. /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라. / 천지 아구를 아느냐. 천지 입망을 찾으려면 생사문(生死門)을 알고서 공부해야 하느니라. / 목구멍 똥구멍이요, 먹고 똥 싸는 것이니라.”

증산도 도전(甑山道 道典) 11편 223장에 나오는 말이다. 요컨대 목구멍 똥구멍도 분간하지 못하는 주제에 팔도를 누비면서 추파를 던지니 꼴불견이다. 하여 진심으로 타이른다. ‘팔도가 고향’이라니 구차하지 않은가? 차라리 ‘나는 배달의 민족이다.’, ‘단군의 후손이다.’라고 하라. 반주가 없으면 밋밋할 테니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이란 노래도 한 곡 읊으라. 그러면 장삼이사(張三李四) 할 것 없이 모두 표를 몰아줄 테니 말이다.

 

위정자가 본을 보일 때, 백성은 그의 방책을 받아들이고 갈등은 해소된다. 반대로 본을 보이지 못할 때, 백성의 갈등은 심화하고 다툼은 격화된다.

그 결과 백성은 나락으로 고꾸라지고, 나라는 어지럽게 춤을 추게 된다. 중국•미제•일제에 빌붙어 대대손손 연명하던 역대급 사대주의자들과 그 잔당이 바야흐로 팔대지옥(八大地獄)에서 빠져나와, 오늘도 망령되이 여의도를 활보하며 역사를 거짓으로 도배하는 세상이다. 본을 보이는 정치가는 간데없고, 사특한 정치꾼의 야바위놀음이 판을 치고 있다.

‘신과 함께’가 그린 ‘거짓지옥’에서는 죄인이 죄에 대해 침묵할 때 혓바닥을 뽑는 처벌을 가한다. 하물며 자기 처자식도 믿지 않을 뻔한 거짓말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희번지르르하게 내뱉는 자라면, 일곱 지옥을 두루 헤매다가 ‘천고사막’에 묻혀 생매장을 당하고 남을 위인이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니, 참말로 대한 나라 귀신들 하품을 하고말고. 눈 한 번 끔벅거리지 않고 저토록 해괴망측한 거짓을 자행하는가. 대한민국을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온 나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저리도 당당하게 주먹질에 도리질에 가시 돋친 혓바닥을 날름대는가? 추깃물 뚝뚝 떨어지는 더러운 것들, 갈 곳은 발설지옥(拔舌地獄)뿐이다.

지옥은 땅속에 있는 감옥이다. 죄를 지은 중생이 벌을 받는 곳이다. 죽은 지 35일 되는 날 염라대왕이 심판하는 제5 지옥이다. 그림은 죄인을 형틀에 매달고 집게로 입에서 혀를 길게 뽑아내 몽둥이로 짓이겨 크게 부풀게 한 다음, 밭을 갈 듯이 소가 쟁기로 혀를 갈아엎는 등 처참한 고통을 겪는다. 입으로 짓는 죄악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를 일깨워 준다.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혼자가 아니다. 떼 지어 다니는 도적들, 비적(匪賊)이다. 이 말은 이른바 중국의 ‘국민정부’ 시대에 공산당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게릴라를 이르던 멸칭이다. 여기에서 비(匪 : 비적 비)는 남에게서 강탈한(非 : 아닐 비) 물건을 상자(匚 : 상자 방)에 담고 다니는 도적 떼를 일컫는다. 이를테면 비인(匪人 : 도둑놈), 공비(共匪 : 공산당 유격대), 비류(匪類 : 무기를 가지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사람을 해치거나 재물을 빼앗는 무리) 등과 같이 쓰인다.

활동 무대에 따라 도적을 달리 부르기도 한다. 산의 도적은 산비(山匪) 또는 산적, 바다의 도적은 해적(海賊), 큰 강이나 물가의 도적은 호비(湖匪), 지방의 도적은 토비(土匪) 또는 토적(土賊), 말을 탄 도적은 마적(馬賊)이다. 한편, 남의 농작물이나 훔쳐 가는 자질구레한 도적을 초적(草賊)•서적(鼠賊)•초절(草竊) 따위로 불렀다. 그러나 지배자의 압박과 수탈에 항거해 항쟁을 벌인 농민저항군 또한 초적(草賊)•적도(賊徒)·적배(賊輩) 따위로 칭했으니, 관점에 따라 도적의 명칭도 달라진 셈이다. 어쨌든 비적은 무장한 떼도둑이니 곧 비도(匪徒)요, 적비(賊匪)다.

 

오비(五匪)를 거느리는 그놈, 그놈을 추종하는 법비(法匪), 법비를 조종하는 의비(議匪)

 

돌이켜보면, 산비니 해적이니 호비•토비•마적 따위는 한 고을의 조폭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고작해야 한낱 남의 가옥이나 물품을 탐하는 서적(鼠賊), 그러니까 말 그대로 쥐새끼 같은 좀도둑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비적은 나라에서 쥐여 준 총칼로 백성을 난도질하는 병비(兵匪), 나라가 거덜 나든 말든 철밥통 차고 앉아 배때기나 두드리는 관비(官匪), 있는 것도 없다 하고 없는 것도 부풀리며 여론을 입맛대로 호도하는 언비(言匪), 입법이라는 가면 뒤에서 탈법을 구가하며 말끝마다 국가와 민족을 들먹이는 의비(議匪), 사랑과 자비 대신 증오와 저주를 일삼으며, 스스로 절대자를 자임하는 종비(宗匪) 등 오비(五匪)가 있다. 바로 이 다섯 비적을 부리는 난신적자(亂臣賊子 :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인 그놈들! 바로 쿠데타 세력이다. 문제는 나라와 겨레를 배반한 반역의 편에서 붓 한 자루나 세 치 혓바닥으로 도륙을 일삼는 무리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법을 악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무리, 곧 법비(法匪)가 그들이다. ‘그놈들’의 꼬붕이요, 밑딱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HBotJSrPjI출처 : 한겨레TV - 해방 70돌 특집 다큐, ‘법비사’ 고장난 저울… 

 

‘법’이란 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이자 모두가 공감해야 하는 이치가 아닌가. 물(水)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去)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법(法) 자다. 이는 공평하고 바르게 죄를 조사해 옳지 못한 자를 제거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악을 응징할 법이 도적과 결합하니, ‘법비’는 의미상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말이다. 말이 되고 말고는 애초부터 내동댕이친 지 오래다. 마적•토적•초적•산비•해비•호비 떼가 멋모르고 깨춤 추며 도처에서 발호한다. 그렇게 막돼먹은 ‘법비’를 추종하는 무리가 있으니 ‘의비’다. 노회한 ‘의비’ 곁에는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자들이 즐비하다. 썩은 생선에 쉬파리 끓듯 관비•언비•종비 떼가 날뛴다. ‘법비’를 필두로 굴비 엮듯 모사꾼 줄줄이 세워, 팔도를 누비며 세를 과시하는 무리들….

자. 이쯤 되면 누가 왕초인지 가릴 수가 없다. 겉으로는 ‘법비’를 추종하나, 실제로는 ‘법비’를 조종한다. ‘법비’는 지딴에 공정과 상식을 표방하지만, 꼭두각시놀음에 익숙한 ‘의비’의 눈엔 애송이에 불과하다. ‘종비’는 왕(王)자 부적을 떼어내고, 그의 손바닥에 성경책을 쥐여주며 바벨탑으로 안내한다. ‘언비’는 불공정과 몰상식으로 뒤덮인 그의 얼굴을 감추고, 전면에 대리인을 내세운 뒤 상대방을 ‘세금착취’, ‘검찰학살’, ‘국민등골브레이커’로 매도한다. 해묵은 서류를 들춰보며 ‘법대로’를 외치던 ‘관비’는 시계불알처럼 이쪽저쪽 기웃거리다가 이내 부동산과 증권 시황으로 눈을 돌린다.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이다. 이는 중국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에 나오는 말로, 고양이와 쥐가 한 곳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된 상황을 꼬집는다. 이 또한 ‘법비’와 ‘의비’, 나아가 ‘언비’와 ‘종비’가 한통속이 되어 나라와 겨레를 짓밟고 눙치는 신축년 대한민국의 단면이다.

 

'공감', '공정'은 특정인이나 특정 세대, 특정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지향할 가치 규준이다. 위는 '국민의힘 당원 교육 자료 6'에서 인용했다.

 

(계속)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춘근 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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