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8월의 끝자락!

오늘은 손녀 세라와 은평역사 한옥박물관을 찾기로 했다.

지금 그곳에선 국립한국문학관이 서울 은평구와 협력해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 기획전을 열고 있다.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
삼국의 여인들, 새로운 세계를 열다

이 전시는 분명 한때 존재했지만, 지금은 남겨지지 않은 것을 살핀 것이다.

<삼국유사>는 제목 '遺事'에서도 알 수 있듯이 '正史'에는 포함되지 않않았지만, 당시 세상에 남아 있는 글과 이야기를 모아 기록한 것이다.

유학자의 시각으로 쓴 <삼국사기>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이야기와 정치적 비주류였던 불교, 여성에 관한 이야기는 제외했다.

허나, 당시 승려 일연(一然, 1206-1289)은 그런 이야기까지 더해져야 우리 고대사를 온전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삼국유사>에 넣었다.

<삼국유사> 안에 여성의 이야기는 남성보다 비중이 적지만, 전시에선 여성들이 자기 생각을 직접 표현한 부분에 주목했다. 즉, 2부의 미디어 아트는 선덕왕과 허황옥, 문희의 말을 직접 인용해 기록한 부분을 담았다.

<삼국유사> 내용을 화면으로 띄우고 일인칭 여성 화자의 한문 텍스트가 도드라지면 여성 성우의 목소리와 한글 해석을 곁들여 보여 준다. 마치 관람객이 고서 속 내용을 한줄 한줄 손끝으로 짚어가며 읽어 내려가듯 화면이  연출 된다.

전시 2부의 <삼국유사> 내용
전시 2부의 <삼국유사> 내용

특히 인상적인 것은 김유신의 동생 문희의 말이다. 문희가 언니의 꿈을 산 덕에 김춘추와 혼인하고 왕비의 자리에 오른다는 이야기다.

"내가 그 꿈을 사겠어요(我買此夢)!"  뭘로 꿈을 사겠냐는 언니의 물음에 문희는 "비단 치마를 주면 어때요?" 장난스러운 눈빛과 앳된 웃음소리가 오가지만 왠지 모를 긴장감이 슬그머니 차오르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처럼 이 전시회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캐내는 시도를 통해 익숙한 이야기를 관람객들이 다시금  상상하게 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처럼 이 전시는<삼국유사> 속의 여성들을 끌어내 새롭게 재조명했다.

전시는 모두 5부로 나누어 1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다'에선 건국 신화에 나오는 고조선을 세운 천신(天神)의 손자 단군왕검, 고구려를 세운 용맹한 주몽,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등, 일연은 이들의 어머니를 등장시켜 새로운 세상을 연 여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2부 '운명을 개척하다'에선 앞서 말한 지혜로운 면모와 여성으로 지닌 자긍심을 드러낸 선덕왕, 바다를 건너 머나먼 이국으로 자신의 소명을 좇아온 허황옥, 가야와 신라 두 세력을 잇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문무왕의 어머니 문희 등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3부 '낯선 존재와 만나다'에선 화랑 김현과 사랑을 나누고 희생으로 그 사랑을 지켜낸 호랑이 처녀,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인간은 물론 바다의 용(龍)으로부터 추앙받은 수로 부인, 용의 아들의 배필이 되고 역신과 동침한 처용의 아내, 낯선 세계 속 경이와 아름다움을 보여준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4부 '이야기를 남기다'에선 일연이 <삼국사기>에 빠진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와 신화 등을 통해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를 일깨웠다.

그리고 마지막 5부 '삼국의 여인들을 그리다'에선 이만익(李滿益, 1938-2012)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물을 그린 그림과 글을 통해 민족의 근원과 정서를 탐구할 수 있게 했다.

어느덧 해가 기울었다. 전시실을 나와 한옥 마을 골목길을 거닐다 쉼터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봤다. 

쉼터에서 잠시 휴식하고 있는 필자
쉼터에서 잠시 휴식하고 있는 필자

다시 내친김에 한옥마을 뒤 진관사(津寬寺)를 찾았다. 북한산 향로봉을 뒤로 엎고 진관사가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진관사 일주문
진관사 입구 일주문

길섶에 마애불이 어서 오라고 빙그레 안내한다.

진관사 입구 산자락 마애불
진관사 입구 산자락 마애불

때맞춰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석양 속에 여운을 그리고, 계곡물은 반야심경을 독송이라도 하듯 졸졸 흘렀다.!

禮佛鐘聲黃昏裏
溪谷石澗誦般若

손녀와 함께한 즐거운 하루였다.

2023. 8. 31. 

김포 하늘빛 마을 여안당에서 한송 쓰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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