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개혁의 씨앗! 혁신학교 이야기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사회 갈등 지수가 매우 높다. 2013년 당시 OECD 29개 나라 가운데 사회 갈등 지수가 일곱 번째로 높았다. 2016년 사회 갈등 지수는 2위로 급격히 상승했다. 『한겨레』 2022년 10월 6일 자 기사에 따르면 2016년 OECD 조사대상국 30개 나라 가운데 사회 갈등 지수가 2위로 나타났다.

멕시코 다음으로 사회 갈등 지수가 매우 높아 국내총생산(GDP)을 악화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면에 정부의 갈등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갈등 관리 지수는 27위로 최하위권이다. 2008년 갈등 관리 지수가 29위였으니 그때나 2016년이나 여전히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증표다.

사회 갈등 지수를 국제 비교 연구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4)에 따르면 정부의 갈등 관리 지수가 10% 올라갈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2.41% 증가한다고 밝혔다. 사회 갈등으로 360억$ 경제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사회 갈등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매년 40조 원에 이르는 손실을 떠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 왜 그토록 갈등 지수가 높은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세계 10위 경제대국인데 청소년 행복지수는 매년 꼴찌이고 국민들 행복지수 또한 낮다.

대한민국은 청소년 행복지수 꼴찌인 국가다(출처 : 한국방정환 재단,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2106년 자료, 통합사회 교과서에서 글쓴이가 다시 찍은 것임)
대한민국은 청소년 행복지수 꼴찌인 국가다(출처 : 한국방정환 재단,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2106년 자료, 통합사회 교과서에서 글쓴이가 다시 찍은 것임)

사회 갈등 지수가 높은 이유는 사회불평등, 그중에서도 경제불평등이 근본 원인이다. 부자 감세와 복지 축소, 그리고 비정규직 양산에 가속 페달을 밟았던 이명박 – 박근혜 정권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정부 - 감세 정책을 소리 높인 윤석열 정부 역시 불안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교육부는 직제 개편을 통해 ‘민주시민교육과’를 전격 폐지하고 박근혜 정권 시절 ‘인성체육예술교육과’로 회귀했다.

‘보수교육감’을 표방해 당선된 경기도 교육청 역시 9월 1일 자로 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를 폐지하고 ‘미래인성교육과’로 직제를 변경했다. 최근 10월 6일자 MBC 보도에 따르면 전북교육청조차 ‘민주시민교육과’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참으로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2020년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 세미나실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법> 입법 관련 토론회에서 김원태 소장(학교시민교육연구소)이 발제하는 장면(출처 : 하성환)
2020년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 세미나실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법> 입법 관련 토론회에서 김원태 소장(학교시민교육연구소)이 발제하는 장면(출처 : 하성환)

사회 갈등 지수는 한 마디로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대화와 소통, 협력과 연대의 정신’이 실종된 사회에서 높게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대화와 소통, 협력과 연대의 정신’을 기르는 ‘민주시민교육’은 우리나라에선 더욱 절실한 교육과정이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70년 전부터 ‘민주시민교육’을 추진해 왔던 독일, 프랑스, 핀란드, 스웨덴을 비롯해 교육선진국에선 앞으로 ‘민주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하려 한다. 히틀러 전체주의 파시즘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자아’를 강조하는 독일은 70년대부터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교육’을 중핵교육과정으로 가르쳐 왔다.

권력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순응하는 <굴종적인 자아>가 아니라 불의한 권력에 맞설 줄 아는 ‘강한 자아’를 강조했던 아도르노의 성교육과 정치교육, 그리고 미래 세대에 대해 높은 책임의식을 간직한 채 검약한 삶을 강조한 한스 요나스의 생태철학은 오늘의 독일교육을 빛나게 만든 결정체다. 독일 초등학생들조차 소비할 때마다 죄의식을 느낀다고 한다.  게다가 “불법적인 인간은 없다”며 시리아 난민들을 독일 정부가 나서서 받아들이라고 앞장서 시위에 나서는 주체 역시 독일 초등학생들이라고 한다. 그런 일상의 모습은 모두 ‘민주시민교육’의 소중한 결실이다.

무려 100만 명에 이르는 난민을 독일이 수용한 것은 단순히 앙겔라 메르켈 중도우파 정부의 업적만은 아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 정신>을 강조해 온 독일 ‘민주시민교육’이 건강한 독일 시민을 길러낸 결과다. 몇 년 전 전쟁을 피해 예멘 난민 수백 명이 제주도에 와서 난민 신청을 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외국인 범죄가 늘어난다며 난민 수용을 반대했던 광화문 광장 시위를 마주했다. 교육선진국 독일과는 전혀 다른 세계, 전혀 다른 풍경이다. 교육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다. 수십 년 파시즘 교육이 익숙하게 몸에 밴 60-80대 태극기부대가 그냥 등장한 게 아니다.

지난 9월 치러진 스웨덴 총선에서 외국인 이민자를 배척하고 백인 우월주의를 기치로 내건 극우정당 <스웨덴 민주당>이 득표율 20%를 넘어 일약 제2 정당으로 도약했다. 국회의원만 무려 73명을 탄생시켰다고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한때 유럽 사회에 불었던 이민자 혐오와 난민 추방의 분위기로부터 스웨덴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이번 스웨덴 총선에서 중도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약칭 사민당)은 과반 의석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제1당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사민당 집권 당시 스웨덴은 2018년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했던 기존 ‘사회’ 과목을 아예 ‘시민(Civics)’ 교과로 정식 명칭을 바꿨다. 최근 총선에서 집권정당으로 급부상한 <이탈리아 형제들> 정당처럼 유럽 내 반이민 정서와 신나치주의 극우 세력들이 급증하는 현상에 대해 적극 대응한 셈이다.  학교교육에서  ‘시민(Civics)’ 교과를 공식화하고 시민교육을 크게 강화함으로써 스웨덴 내 극우세력의 발흥을 억제하겠다는 의도였다.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는 추세가 세계 교육개혁의 큰 흐름이자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어렵게 퍼뜨린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씨앗을 윤석열 정부는 싹이 트기도 전에 이를 마구 파헤쳐버렸다. 심지어 학계 일각에선 ‘민주시민교육’을 ‘좌편향 이념교육’으로 매도하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민주화운동세력이 <학교민주시민교육법> 입법  관련 학술세미나를 2020년 7월 22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개최하자 이에 즉자적으로 대응해 보수(?)단체에서 개최한 토론회 포스터(출처 : 장은주 교수) <학교민주시민교육법>을 반대하는 토론회가 정경희 의원(국민의 힘)과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 모임(정교모) 공동 주최로  의원회관 똑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민주화운동세력이 <학교민주시민교육법> 입법  관련 학술세미나를 2020년 7월 22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개최하자 이에 즉자적으로 대응해 보수(?)단체에서 개최한 토론회 포스터(출처 : 장은주 교수) <학교민주시민교육법>을 반대하는 토론회가 정경희 의원(국민의 힘)과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 모임(정교모) 공동 주최로  의원회관 똑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민주’라는 이름만 들어가도 삐딱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막가는 행태를 보이기에 급급하다. 며칠 전 <사회과 교육과정 공청회>가 난장판이 된 채 무산됐다는 지상파 뉴스 보도는 참담한 우리 교육계 현주소다. <도덕과 교육과정 공청회> 못지않은 일그러진 우리 교육 현실의 파편일 뿐이다.

일본군 위안부 <수요시위> 현장에서 혁신학교 00고등학교 학생들(출처 : 하성환)
일본군 위안부 <수요시위> 현장에서 혁신학교 00고등학교 학생들(출처 : 하성환)

우울한 현실을 딛고 지금은 소를 기를 때라고 생각한다. 묵묵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멀리 내다 보고 ‘민주주의자’를 길러내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유지되는 체제다. 따라서 ‘민주주의자’ 없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을 존중하고 약자를 배려하며 협력과 연대의 정신으로 일상에서 관용을 구현할 수 있는 민주시민, 공화국 시민>을 길러내는 일! 그것이 우리 교육이 나아갈 길이자 이 시대 교육계 시대정신이다. 그 길이 사회 갈등 지수를 최소화하고 공동체 전체가 상생하는 길이라 확신한다.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에서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는 교과인 『도덕시민』 교과를 ‘연대의 끈’으로 부르는 이유이다. 프랑스는 2015년 ‘민주시민교육’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사회과와 도덕과를 합쳐 『도덕시민』 교과를 탄생시켰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의무교육까지 공통 필수교과로 가르치고 고교 졸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시험과목으로 평가할 정도로 ‘민주시민교육’을 중시한다.

<차별과 경쟁 교육> 대신 <협력과 평등 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을 길러낼 것을 촉구하는 전교조 플래카드(출처 : 하성환)
<차별과 경쟁 교육> 대신 <협력과 평등 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을 길러낼 것을 촉구하는 전교조 플래카드(출처 : 하성환)

따라서 학교 교육의 목적은 교육기본법 제2조(이념)에 명문화돼 있듯이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데 있다. 이제껏 ‘시험형 인간’을 길러내는 경쟁적 입시 교육활동과 거리를 두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에 우리 모두 정진해야 한다. 우리 시대, 우리 교육이 나아갈 길은 마땅히 ‘민주시민교육’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혁신학교는 ‘민주시민교육’을 포함해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아주 작은 시도이다. 비록 짧지만 혁신학교에서 7개월 남짓 생활하면서 보고 배우고 느낀 점을 몇 자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이 글이 우리 교육계에 작은 변화를 가져오는 씨앗으로 작용하길 소망하면서...

혁신학교 교문을 향하던 3월 초, 첫 출근 날 글쓴이는 색다른 광경을 목격했다. 학교장이 정문 앞 삼거리에서 신호봉을 쥐고 교통 봉사를 하고 있었다. 글쓴이에게 감동을 준 놀라운 사실은 그다음 장면이었다. 학교장은 등교하는 학생 이름을 불러 주며 반갑게 맞이하였다. 심지어 식당에선 자리 안내를 하는 학교장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학생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양복이 아닌 일상복으로 손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도 몇 번 목격했다.

학생들 이름을 불러 주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글쓴이는 30년 교직 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선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 풍경 자체로 충격이었다. 아이들과 앞장서서 <관계 맺기>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교육 운동 관련 서적과 기록물에 기록될 정도로 유명한 혁신학교 모델! 장곡중학교처럼 학교장 본인이 교감으로 재직했던 00중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들었단다. 그리고 다시 00고등학교 공모 교장으로 와서 혁신학교 시동을 건 지 4년이 돼 간다고 했다. 처음 혁신학교를 이야기할 때 학교장은 무늬만 혁신학교라고 겸손해했다. 그러나 한 학기를 마치고 8월 30일 퇴직하는 학교장을 배웅하며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무늬만 혁신학교가 아니라 학교문화를 새롭게 조성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혁신학교 00고등학교 2-8반 <학급특색활동> 시간에 학생들이 교육활동을 주도하여 발표하는 모습(출처 : 하성환)
혁신학교 00고등학교 2-8반 <학급특색활동> 시간에 학생들이 교육활동을 주도하여 발표하는 모습(출처 : 하성환)

00고등학교는 선생님들이 매우 젊다. 서울에서 흔히 보던 50-60대 교사가 많지 않다. 무엇보다 활기차고 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선생님들이 매우 친절할 뿐만 아니라, 교사들 간 협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서로 돕고자 애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교육혁신부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자꾸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려는 교사들이 많다. 수업 설계가 밀도 있게 진행되고 실제 교수-학습 과정을 전개해 나가는 모습 또한 열정적이다.

4년 차 혁신학교 00고등학교에 걸려 있는 국어과, 영어과, 과학과, 사회과, 미술과 교과융합 프로젝트(출처 : 하성환)
4년 차 혁신학교 00고등학교에 걸려 있는 국어과, 영어과, 과학과, 사회과, 미술과 교과융합 프로젝트(출처 : 하성환)

교사들 대부분이 모둠별 수업을 지향하고 아이들이 토론과 발표를 주도하도록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학교 수업의 연장이랄까 실제로 학교 행사 가운데 「학생 주도 프로젝트 발표회」도 있고 학생들이 탐구 주제를 선정해 「학술제」 형식으로 연구한 내용을 발표하기도 한다.

혁신학교 00고등학교 학생들이 만든 <지구살리기> 프로젝트 (출처 : 하성환)
혁신학교 00고등학교 학생들이 만든 <지구살리기> 프로젝트 (출처 : 하성환)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모든 교사들이 학생들을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나이 지긋한 50대 교사도 10대 아이들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걸 보고 놀라웠다. 서울에선 거의 예사말이 일상인 풍경에서 글쓴이는 한동안 적응하는 데 힘들었다. 혁신학교 생활을 한 지 7개월이 지나가지만 글쓴이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존칭어를 쓰는 게 익숙지 않다. 30년 묵은 습관이라 아이들에게 존칭을 쓰는 게 마음만큼 쉽지 않다. 아이들을 존중하는 형식인 존칭어를 사용한 결과일까? 고등학교 아이들에게서 비속어나 욕설을 거의 듣질 못했다. 서울에서 하루 동안 듣던 비속어와 욕설의 양을 7개월이 지나갔는데도 그에 미치질 못한다.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혁신학교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출처 : 하성환)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혁신학교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출처 : 하성환)

솔직히 개**, *나, *발이나 최근 대통령의 언어로 논란이 된 이**, 저**를 비롯해 비속어와 욕설을 들었던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주변 혁신중학교 출신들이 많아서 그런 결과일지도 모른다. 서울에선 교무실에 앉아 있노라면 쉬는 시간에 그런 욕설과 비속어를 너무 많이 듣곤 했다. 그때마다 교사인 글쓴이는 집에 가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너무 다른 풍경이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경험은 아이들이 교실 수업도 들어가지 않고 전혀 낯선 교사에게 도와주려고 먼저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무거운 짐을 위층으로 옮기는 데 낯선 3학년 아이들이 나서서 돕고자 한다. 교사가 아이들 휴게 공간을 잠시 빌릴 때도 조심스럽게 아이들 의견을 묻고 아이들 의견을 존중한다. 새로 부임한 학교장 또한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들 의견을 존중하고자 애쓴다.

지시와 전달, 협조 사항으로 일관하는 회의를 현행 집합 형태 회의를 지양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런 모든 풍경들이 지난 7개월 남짓 글쓴이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학생들을 대하는 자세와 언어, 그리고 실제 교수-학습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교사의 역할을 곰곰이 성찰하게 만들었고 적지 않은 깨달음을 주었다. 이 모든 것은 <혁신학교>가 ‘민주시민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 <교육개혁의 작은 씨앗>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반면에 혁신학교임에도 낡은 교육계 질서와 관행은 여전했다. 오히려 민주화된 서울보다 낡은 질서는 강고했고 더욱 단단했다. 학교업무를 많이 처리하는 주위 젊은 교사들의 경우, 소소한 행정잡무가 적지 않아보인다. 교사 고유업무가 아님에도 수많은 행정 잡무가 서울 못지않게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새로 2학기에 혁신학교 공모 교장으로 부임한 학교장은 그 부분에 주목한 듯하다. 교사가 숨을 쉴 수 있고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다이어트”를 강조했다. 학교장이 의사결정 주체라기보다 교사와 학생들이 의사결정을 하도록 돕는 ‘지원 단위’임을 강조했다.

먼저 전결 사항을 확대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교사 당번제도 없앴다. 매일 현관문 학생 맞이 행사에서 부장교사들을 제외시켰다. 나아가 식당 급식지도에서 평교사들을 자유롭게 하고 교장, 교감 선생님이 도맡았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도 인원수를 줄였다. 교사들이 본업인 ‘수업 연구와 학생상담’이라는 교육의 본질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한 진일보한 조치다.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서울 대부분 학교들처럼 <자율학습관리사>를 뽑아서 감독하게 한다면 더욱 혁신학교다운 모습으로 변화하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교육계 낡은 질서와 관행은 도교육청과 단위학교 간 위계질서가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공문들이 쏟아지고 공람으로 처리된다. 어떤 경우엔 보고 기한에 임박해 온 공문을 직접 결재 공문을 작성해 보고해야 하고 도교육청 협조공문에도 적극 응하는 경우도 있다.

교사가 행정요원이 아님에도 행정요원 일을 하게 만드는 교육 현실은 대체 언제쯤 변화가 올지 30년 넘도록 궁금하다. 교육행정사를 2명 증원하고 학폭 전담 행정요원을 퇴직경찰 출신으로 채용하면 행정잡무로부터 교사를 해방시킬 수 있다. 물론 단위학교나 도교육청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고 정부가 나서서 북유럽처럼 GDP 대비 6% 를 확보하면 가능하다. 

아직도 필리핀보다 학급당 학생수가 많은데도 교육부는 교사 증원을 하려는 의지가 없다. 오히려 저출산에 기댄 채 학령인구감소를 앞세워 교사 선발을 축소하고 있는 게 우리네 교육통제부의 민낯이자 암담한 현실이다. 순전히 거꾸로 가는 관료 행정이다.

<학급당 학생수 20명 상한 법제화> 10만 입법 청원 전교조 조합원 국회 앞 퍼포먼스(출처 : 전교조 홍보국 제공)
<학급당 학생수 20명 상한 법제화> 10만 입법 청원 전교조 조합원 국회 앞 퍼포먼스(출처 : 전교조 홍보국 제공)

권위주의로 찌든 일반 학교의 학교 생태계를 동등한 인간관계로 변모시키고 학급당 학생수를 20명 이하로 줄이기 위해 더욱더 교사를 증원해야 마땅하다. 교육선진국은 저절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는 우리 교육 행정을 보노라면 답답하다 못해 한심하다. 학생들 이름도 모르고 교장실에 앉아 목에 힘을 주는 권위주의적인 학교장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마찬가지로 학교 교육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교육부, 아니 교육통제부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 경기도 혁신학교 출발에 단초를 제공한 남한산초등학교 학교 운영 사례를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청 고위 관료들이 공부하고 새겨들었으면 싶다.

남한산초등학교는 단위학교에서 교육개혁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소중한 사례다. 따라서 100년 전이나 오늘이나 교사를 여전히 말단 행정요원으로 취급하는 국가주의 관료행정을 학교 현장에서 영구히 추방시켜야 한다. 그래야 교사가 살고 아이들이 산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고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길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단적인 사례를 들어 보자. 올해 1학기에 혁신학교에 대한 도교육청 행정감사가 있었다. 교육선진국에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국가주의 관료행정의 잔재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선진국 핀란드에선 70년대 교육개혁을 하면서 90년대 중반부터 완전히 사라진 도교육청 감사가 여전히 학교 현장을 힘들게 했다. 감사에 대비해 행정 잡무로 고통받는 해당 교사들에게 적잖은 짐으로 작용한 느낌이 들었다.

핀란드 교육개혁이 성공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감사제도와 의무연수제도를 전면 철폐한 데 있다. 한 마디로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극대화하려는 교육 행정이 존재했다. 오늘날 핀란드 학교 사회 내에 부정과 부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과서 또한 자유발행제이다. 교사는 교과서를 채택할지 여부와 채택하더라도 교실 수업에 어느 정도 사용할지 여부는 순전히 교사의 자율에 맡긴다.

철저하게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함으로써 교사 스스로 높은 자존감을 간직하도록 배려한다. 우리나라처럼 검정교과서 수준이 아니다. 교과서에 실릴 내용과 요소, 그리고 기준을 일일이 교육부가 통제하는 19세기 관료행정을 핀란드를 비롯해 교육선진국에선 찾아볼 수 없다. 영국조차 수학 교과서를 수학 교사가 사용하는 비율이 10%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언제쯤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받을 수 있을까?

핀란드 교사들은 스스로 연구하고 노력하는 풍토가 자연스럽게 조성돼 있다. 따라서 강제 의무연수가 아님에도 핀란드 교사들 99%에 이르는 대부분이 연수에 자율적으로 참여한다. 실제로 핀란드 사회에서 교사는 의사, 변호사보다 사회적 신뢰와 존경심이 대단히 높다. 교사가 되기 위한 경쟁률도 10대 1이 넘는다.

청렴하면서도 연구에 열중하는 핀란드 교직 사회를 우리라고 만들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 첫걸음이 감사제도와 의무연수제도를 전면 폐지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과금과 연동돼 진행하는 천박한 교원평가제부터 즉시 폐지해야 한다. 핀란드 교사에겐 상상할 수 없는 모욕적인 제도이자 교사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안기는 <행정 폭력>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우리나라 교사들을 행정업무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오로지 수업 연구와 학생상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할 일이다. 아니, 진학 상담과 심리 상담 전문 카운슬러를 학교마다, 그리고 학년별로 각각 1명씩 배치하여 학생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행복 시스템을 정착해야 한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담임교사 제도를 폐지하여 교사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고민해 볼 사안이다. 나아가 부천 소명여중처럼 교육행정실무사를 4명으로 확충하여 운영한다면 더욱 혁신학교다운 풍모를 간직할 수 있으리라!  청년 일자리 창출을 교육복지 분야에서 시작하길 윤석열 정부에 적극 권한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공교육에 대한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북유럽 교육선진국들은 하나같이 GDP 대비 6% 이상 - 덴마크는 7% - 을 교육예산으로 편성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현재 4%대 초중반 수준이다. 우리나라 GDP를 생각하면 4%의 경우 600억$(70조 원)이지만 6%를 공교육에 투자하면 매년 교육예산이 900억$(100조 원)에 이른다. 교사 증원과 법정 교원수를 100% 확보할 수 있고 이는 4만 기간제교사를 정규직 교사로 전환할 수 있는 수치이다.

나아가 한 학교 당 진학/심리 상담 전문 카운슬러 6명과 사서교사, 영양교사, 보건교사를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이다. GDP 대비 6% 교육예산을 확보한다면 학교는 행복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교사와 학생이 자기 성장의 기쁨을 누리는 행복발전소로 학교를 180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개혁은 결코 어렵지 않다. 왜 교육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마다하는가?

현재 윤석열 정부 교육부처럼 일제고사를 전면 부활하는 반(反)교육으로 치달을 게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전교조를 비롯해 교육시민단체의 반발을 의식했는지 “원하는 학교만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는 현 집권 세력이 갖는 교육철학이 얼마나 부박한지 스스로 교육철학의 부재를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일제고사를 전면화했던 이명박 정권 당시 교육부장관 이주호를 다시 교육부장관 후보로 지명한 것부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조짐은 이미 나타났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한국사 국정제 교과서를 주도한 교육 관료 권성연(서울대 국사학과 졸, 행시 합격)을 청와대 교육비서관으로 임명한 사실이 그렇다. 나아가 국가 교육과정을 관장하는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에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을 임명한 것 또한 그러하다. 이배용 국가교육위 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선덕여왕’에 비유하고 한국사 국정제를 역설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학생들 학력 평가는 현행처럼 지역별, 학교급별로 표집해서 학력을 측정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왜 일제고사 형태를 띠면서 거꾸로 가려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사교육시장의 검은 카르텔과 연계돼 있지 않고선 상상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현실에 맞는 한국형 바칼로레아(KB)를 교육적으로 고민하고 대안을 창출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채, 국제바칼로레아(IB)를 도입하려는 경기도 교육청의 행정은 대구교육청만큼 일방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우리 현실에 맞는 논술형 평가제도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한 시점이지 검증되지 않은 국제바칼로레아(IB)를 학교 현장에 도입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공산이 크다. 우연히 공람 처리된 국제바칼로레아(IB) 관련 공문을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혁신학교 00고등학교 학생들이 주도해서 만든 <기후위기 프로젝트> 홍보물(출처 : 하성환)
혁신학교 00고등학교 학생들이 주도해서 만든 <기후위기 프로젝트> 홍보물(출처 : 하성환)

반(反)교육으로 치닫는 교육계 현실에서 단위 학교에서 비록 작은 실험이지만 혁신학교를 단단히 다지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위대한 수고이자 결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00고 혁신학교 교사들 모두에게 경의의 마음을 담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육계 샛별이자 희망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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