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딘 쿤츠의 '어둠의 눈'

모리를 더욱 신경 쓰게 만든 것은 일본과 한국의 국가적 명운이 걸린 사건이 21세기 중반에 일어날 거라는 예언과 그를 뒷받침하는 시계열 보고서였다. 모리는 마쓰다에게 그 시기를 특정할 것을 요구했다. 언제 어느 시점에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날지가 중요하다.  그 시점을 알면 예언을 뒤집을 수도 있다고 모리는 생각했다.

모리가 마쓰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리 한국 민족이 우수하다해도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는 분야가 있지. 그게 무엇인지 아나?"

마쓰다가 모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일본인들은  불리한 상황에 부닥쳤을 경우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해서라도 상황을 유리하게 뒤집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거야.  한국인들은 절대 그런 술책과 술수를 부리지 못하는 민족이지.  한류만 해도 그래. 한류의 원조는 일본이란 말야. 일본의 젊은 것들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게 눈에 안들어오는 거지. 나중에 철이 들면 다 알게 되겠지."

어려서부터 군국주의자인 부친의 영향을 받고 자란 모리는 한류에 빠진 딸 아카네를 떠올리며 과연 그렇게 될 거라고 내심 확신하고 있었다. 모리는 한류니 뭐니 하는 것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자 마쓰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해외에서는 한류의 원조가 일본이라는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본인들의 주장은 전 세계의 네티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고 있는 실정입니다."

 

 2019년 미국 방송사 에이비시(ABC)의 여름 콘서트 시리즈 <굿모닝 아메리카>의 무대에 선 방탄소년단(BTS). 연합뉴스 AP  (출처 : 한겨레21 /  K콘텐츠 뒤에 ‘토너먼트 생태계’가 있다  ) 
 2019년 미국 방송사 에이비시(ABC)의 여름 콘서트 시리즈 <굿모닝 아메리카>의 무대에 선 방탄소년단(BTS). 연합뉴스 AP  (출처 : 한겨레21 /  K콘텐츠 뒤에 ‘토너먼트 생태계’가 있다  ) 

 

마쓰다의 충고를 귓등으로 들으며 모리가 다짐하듯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 봐야 한국은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던 나라가 아니었나. 일본을 따라잡겠다고 기어오르는 한국은 그저 무참히 짓밟는 게 최선이야. 암 그렇고말고."

모리는 속으로 다짐하면서도 찜찜한 구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밟아도 밟아도 계속 겁 없이 기어오르는 한국이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게 아니었다. 한국을 혼내주려고 수출 규제를 실시한 게 결국 실패로 끝나지 않았는가 말이다. 패착이었다. 이는 모리 국장을 비롯한 내각 관료들은 물론이고 일본 정치계와 경제계 인사들도 모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뼈아픈 사실이었다.

오늘은 마쓰다가 일본과 한국의 국가적 명운이 엇갈리는 시점을 특정하는 보고서를 모리에게 올리는 날이다.  이번 보고서에는 특히 한국이 명실공히 동북아지역을 지배하게 될  시기가 특정되었다. 그 시점은 바로 2045년이다. 그렇다면 2045년에 한국이 동북아 패권을 장악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라도 있단 말인가.  동북아 재단은 그것까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2045년에 일본과 한국의 명운을 바꿀 결정적인 사건이 무엇인지를 예언하는 예언가는 없었다. 

"미국 소설가 딘 쿤츠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을 40년 전에 정확히 예측하는 소설을 썼다고 하던데 그 소설 제목이 뭐였더라?"

"제목이 '어둠의 눈'이었지요.  딘 쿤츠는  철저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작가인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발발하기 시작한다는 것까지 정확히 예견했지요."

"딘 쿤츠가  2045년에 일어날 일을 새 책에서 다룬다고 하던데 그 내용을 알고 있는가?"

"딘 쿤츠의 새로운 소설은 2045년을 배경으로 하여 그 시기에 한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되어 있을 거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 시점에 한국은 남북이 통일된 것은 물론이고 만주지역 동북 3성 일대와 연해주까지 영토가 확장되어 아시아 대국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과 한국 사이의 일을 예언한 건 아닙니다."

"그렇군.  그런데 예언가라는 작자들은 왜들 그렇게 한국의 미래를 온통 장밋빛으로 보고 있는지 모르겠단말야. "

마쓰다도 그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예언가들이 보기에 한국과 한국인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내재해 있고, 인류의 미래를 이끌만한 민족적인 역량과 자질이 있다고 보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문제야. 서구 제국들이 과거에는 일본과 일본인에게 뭔가 특별하고 독특한 게 있다고 생각했거든. 이제 그 대상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뀐 거지. 한국이 일본을 모방한 결과가 아니고 뭐겠나? 일본의 전자제품과 반도체를 베껴서 일본을 따라잡은 것과 똑같은 맥락인 게야."

"일본도 애초에 서구의 것들을 베끼고 모방하면서 발전한 것이니 한국이 일본 것을 모방했다고 해서 뭐라고 할 수는 없지요."

"이봐, 마쓰다 상!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게야?"

마쓰다가 모리의 큰 소리에 찔금 하며 화제를 돌린다.

"어쨌든 한류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면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미래의 경제력과 군사력으로까지 확산될 개연성이 높습니다.  또한 현재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한류의 붐이 예언가들로 하여금 한국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보도록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구요." 

마쓰다의 설명을 들으며 모리는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이 보고서를 윗선에 그대로 올렸다간 자리가 위태로울 것이다. 2045년경에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흥할 거라는 보고서를 어떻게 올린단 말인가. 동북아재단 보고서가 해외 예언가들의 예언을 사실에 의거하여 뒷받침해주는 꼴이 되지 않았는가. 

더구나 이시하라 의원에게 이 보고서를 그대로 전했다간 당장 모가지가 날아갈 것이다.  이시하라는 의회 다수당인 자명당의 거물이다. 역대 총리들도 취임 전에 이시하라를 먼저 알현해야 할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지닌 인물이다.

이시하라는 한때 지한파로 알려졌지만 혐한으로 돌아선 지 오래다. 한일관계가 좋을 때는 지한파인 것처럼 행세하다가도 한일관계가 냉각되면 서슴없이 혐한으로 태도를 돌변하는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명당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 정객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일본 정치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대로의 처세술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시하라는 내각정보조사실의 주요 기밀 사항을 비공식적으로 보고받고 있었다. 특히나 동북아재단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일본에서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건 내각을 좌지우지할 파워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계속>

 

편집 : 안지애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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