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문
천왕문

이렇게 다시 매월당의 시 설잠(雪岑)을 읊조리며 천왕문을 들어서니 늘어진 소나무 가지 사이로 극락전이 우뚝 서 위용을 자랑한다.

극락전
극락전

극락전은 드물게 볼 수 있는 2층 불전(佛殿)으로 내부는 상 하층의 구분이 없는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으로 당시 목조 건축술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극락전 안을 살펴보니 내부에 거대한 좌불(坐佛) 셋이 안치되어 있는데, 중앙엔 아미타불, 그리고 좌우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극락전 앞 오층석탑
극락전 앞 오층석탑

잠시 부처님께 경배하고 왼쪽으로 돌아가니 '雨花宮'이란 현판이 걸린 전각이 보였다.

우화궁 현판과 주련
우화궁 현판과 주련

꽃비!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우화궁 현판을 중심으로 좌우 기둥에 주련(柱聯)이 걸려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시구(詩句)였다.

오른쪽으로

事業一爐香火足
生涯三尺短笻贏
鐘聲半雜風聲冷
夜色全分月色明

다시 왼쪽으로

天衾地席山爲枕
月燭雲屛海作樽
大醉遽然仍起舞
却嫌長袖掛崑崙

그리고 다시 옆으로

靜邀山月歸禪室
閑剪江雲袍納衣

라고 쓰여 있다.

天衾地席山爲枕!
하늘을 이불, 땅을 자리, 산을 베개로 삼는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시구다. 옳지! 생각이 났다. 바로 진묵대사의 시구다.

진묵(震默, 1563-1633) 스님은 본명이 일옥(一玉), 법호(法號)가 진묵으로 조선 명종 17년(1562)에 전라도 만경현 불거촌(萬頃縣佛居村),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성모암 자리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시기를 거쳐 인조 11년(1633)에 72세에 입적하였다.

진묵대사 본인이나 제자가 쓴 행적(行跡)은 없는데, 1850년에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짓고 전주 봉서사(鳳棲寺)에서 간행한 <진묵대사유적고(震默大師遺蹟考)>에 그의 일화 18편이 전한다.

진묵 대사는 위의 시에서 "대지를 자리로 삼아 누워, 하늘을 이불로 삼아 덮고, 산을 베개 삼아 베고 잔다(天衾地席山爲枕)”고 했다.

그리고 "구름을 병풍으로 두르고 달을 촛불로 삼아 바다 술통을 들이킨다(月燭雲屛海作樽)“ 했다.

또 "크게 취해 벌떡 일어나 춤을 추니(大醉遽然仍起舞) 긴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린다(却嫌長袖掛崑崙)”고 했다. 대자연 속에 녹아 들어가 하나가 된 걸림 없이 허허로운 마음, 物我一體!

하지만, 자유자재한 상태이지만 살아가려니 현실에서 허용된 만큼만 춤을 추며(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리지 않을 만큼만) 살아야겠다는 자세는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곱씹어봐야 할 만한 귀감이 되는 태도다.

오늘 여기 와서 오랜만에 매월당과 진묵대사를 만나 뵈니 나도 어느덧 시선(詩仙)이 된듯하다.ㅎㅎㅎ

하는 일은 향로에 향 사르는 일이고(事業一爐香火足), 평생에 남길 거란 석 자 짧은 지팡이 하나면 족하네(生涯三尺短笻贏).

종소리 바람소리 어울려 서늘하고(鐘聲半雜風聲冷), 밤경치 달빛 밝으니 더욱 좋아라(夜色全分月色明).

차에 올라 진묵대사의 이 시구를 다시 읊으며 귀경길에 올랐다. 차는 예상 밖으로 밀리지 않아 빨리 합정역에 도착했다.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강변로를 달렸다. 이때 강 건너 북악산 쪽으로 흰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는 게 아닌가! 문득 아까 본 무량사 우화궁 주련이 또 떠올랐다.

靜邀山月歸禪室
閑剪江雲袍納衣

조용히 산에 걸린 달 바라보고 선방에 돌아와,
한가로이 강가에 구름 잘라 도포에 솜으로 넣었네.

어느새 차가 여안당 집 앞에 도착했다.

2023. 2. 24.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 늙은이 쓰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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