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교학회(大同敎學會) 취지서 – 이종만(1945)

4. 부강이 아니고 청빈을 이상으로 삼는 도덕 국가를 건설해서 공존공영의 미래세계를 선도하자

돌이켜 우리나라로 보면 36년간의 이민족의 굴레를 시원하게 벗어나서 이제 역사를 새로 바꾸는 때라, 모름지기 전 인류를 구제하리라는 큰 소망을 바탕으로 하여 독창적이고 남다른 국가를 건설할 것이요, 결코 옛것만을 답습하는 안일함에 빠지지 말 것이다.

대개 우리 민족이 혈통적으로 심히 우수하고 문화가 오래 되고 고상하여 능히 중국에 못 미칠 바 없으며, 신라시대에 이미 동아시아 사상을 모두 모으는 업적을 이루었고, 또 우리 민족의 지리적 조건이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문화산업 교류의 중심자리에 처하여 있으니 이 혈통과 이 역사와 이 지리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요, 겸하여 세계의 대 반성 대 개조의 이 시기에 다시 건국을 한다는 것에 깊은 하늘의 뜻이 담겨져 있음을 자각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국토가 넓지 않고 인구가 많지 않다고 해서 스스로 위축되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목적하는 바는 부강(富强)이 아니고 차라리 청빈(淸貧)이어니와 오직 도덕, 문화에 있어서는 단연히 모든 나라의 모범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해야 할 것이다.

힘이 의(義)’리고 하는 군국주의와 ‘부(富)가 의(義)라’ 하는 착취적 상업주의는 앞으로는 하늘과 아울러 인류의 양심이 용허하지 아니할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돕는 원리에 서서 공존공영의 인류세계를 건설하는 것이 앞으로의 인류의 이상이요 또 실천일 것이니, 그러므로 바야흐로 새로운 역사를 시도하려는 우리는 마땅히 미래의 세계를 앞서서 이끌어 나갈 것을 기약할 것이요, 이러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하늘에서 부여받은 품성을 발휘하여 인류가 발전해 나아감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목적하는 바는 부강이 아니고 차라리 청빈(淸貧)이어니와 오직 도덕, 문화에 있어서는 단연히 모든 나라의 모범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역사를 시도하려는 우리는 마땅히 미래의 세계를 앞서서 이끌어 나갈 것을 기약할 것이요, 이러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하늘에서 부여받은 품성을 발휘하여 인류가 발전해 나아감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는 것을 금할 수 없다. 이것은 해방 직후의 건국에 대한 얘기일 뿐만 아니라 오랜 분단에서 통일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있는 지금의 우리가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참으로 중대한 방향제시가 아닌가!

여기에서 말하는 “부강이 아니고 차라리 청빈이어니...”라는 말은 자본주의 진원으로 최강대국의 위치를 자랑하던 미국이 오늘날 도달한 도덕적으로 천박한 입장을 보면 그 길이 하늘의 품성을 들어내는 길이 아님을 절감한다.

부강한 나라가 아니고 청빈한 나라, 도덕의 나라, 문화의 나라를 세움으로써 군사 강국이나 경제 강국이 아닌 도덕 강국으로서 세계에 우뚝 설 수 있다면, 이것을 남과 북이 공동의 목표로 삼아 정의와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큰 길을 함께 열어나갈 수 있다면, 그럼으로써 ‘힘이 의(義)’라고 하는 군국주의와 ‘부(富)가 의(義)라’ 하는 착취적 상업주의에서 벗어나 서로 사랑하고 돕는 원리에 서서 공존공영의 인류세계 건설에 앞장서게 된다면, 그리고 이 길을 통해서 남북의 평화통일이 저절로 이루어져나간다면, 이는 우리 민족이 하늘에서 부여받은 순박한 품성을 빛내고 홍익인간 이념을 실현하면서 인류발전에 기여하는 천시(天時)를 맞은 것이리라,

우리 국민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이 길을 선택하려면 필히 대동사상의 함양과 생활의 실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이종만은 이어서 말하고 있다.

 

5. 종교적 진리를 일상 실행하는 것이 세계평화의 핵심

이에 기초가 되는 것은 교육과 산업의 개조이다. 교육에 있어서는 좁고 답답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편견을 버리고 보편타당성을 가진 진리를 기초로 하되 종교를 떠난 과학은 항상 개인에 있어서는 물욕의 도구, 국가에 있어서는 침략의 폭력을 이루기 쉬우니 자비, 인애의 근본정신 위에 선 과학이야말로 능히 인간생활을 이롭게 하는 본래의 성능을 발휘할 것이다.

산업도 종교를 떠날 때에 개인에 있어서는 물욕의 추구가 되고, 국가에 있어서는 침략의 동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니 세계가 최근에 경험한 전쟁의 비극은 실로 종교를 떠난 과학과 산업에서 온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 공자의 인의, 예수의 박애는 시대와 사람이 다를지언정 인류평화의 둘도 없이 유일한 새 생활원리이니 오직 이 원리의 실천만이 세계평화의 핵심이다. 세계의 평화는 결코 신통변화로 될 것이 아니요 진리의 일상실행이라는 평범한 경로로 실현될 것이다.

과학도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서 있고 산업도 그러한 세계야말로 정당한 질서의 세계일 것이다. 그렇다고 끼리끼리 모여 증오와 비방과 투쟁을 일삼는 종파 종교를 시인함이 아니요 순수한 종교의 출현을 희망하거니와, 아무리 퇴화한 종파라도 아주 없는 것 보다는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인류동포 세계일가’의 정신으로써 국민정신의 기조를 삼자!” 이 얼마나 차원 높고 혁명적인 주장인가! 편협한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벗어나서 세계를 한 가정으로 삼고 세계인을 모두 한 가족처럼 받아들이자는 이 이념은 궁극적으로 인류가 지향해 나가야할 대동평화의 길이지 않겠는가.

자기나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정당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겠으나, 이것을 넘어 상대와 전체의 이익을 함께 도모해나가는 길이 정의와 평화의 길임은 영성이 깨어있는 사람들에게는 자명한 일이다. 공존공영의 정신의 뿌리는 바로 대동의 사상과 깨달음에 있다.

종교적 신조와 진리를 떠난 과학과 산업이 결국은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고 전쟁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도덕과 종교적 진리의 일상생활 속에서의 실천만이 세계평화의 핵심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

이것이 이종만의 평화론이며 이를 위해 직장이 그 교육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의 평화론이 말로만 그치는 공허한 주장이 아니고 세상에 실현시키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 평화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에 따르는 실천이 없었기 때문에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평화의 길을 알면서 왜 그 길을 가지 않았을까? 아니, 왜 가지 못했을까? 그 길을 가로막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 편집자주 : 이 글은 이종만 선생의 외손녀  김반아 주주통신원이 쓴 글입니다. 

 편집 : 최성주 객원편집위원

 

김반아 주주통신원  vanakim777@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