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부의 깊은 자기 성찰을 촉구하며

교육과정 총론을 비롯해 2022 교육과정 전면 개정을 앞두고 공청회가 지난 10월 22일 열렸다. 교육부는 “국민과 함께 만드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우며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교육을 담당할 현장교사의 집약된 목소리엔 모르쇠로 일관한다.

왜냐하면 「전국 사회교사 교과모임」(약칭 전사모)에선 2019년 10월에 「시민」 교과를 개설하기 어렵다면 현행 「사회」 교과를 「시민」 교과로 명칭 전환을 전격 선언한 적이 있다. 민주시민교육을 추진하겠다는 교육부의 의지가 퇴색돼 가는 현상을 우려한 최후의 조치였다.

실제로 교육부는 2018년 1월 교육부 부서로 「민주시민교육과」를 정식으로 신설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 10월 <민주시민교육> 학술대회에서 축사를 하는 유은혜 교육부장관(출처 : 하성환)
2018년 10월 <민주시민교육> 학술대회에서 축사를 하는 유은혜 교육부장관(출처 : 하성환)

그리고 「민주시민교육정책 중점연구소」를 지정해 ‘민주시민교육’ 교육과정 개발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현재 「민주시민교육 정책중점연구소」는 민주시민교육과정 관련 3차년도 연구 과제를 수행 중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거기까지이다.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교육부의 초기 열정과 의지가 퇴색했다고 판단한 이유는 이러하다.

먼저 교육부는 ‘민주시민교육’을 학교현장에 뿌리내린다는 정책 하에 단기적으로 <통합사회> 교과 명칭을 <민주시민> 교과로 변경할 생각이었다. 현행 <통합사회> 교과는 고등학교 공통 필수교육과정으로 전국에 있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제공되고 있다.

미래엔 <통합사회> 교과서.  <통합사회> 교과는  사회, 윤리, 지리, 역사 교과가 융합된 형태의 교육과정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융합적, 창의적 사고를 함양하기 위해  통섭의 관점에서 기존 분과 학문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서술된 측면이 돋보인다.(출처 : 하성환)
미래엔 <통합사회> 교과서. <통합사회> 교과는 사회, 윤리, 지리, 역사 교과가 융합된 형태의 교육과정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융합적, 창의적 사고를 함양하기 위해 통섭의 관점에서 기존 분과 학문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서술된 측면이 돋보인다.(출처 : 하성환)

기존 분과학문의 단절된 교과과정이 아니라 사회교과와 윤리교과, 그리고 지리교과와 역사교과의 내용을 융합한 주제 중심 탐구교육과정으로 구성하였다. 따라서 시민성을 기르기 위한 ‘시민교육’의 관점을 좀 더 분명히 드러낸다면 훌륭한 <민주시민> 교과서로서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이번 공청회에서 교육부가 제시한 교육과정 시안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

다음으로 고등학교 사회탐구 일반선택과목을 무조건 1개 과목으로 교과목 구조 개편을 강행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올해 7월 27일 국가교육과정 개정 추진위원회의 ‘고등학교 교과목 구조 개편 권고문’ 결정에 따른 조치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하다. 현행 수능 탐구 일반선택 과목은 한국지리, 세계지리, 세계사, 동아시아사, 정치와 법, 경제, 사회문화,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총 9과목이다. 그런데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선 수능 탐구 일반선택 과목을 세계시민과 지리, 세계사, 사회와 문화, 현대사회와 윤리 총 4과목으로 압축했다. 학생들은 그중 1과목을 선택해 공부하고 시험을 치른다.

문제는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핵심 교과인 <정치와 법>을 일반선택과목에서 진로선택과목으로 비중을 낮춰버렸다. 그럴 경우 학교에선 더욱더 외면 받을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정치와 법> 과목은 수능 탐구과목으로 응시생 수가 3만 명에도 미치질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 현실에서 그마저도 진로선택과목으로 그 위상을 낮춰버리면 학생들의 선택을 받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상 ‘민주시민교육’을 포기한 조치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교육부의 열정과 의지가 심히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현행 <정치와 법> 과목을 공부하면 학생들은 민주정치제도와 헌법에 내포된 지식과 숭고한 가치를 접할 수 있다. 비록 적은 숫자이지만 전국 50만 수험생 가운데 3만 명이라도 <정치와 법> 교과를 통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식 통로가 있었다. 그렇지만 국가교육과정이 공청회 시안대로 2022 전면 개정될 경우, 학생들은 더 이상 이런 학습경험을 할 수 없게 된다.

한 마디로 그동안 확보한 최소한의 민주시민교육과정 내용요소마저 빼앗길 처지에 놓인다. 그동안 학생들은 현행 <정치와 법> 교과를 통해 민주정치사상과 민주주의 정치제도, 그리고 삼권분립과 헌법에 명문화된 기본권을 공부했다. 나아가 <정치와 법> 교과를 통해 형법, 민법, 사회법 관련 법 지식을 쌓았고 노동자의 권리를 학습했다. 이 모든 내용요소들은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지식과 가치를 담고 있는 귀중한 교육과정이다.

<통합사회>를 <민주시민> 교과로 명칭을 변경하여 민주시민교육과정의 요소를 더욱 풍부하게 담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아가 <정치와 법> 과목을 일반선택과목에서 배제하기보다 수능 필수과목화 하여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공식적인 학교교육과정을 통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 한다.

학교교육과정에서 <민주시민> 교과의 탄생을 촉구하며 2020년 6월 36개 교육시민단체 연대기구로 「학교 '민주시민' 과목 추진연대」가 출범했다. <민주시민> 교과를 개설해 <국어> 과목처럼 가르칠 것을 교육부에 제안한 바 있다. 사진은 2020년 8월 총회 당시 회의 장면으로 정면 오른쪽에 있는 분이 천희완 민주시민교육연구소장, 왼쪽에 있는 분이 홍승구 흥사단 시민사회연구소장이다. (출처 : 학교시민교육연구소, 김원태 소장 제공)
학교교육과정에서 <민주시민> 교과의 탄생을 촉구하며 2020년 6월 36개 교육시민단체 연대기구로 「학교 '민주시민' 과목 추진연대」가 출범했다. <민주시민> 교과를 개설해 <국어> 과목처럼 가르칠 것을 교육부에 제안한 바 있다. 사진은 2020년 8월 총회 당시 회의 장면으로 정면 오른쪽에 있는 분이 천희완 민주시민교육연구소장, 왼쪽에 있는 분이 홍승구 흥사단 시민사회연구소장이다. (출처 : 학교시민교육연구소, 김원태 소장 제공)

민주시민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100년 넘게 ‘시민’으로 길러지기보다 ‘국민’이기를 강요받았던 학교교육이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기보다 ‘순치된 신민(臣民)’으로 길러져 왔다.

세 번째로 중학교 사회 교과 내 일반사회 영역과 지리 영역을 분리하여 일반사회 영역과 도덕 교과를 통합해 프랑스처럼 <시민> 교과를 탄생시킬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2015년부터 초중고 모두 <도덕 시민>교과로 명칭을 통일시켜 공화국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0년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강민정 의원(열린민주당), 박찬대 의원(더불어 민주당), 권인숙 의원(더불어 민주당)이 공동 주최한 <학교민주시민교육> 관련 학술대회 장면. 김원태 소장(학교시민교육연구소)이 프랑스, 독일, 영국, 스웨덴을 비롯해 교육선진국에서 실천하고 있는 <시민교육>현황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출처 : 하성환)
2020년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강민정 의원(열린민주당), 박찬대 의원(더불어 민주당), 권인숙 의원(더불어 민주당)이 공동 주최한 <학교민주시민교육> 관련 학술대회 장면. 김원태 소장(학교시민교육연구소)이 프랑스, 독일, 영국, 스웨덴을 비롯해 교육선진국에서 실천하고 있는 <시민교육>현황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출처 : 하성환)

더 이상 교과이기주의와 분과학문이라는 단절된 학습 속에 학생들을 방치해선 안 된다. 그것은 대학 학과의 존속 여부, 나아가 교수, 교사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매우 예민한 사항이다. 그렇지만 국가교육과정을 어른들 기득권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재구성하려는 모습은 아이들의 인간적 성장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교육부 공청회 시안에서 미래사회 매래교육은 급변하는 과학기술사회 정보통신교육을 강화할 것을 제시하였다. 올바른 정책 판단이라 생각한다. 그럴수록 ‘민주시민교육’을 비례하여 강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시민교육’은 과학기술사회 정보통신교육의 나침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주시민교육’은 정보통신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학생들이 건강한 시민적 덕성을 간직하도록 가치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과학기술사회를 구실로 분별없는 정보통신교육을 강화한다면 이는 자칫 아이들을 공적 가치를 외면하는 ‘괴물’로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2 국가교육과정은 가장 우선하여 자라나는 아이들의 성장과 행복에 초점을 맞춰 구성해야 한다. 그렇게 구성된 교육과정이야말로 가장 교육적이고 학생의 성장을 진정으로 돕는 희망찬 교육과정이 된다. 우리는 그 길로 나아가야 한다. 아니 교육모순을 헤치고 전진해야 한다. 오늘날 ‘민주시민교육’은 21세기 교육계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깊은 자기 성찰을 촉구한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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