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국장이 이시하라 의원을 예방한 것은 바로 인도 예언가 카마르의 기사가 난 다음날이었다. 모리 국장으로부터 동북아재단 보고서와 순스케의 영계 통신 결과를 보고받은 이시하라는 눈살을 찌푸리긴 했지만 모리에게 짜증을 내지는 않았다.  동북아 보고서에는 마쓰다가 보고한 내용과 더불어 어제 신문에 실린 카마르의 예언과 그에 대한 분석이 별첨으로 첨부되어 있었다. 

"그럼 이  두 종류의 예언 중 하나는 맞고 다른 하나는 틀렸다는 말인데 모리 국장은 어느 예언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가?"

속이 들여다보이는 뻔한 질문이지만 이시하라로서는 모리의 입을 통해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확인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2045년에 일본과 한국의 국운이 엇갈리는 일대 사건이 있을 거라고 합니다만 일본에 반드시 불리할 거라는 예단은 심히 위험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내기를 한다면 카마르의 예언을 기대해 보는 쪽에 걸겠습니다."

모리의 말에 이시하라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과연 내각정보 조사실의 대외공작을 전담하는 국장답군그래. 그래도 2045년에 벌어질 사건이 무엇인지는 계속 파보도록 하게."

이시하라의 격려에 모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은 금물이다.  여우 같은 노인네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과연 모리의 짐작대로 이시하라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일본과 한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변수가 있지 않나? 여지껏 동북아정세는 북한이 변수였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 같은데."

"네. 그렇습니다.  북한보다는 오히려 중국의 향배에 따라서 일본과 한국의 운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봅니다."

"중국 경제가 이런 식으로 정체되면 3억 명에 이르는 농민공(도시로 이주해 노동자 일을 하는 농민)의 불만으로 인해  언젠가 큰 사회적 문제가 야기될 거야."

"그렇습니다. 중국은 천문학적인 부동산 부실을 비롯하여 그림자 금융으로 인한 금융 시스템 붕괴 가능성까지 곳곳이 지뢰밭이라서 언젠가 심각한 사회적 구조조정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국내외적으로 혼란에 빠지면 그 기회를 일본과 한국 중에서 어느 나라가 먼저 그 기회를 선점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갈수록 격화되는 미중 갈등과 국내 경제 침체로  어수선해지고 거기에다가 중국의 대만 침공 분위기가 고조되고,  티베트를 비롯한 신장 자치구 독립 문제까지 터지면 볼만하겠군 그래. 더구나  미중의 갈등이 격화되다 보면 가히 제국의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그렇게 중국 지도부가 분열되고 혼란에 빠지면 북한은 더 이상 중국에 의존할 수 없을 것이고,  한국은  통일을 이룰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거야. 일본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  공생도 반목도 결국 돈…미-중 ‘제국 충돌’ 부른 자본 경쟁 / 출처 : 한겨레 2022-10-21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  공생도 반목도 결국 돈…미-중 ‘제국 충돌’ 부른 자본 경쟁 / 출처 : 한겨레 2022-10-21


"동북아 보고서에서 언급되었듯이 일본은 해군력을 포함한 군사력을 대폭 강화하여 대륙 진출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평화 헌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하고 국방 예산을 획기적으로 증액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동북아 정세가 혼미한 상태에서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만주지역을 기습적으로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겠지. 결국 중국이 분열될 기미가 보일 경우 만주를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에 따라 일본과 한국의 국운이 갈라질 테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민간 정보 회사 '스트림 포'의 CEO 이자 세계 최고 지정학 전략가로 평가받고 있는 조지 프리드먼은 중국이 갑작스러운 붕괴에 직면하게 될 거라고 예측한 바 있으며, 하버드대 정치 철학 교수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도 중국이 몸집만 비대하고 현 상태에 만족하는 자의식에 빠져 있는 한 세계 강대국 반열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 바 있습니다.  이는 동북아 재단 보고서에서 자세히 분석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중국은 이미 그 길로 가고 있는 듯합니다. 일본은  그 절호의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일본은 만주에 대한 기득권이 있지 않은가.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관동군이 만주를 지배했으니 말이야. 그 당시 혼란한 동북아 정세를 일본이 얼마나 잘 이용하여 만주를 점령하고 중국 대륙까지 점령했는지 면밀히 들여다보면 참고가 될 게야."

"물론입니다. 도쿄에는 만주 임시정부가 있느니만큼 일본이 만주를 차지할 때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명분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렇군. 만주 임시정부의 동태는 잘 주시하고 있겠지?  요즘 그들의 동향은 어떤가?"

"염려 마십시오. 요원들을 침투시켜 놓은 지  오래됩니다. 그들은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독립 세력과 연대하여 만주의 독립을 꾀하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활동이 미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가 되면 그들은 대일본 제국의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될 것입니다."

이시하라 의원이 흡족한 모습을 보이자 모리 국장이 더욱 확신에 찬 발언을 했다. 

"만주를 점령하면 일본의 고민은 단번에 해결됩니다. 일본 침몰이나 후지산 화산 폭발을 비롯하여  어떠한 대지진도 두렵지 않습니다. 여차하면 일본인들이 만주지역으로 대거 이주하면 될 일입니다

"그렇다면 만주 갖고 되겠는가. 내친김에 러시아의 극동 연해주까지 손에 넣어야지."

"네! 그런 전략적인 내용까지 동북아재단 보고서에  분석되어 있습니다."

이시하라는 동북아 재단 보고에 만족한 듯이 모리의 수고를 치하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리 국장으로서는 어느 정도 선방을 한 셈이었다. 이시하라에게 동북아 보고서를 제출함에 있어 모리 국장은 두 개의 술책을 구사했다.  마쓰다 공작을 통해  카마르의 예언을 동북아재단 명의로 발표한 게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카마르의 예언에 대한 근거로 동북아 재단의 보고서 내용 중 일부를 뒤바꾸어 인용한 것이다.

 

미워하며 닮는 대결 구도…극단 치닫는 ‘무력 공방전’ / 출처 : 한겨레 2022-10-15
미워하며 닮는 대결 구도…극단 치닫는 ‘무력 공방전’ / 출처 : 한겨레 2022-10-15

 

원래의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 열도의 지리적 불안과 동북아의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자 일본이 군국주의 부활과 동북아 전쟁을 통해 만주를 선점하려 하지만 그것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모리는 카마르 예언의 별첨 보고서에서 동북아 지역의 불안정이 최고조에 이르고 일본의 국가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전쟁을 통해 극적인 탈출구를 찾게 될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전쟁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일본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게 될 거라는 원안의 내용을 슬쩍 뒤집은 것이다.

모리로서는 원래의 동북아재단 보고서를 건드리지 않았으니 문서를 조작한 건 아니다.  다만 별첨으로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을 뿐이다. 모리는 거기서 한 수 더 나아갔다. 이참에 이시하라의 눈에 들면 앞날이 평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되면  교토 최고급인 이치리키 요정으로 모실 기회를 주시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이치리키는 한때  일본 총리를 비롯한 장차관급들 그리고 3선 이상의 국회의원들과 기업체 총수  정도는 되어야 드나드는 유명한 요정이었지. 게이샤들의 미모와 공연도 수준급이었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한물갔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치리키를 비롯한 게이샤 요정은 쇠락을 겪게 된 거지. 모리 국장이 그쪽 분야에 대한 최신 정보에는 어두운 편이구먼."

이시하라의 말에 모리가 당황했다. 이시하라가 중년 시절 한때 교토의 고급 요정에 들락거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교토의  요정들이 어떤 시대적 변천을 겼었는지 그리고 정치인들의 개인적 취향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이시하라의 표정이 차갑게 변하면서 다구치듯이 모리를 몰아세웠다.

"자네, 혹시 내 뒷조사를 하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감히 어떻게 의원님을?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모리가 쩔쩔매며 변명을 하자 이시하라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교토까지 갈 것도 없지.  도쿄만 해도 게이샤를 두고 있는 요정거리(화류계)가 6군데나 되는걸.  도쿄 신주쿠구의 가구라자카 거리만 가도 소규모 요정들이 즐비해 있지 않나."

이시하라가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모리를 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 마쓰이 게사코의 <유곽 안내서>라는 책을 읽어봤나?  거기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오지. '피를 빨고 우는 가을 모기 성가시구나.' - 이 말은 예전에 밤을 보냈던 여자가 자신에게 여전히 연연할 거라고 허망한 착각을 하는 남자에게 일침을 놓는 말이야. 유곽의  유녀들이나 요정의 게이샤는 일본 남자들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여인들이지. 하지만 그 여인들 또한 자신의 욕망과 자기 삶의 동기를 향해 돌진하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

한여름 밤, 그녀들의 미스터리  /  출처 : 한겨레 21 (2017-07-29)
한여름 밤, 그녀들의 미스터리  /  출처 : 한겨레 21 (2017-07-29)

 

그쪽 방면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랑이라도 하듯 말하던 이시하라가 한 마디 덧붙였다.

"이보게, 모리 국장! 내 나이 정도가 되면 말이야. 요정 같은 데보다는 애첩이 더 좋아. 곁에 찰싹 달라붙는 애첩 말일세."

모리는 아차 싶었다. 이시하라가 최근 묘령의 여인과 가깝게 지낸다는 미확인 정보가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게 사실인가 보다.  그 여인에 대해 조사해 봐야겠다고 모리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인에 대해 이시하라에게 언급하는 것은 자칫 자충수를 두는 게 된다. 이시하라는 분명히 '그것까지 뒷조사를 한 거냐'라고 호통을 칠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 분야에는 아직 과문합니다만 의원님을 위해서라면 한 번 발 벗고 알아보겠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나설 건 없네. 나의 사적인 일에 모리 국장이 개입하려 하는 건 위험한 일이야. 명심하도록 하게."

이시하라의 일침에 모리가 바짝 긴장을 하며 대답했다.

"하이! 앞으로 더욱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국장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네.  잘만 하면 나중에 지역구 하나 골라줌세."

"감사합니다. 의원님의 은혜가 각골난망입니다."

모리는 속으로 안심하며 이시하라의 방을 나왔다. 자명당의 거물인 이시하라에게 인정을 받으면 내각에 중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정계에 진출하는 데 유리하다. 

모리 국장이 보고를 마치고 나가자 이시하라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모처로 연락을 취했다.  이시하라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만방제세백교 교단의 제1단주인 고바야시였다. 고바야시는 교주의 특명을 미주 지역과  유럽 지역 그리고 아시아 지역장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시하라 의원께서 이 시간에 무슨 일입니까?"

"교주님께 전할 귀중한 자료가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일본을 비롯한 한국과 중국의 미래와 관련한 주요 내용입니다."

"알았어요. 사람을 보낼테니 자료를 보내주세요."

"교주님께 잘 말씀드려주세요.  제가 어렵게 확보한 귀한 자료입니다."

"그건 걱정 말아요. 교주님께서도 늘 이시하라 의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까요."

고바야시 단주의 말을 들은 이시하라는 한층 고무되어 있었다. 만방제세백교는 일본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신흥종교단체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날이 교세가 확산되고 있어서 엄청난 재력을 지니고 있을뿐만 아니라 자명당 내의 일부 의원들도 비밀리에 만방제세백교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만방제세백교의 교주는 이시하라가 한 때 정계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이시하라를 구원해준 은인이기도 하다. 이시하라는 그 이후 교주를 하늘처럼 떠받들기 시작했으며, 일본의 미래를 이끌어줄 위대한 선지자로 여기고 있었다. 

<계속>

편집 : 안지애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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