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 앞에 늘씬하고 관능적인 몸매의 여성이 해변에 누워 있었다. 그 여인은 남미 콜롬비아 출신으로 보였으며 야한 비키니 차림으로 요염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 여인이 마쓰다를 유혹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마쓰다를 향한 여인의 눈길이 보통 예사로운 게 아니다. 여인의 강열한 유혹에 마음을 빼앗긴 마쓰다가 넋 놓고 여인을 바라보자, 그 여인이 마쓰다의 애간장을 태우며 속삭이듯 말했다. 

"어서 와서 나를 안아줘요~!" 

그 말을 듣고 흥분한 마쓰다가 여인을 안으려고 다가갔다. 그러자 여인은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 갔다. 이상한 일이다. 마쓰다가 아무리 다가서려 해도 여인은 마쓰다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좀처럼 여인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자 마쓰다는 더욱 애가 탔다. 여인은 몽환적인 자태로 마쓰다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마쓰다는 애만 쓸뿐 그 여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이 여인이 나를 농락하고 있는 걸까. 

왜 그 여인에게 다가갈 수 없는지 의문이 드는 찰나에, '아! 이건 현실이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이런 꿈은 처음이다. 여름 지난 지가 언제인데 바닷가에서 비키니 입은 여인의 꿈을 꾼단 말인가. 이 꿈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개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마 간밤에 유흥주점에서 유럽이나 중남미 여성을 부를까 갈등하다가 동남아 여성을 불러 술을 마신 뒤끝일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여인을 콜롬비아 출신이라고 여긴 걸까.  어떤 술자리에서 누군가로부터 중남미의 콜롬비아 여성들이 아담하면서도 미모가 뛰어나 동양 남자들의 파트너로 적합하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같기도 하다. 그 욕망이 꿈속에서 표출된 것인지도 모른다. 

무료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8149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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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나타난 그 여인은 무척 관능적이고 매혹적이었다. 꿈에서 깬지 10분 정도 지났는데 아직까지 꿈속에서 본 콜롬비아 여인의 아리따운 자태가 눈 앞에 어른거린다. 간밤에 마신 술기운으로 머리가 아직도 띵한 상태이다. 냉수를 한 잔 마셨더니 그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출근을 하려는데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떴다.

"밤잠을 편히 주무셨는지요." 

엠마였다. 엠마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꿈에서 본 콜롬비아 여인의 섹시한 몸매가 떠오르며 엠마의 이미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럼! 편히 잘 잤어. 엠마도 잘 잤지?" 

"네. 덕분에요.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시면 차 한 잔 해요." 

마쓰다로서는 의외였다. 어제 하루 술집에서 파트너로 만난 여인이 다시 보자고 하는 건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수락하기도 멋쩍었지만 거절하기에도 명분이 없어 보인다. 

"그럴까. 가볍게 차 한 잔도 좋고 저녁 식사도 좋아." 

"감사해요. 시간과 장소는 따로 알려드릴게요." 

마쓰다는 출근해서 엠마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했다. 만나자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그저 호감을 표시하는 차원에서 차 한잔 하자는 걸까. 마쓰다로서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저녁 무렵 퇴근할 시간이 되자 마쓰다는 엠마가 지정한 장소로 향했다.  신주쿠 거리에 있는 음식점이었다. 음식점에 들어서니 엠마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요 ~!"

엠마가 마치 연인이라도 되는 듯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엠마는 어젯밤의 야한 차림새와는 달리 소박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래도 미니 스커트 사이로 드러난 각선미가 마쓰다의 눈길을 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식사를 하며 엠마는 일본 생활의 애환을 이야기했다. 고향을 떠나 돈 벌러 일본에 온 타향살이가 오죽하겠는가. 엠마가 마쓰다에게 연이어 술을 권하며 말했다.

"어제 저를 인간적으로 대해주셔서 감동받았어요. 다른 일본인들은 저의 몸을 탐하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저를 그저 하룻밤 노리개로 생각하는 거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 

마쓰다가 엠마를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술집 접대부 말고 다른 돈벌이 수단은 없는가?" 

"여기저기 알아봐도 접대부만큼 돈 버는 데는 없어요. 베트남에 있는 부모님이 병환이 있어서 계속해서 돈을 보내야 하거든요." 

"오빠도 일본에 있는 거 아니었나?" 

"맞아요. 그런데 오빠는 돈 벌러 일본에 와서는 엉뚱한 일을 하고 있어요. 일본 거주 베트남인 범죄조직에 가담했거든요. 근데 베트남 폭력 조직 간에 세력다툼이 있나 봐요. 어젯밤 저를 폭행하려 했던 베트남인들은 오빠와 원한 관계에 있는 폭력 조직원들이지요.  너무나 한심해서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요."

마쓰다는 엠마의 처지가 가엾다고 생각했지만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엠마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마쓰다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하며 말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를 한번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 

딱한 처지에 있는 엠마에게 보호본능을 느낀 마쓰다가 엠마를 안아주었다. 엠마가 마쓰다의 품에 안긴 채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랑 같이 모텔 가실래요? 머리가 아파서 좀 쉬고 싶어서 그래요." 

구스타프 클림트, ‘늪’. - 김선현 교수 제공 /  출처 : 한겨레신문
구스타프 클림트, ‘늪’. - 김선현 교수 제공 /  출처 : 한겨레신문

이건 유혹인가, 아니면 간청인가. 마쓰다는 순간적으로 헷갈렸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걸까. 아니면 간밤에 섹시한 여인의 꿈을 꾸어서였을까. 엠마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 탓도 있겠지만 엠마와 잠자리를 하고 싶은 욕망이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쓰다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엠마와 함께 인근 모텔로 향했다. 모텔방에 들어서자 엠마가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머리가 심하게 아파요. 미안하지만 근처 약국에 가서 두통약 좀 사다 주실래요?" 

마쓰다가 얼른 밖으로 나갔다. 약국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약국을 찾아 거리를 헤매다 보니 저 멀리 길 건너에 약국 간판이 보였다. 약국에서 두통약을 산 마쓰다가 서둘러 모텔로 들어갔다. 엠마가 두통에 시달릴 것이 안돼 보여 마음이 쓰였다. 모텔방을 들어서는데 기분이 묘했다. 엠마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왠일인지 옷을 다 벗은 채 전라의 몸으로 축 쳐져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엠마에게 아무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엠마에게 다가가 얼굴을 살폈다. 의식이 없어 보였다. 죽은 걸까? 호흡은 이미 멈춰 있었다. 몸에는 상처가 없다. 타살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몹시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이를 어쩐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난감했다. 베트남 여성과 모텔을 들어오고 모텔방에서 여인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 잘못하면 꼼짝없이 살인범으로 몰릴 판이다. 살인 혐의에서 벗어난다 해도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 자체로 마쓰다가 입을 이미지 손상은 엄청 크다. 동북아 재단에 미칠 영향은 또 어떠하겠는가. 

마쓰다는 누군가의 함정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누가 엠마를 살해한 걸까. 그것도 잠시 약을 사러 약국에 간 사이를 노려 살인을 저질렀다면 이건 다분히 계획적인 살인일 것이다. 누가 이런 일을 벌인 걸까. 그렇다고 신고도 안 하고 모텔에서 벗어나 도망치자니 그것도 의심을 살 일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일단 신고는 해야 한다. 

도쿄 경시청은 '베트남 여성 흐엉(일명 엠마) 살인 사건'을 수사 1과 소속 살해범 수사 5계에 할당했다. 마쓰다는 '베트남 여성 흐엉에 대한 성추행 및 교살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 경시청 수사 5계 수사관들은 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로 살해 현장에 있던 마쓰다를 의심했다. 수사 결과 누군가 엠마의 목을 졸라 살해한 정황이 드러났다. 마쓰다가 약을 사러 나간 사이에 모텔로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텔 종업원의 진술에 따르면, 엠마가 살해당한 그 시간에 모텔에는 엠마와 마쓰다 외에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마쓰다가 꼼짝없이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게 생겼다.

<계속>

편집 : 안지애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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