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도 사이에서는 갠지스 강물에 목욕재계하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으며, 죽은 뒤에 갠지스 강물에 뼛가루를 흘려보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갠지스 강 유역에는 연간 100만 이상의 순례자가 찾아드는 유명한 바라나시를 비롯하여 하르드와르·알라하바드 등 수많은 힌두교 성지가 있다.

힌두교 최대의 성지 바라나시는 갠지스 강이 흐르는 지역으로 예언가와 신비주의자들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그 중에 카마르라는 무명 시인이 있었다.  그는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시를 쓰고 있다. 카마르는 고민에 빠졌다. 타고르처럼 인류에게 영감을 주는 시를 쓰고 싶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순수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서나 종교서에서도 시적 운율과 다양한 수사법 알람카라(alaṃkāra)를 적용한 게송을 통하여 사상을 전달한다. 카마르는 특히 인도 시학 전통에서 7세기 초기 수사론자인 바마하의 저작 <카비야 알람카라> 에서 제시한 수사법에 관심이 많았다.  카비야 알람카라는 맹세와 실행으로 완성되는 시의 논리에 대한 수사법이다. 

햇빛이 내리쬐는 어느 날 오후 카마르가 프레둔 카브라지의 시 '튤립'을 읽으며 영감을 얻으려 씨름하고 있었다. 카브라지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에 활동한 언론인이자 시인으로서 인도의 영국 식민주의와 빈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고,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시위와 인도에서의 영국 통치 종식을 요구하는 인도 탈퇴 운동을 지지했던 인물이다. 

카마르가 '튤립'에 나오는 시를   몇 시간째 음미하고 있다. 

- 튤립, 말해봐.  네 컵에 뭘 들고 있니?

어머니, 당신 아이의 형태를 볼 때, 영혼의 갈증을 부풀리는 마법을 컵에 담습니다. 

하지만 튤립, 말해봐요, 왜 당신은 멜로디의 날개 너머에서 당신의 마법을 지키나요?

사랑의 키스가 생명의 씨앗에서 죽음을 포착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어떤 멜로디도 내 컵에 모든 마법을 담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어머니, 그것이 사랑이 당신의 아이를 홀로 삶 속에서 안아줄 수 없는 이유입니다.  -

카마르는 카브라지 시인처럼 영혼의 갈증과 생명의 멜로디를 자신만의 멋진 시구로 표현해보려 하였으나 마음에 드는 시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짜내던 카마르는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카마르는 어떤 벽을 느꼈다. 도달하려 해도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벽이 카마르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카마르가 영과 육의  갈증을 느끼며 허탈해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어떤 환상이 보였다.

 갠지스 강 / 무료 이미지-  PxHere
 갠지스 강 / 무료 이미지-  PxHere

카마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시(詩)의 신이 강림하는 대신 예언의 영이 카마르에게 임한 것이다. 카마르가 본 것은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환상이다. 카마르는 3차 세계대전이 러시아의 유럽 침공으로 인해 촉발되는 것을 보았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세상은 화염으로 뒤덮혀 잿더미가 되고 대지진과 해일로 지구 곳곳이 침몰되고 있었다. 

카마르가  언론사 기자들에게 자신이 본 환상을 알렸으나 너무  식상한 주제라며 다들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러시아의 동유럽 침공으로 전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눈치빠른 한 뭄바이 언론사 기자가 카마르를 인터뷰했다.  카마르의 환상과 예언은 뭄바이 일간지에 특종으로 실렸다. 기존의 막연한 예언과는 달리 러시아가 유럽을 침공하는 것으로 인해 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게 될 거라는 예언이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비록 그 관심이 오래가지 못해 잊혀지고 말았지만 그 기사를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소속 인도 지부 요원들이었다.  

어느 날 검은색 정장을 한 일본인들이 카마르를 찾아왔다. 카마르의 집 앞마당에는 카마르의 노모와  아내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고, 카마르의 여동생 푸시나는 카마르의 옆 방에 있었다.  일본인들이 선물 보따리를 한 아름 내밀며 카마르에게 뭔가를 부탁했다. 카마르가 부탁을 거절하자 일본인들이 이번에는 거액의 루피화가 든 돈 봉투와 금덩어리를 내밀었다. 

카마르는 잠시 갈등을 겪었다. 저 돈이면 병든 부모와 가난한 가족들을 평생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거절한다 해도 이들은 자신들의 부탁을 들어줄 다른 누군가를 찾아낼 것이 분명해 보였다.  눈한번 딱 감고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카마르는 그들에게 받은 루피화로 평소에 하고 싶었던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사서 목과 팔목에 걸고 다녔다. 

그로부터 이틀 후  어느 일본인이 카마르를 찾아왔다. 일본 주간지 <선데이 모리츠> 잡지사의 기자였다. 카마르는 미리 짠 대본대로 예언을 했다. 일본은 앞으로 발생할 제3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여 20여 년 후에는 세계를 지배할 나라로 부상할 것이며 한국에서는 우발적인 핵전쟁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될 거라는 예언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예전에 북한 김일성의 죽음과 김정일의 죽음을 정확히 맞추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일본 기자는 카마르의 가족과 친지도 취재했다. 가족과 친지들은 카마르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증언해 주었다.  카마르가 인도의 저명한 신비주의자 메어 바바의 수제자였다는 거짓말도 슬쩍 말해 주었다. 카마르와 가족들이 미리 말을 맞춰놓은 줄을 일본 기자가 알 턱이 없었다.  <선데이 모리츠> 기자는 일본으로 귀국하여 동북아재단의 마쓰다가 밝힌 예언을 토대로 하여 카마르의 사진과 함께  카마르와의 인터뷰 내용을 <선데이 모리츠>에 대서특필했다.

동북아재단 보고서와 관련한 모리 국장의 마쓰다 공작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모리가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엉뚱한 방향에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카마르의 예언이 일본에 보도된 지 한 달이 지나면서부터 카마르를 당황하게 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카마르는 일본인들에게 이미 성자와 같은 반열에 올라 있었고, 카마르가 사는 동네는 어느덧 일본인들의 주요 관광 코스가 되었다. 일본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카마르를 찾아 바라나시에 몰려들고 있었다. 그중에는 카마르를 심층 취재하기 위한 특별 취재단도 끼어 있었다.  도쿄의 주요 일간지 중 하나인 <도쿄 투데이> 기자 니시모토였다.

니시모토가 카메라 팀을 대동하고 바리나시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카마르의 과거 행적에 대해 수소문하고 있었다.  이러다간 카마르의 거짓 예언이 얼마 안 있어 들통 날지도 모른다. 카마르의 가족들은 카마르와 함께  멀리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카마르의 가족들은 더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카마르가 갑자기 실종된 것이다. 바라나시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카마르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돈을 노린 납치 사건인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가족들은 곧 알게 되었다. 카마르가 갠지스 강가에서 살해되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의 제보가 있었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카마르의 시신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카마르가 실종되자 일본 관광객들은 흥미를 잃고 더 이상 카마르를 찾지 않았다. 

니시모토 기자가 카마르에 대해 탐문 조사한 내용은 <도쿄 투데이>신문  9면 아래에 작은 단신으로 실렸다.  <어느 예언자의 죽음>이라는  짧막한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에 의하면 카마르는 인도의 저명한 신비주의자 메어 바바의 수제자가 아니었으며 평생을 교직에 몸담고 살아온 사람이다. 어느 날 검은색 복장의 일본인들이 카마르를 찾아오기 전에는 일본이나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과거에 북한 김일성의 죽음이나 김정일의 죽음을 예언한 사실도 없었다. 

또한  카마르가 일본에 대한 예언을 한 이후 갑자기 부자가 되어 흥청망청 돈을 썼다는 동네 사람들의 증언도 기사에 실었다.  그리고  그 후에 카마르가 실종되었으며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으로 기사는 마무리되었다. 니시모토의 기사는 일본에 대한 카마르의 예언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밝히는 중요한 내용이었지만 그 기사는 전혀 세간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도쿄 투데이> 편집국장으로서도 니시모토 기자가 카마르로부터 가짜 예언을 했다는 증언을 확보하지 않은 이상 기사의 가치는 크지 않다고 판단하여 작은 단신으로 처리한 것이다. 그나마 내각정보조사실로부터 기사 자체를 게재하지 말라는 압력이 빗발쳤으나 편집국장이 가까스로 막은 것이 니시모토 기자에게 위안이라면 위안일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 재단의 마쓰다는 니시모토 기자의 <도쿄 투데이> 신문 기사를 접하며 씁쓸한 기분을 억제할 수 없었다. 자신이 양심을 판 것으로 인해 선량한 인도인 한 명이 희생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리 국장은 과연 무서운 사람이다.  모리 국장이 이 모든 술수를 부린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른 실마리가 없는 한 마쓰다가 모리에 대해  취할 수단은 없었다.  

갠지스 강에 떠내려온 시신  /  출처 : 한겨레 2021-05-11
갠지스 강에 떠내려온 시신  /  출처 : 한겨레 2021-05-11

카마르가 실종된 지 사흘 후 해 질 녁 인도 북부 비하르주와 우타르프라데시주 경계에 있는 갠지스 강 인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 한 구가 떠밀려 내려왔다.  들개떼들에게 물어뜯겼는지 시신은 심하게 손상을 입은 상태여서 아무도 그 시신이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갠지스 강가에는 들개들뿐만 아니라 시체를 파먹는 독수리, 까마귀와 파리 같은 곤충들도 있었다. 

시신의 목에는 특이하게도 금목걸이가 걸려 있었고 양팔에는 금팔찌도 있었다. 카마르가 실종되기 전에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카마르의 지인이 그 시신이 카마르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시신의 몸에서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거둬가고,  그 대금으로 장작을 사서  갠지스 강에서 그 시신을 화장해주었다. 예언자 카마르는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져 갔다.

 그 장면을 지켜보며 눈물을 짓는 여인이 있었다. 카마르의 여동생 푸시나였다. 인도인들은 화장되어 갠지스 강에 뿌려지면 열반에 오를 수 있다고 여긴다. 푸시나가 카마르의 재를 갠지스 강에 뿌렸다. 부디 카마르가 열반에 들기를 기도하면서. 

푸시나는 일본인들이 카마르를 회유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예언을 해달라며 뇌물을 줄 때 옆 방에 있었다. 검은 양복의 일본인들이 찾아와 돈 다발을 내미는 모습을 보고 놀란  푸시나는  만일을 대비하여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녹취해 놓았다.  푸시나는 동영상이 담긴  USB 메모리가 가방에 잘 있는지 확인하고 주위를 살폈다. 누군가 자신을 감시할지도 모른다. 주위에 일본인처럼 생긴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던 푸시나는 그 후 종적을 감췄다. 

<계속>

 

편집 : 안지애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