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한겨울 뼈를 깎는듯한 모진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봄이 오면 곧은 기개로 은은한 향기를 퍼뜨리며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매화를 가리켜 '매일생한이나 불매향이라'(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추운 겨울에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하여, 매서운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우는 모습이 마치 불의에 굴하지 않고 지조와 절개를 지닌 기품 있는 선비를 연상케 한다고 하며, 난초(蘭), 국화(菊), 대나무(竹)와 함께 사군자(四君子) 가운데 하나로 칭송했다.

또한, 추위를 견디며 뜻을 펼치는 기개가 있다고 하여 소나무(松), 대나무(竹)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 추운 겨울의 세 벗)라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옛 선비들은 매화의 이러한 '고결함', '지조', '결백', ‘인내' 등을 당시 '선비의 정신'으로 삼았다.

지금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그 매화가 병풍 속에서 향기를 풍기고 있다.

바로, 조선 시대부터 근대까지 제작된 우리 옛 병풍들을 소개하는 <조선, 병풍나라 2>(4월30일까지)가 그것이다.

알고 보니 이 전시는 5년 전 이곳에서 열렸던 <조선, 병풍나라 1> 기획전에 이은 후속전이다.

지난 2월23일(목), '동우회' 역사탐방팀에서는 5년 전(2018년)에 이어 다시 열린 이 후속 전시를 보기 위해 그날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찾았다.

지하 전시장으로 들어가니 전시실 앞에서 먼저 전통화조도를 풀어헤친 현대 작품 미디어 병풍(이기남 작품)이 우리 일행을 맞았다. 꽃과 새, 나뭇가지가 모조리 화면에서 휩쓸려 나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이, 우리는 잠시 텅 빈 병풍을 마주했다.

병풍은 병풍인데, 그림이 없어지니 그것은 마치 하나의 영상 자막을 대하는 듯했다. 옳지! 이 전시가 그림에 역점을 둔 것이구나!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바로 전시실로 들어갔다.

병풍 속 그림에 초점을 맞추다

지난번의 전시가 병풍의 쓰임새나 모양에 맞춰졌다면 이번 전시는 그 안의 그림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50여 점의 작품이 선보였는데, 거의 대부분 병풍이 편평하게 펼쳐져, 화폭을 지그재그로 접을 때 생기는 공간감이나 입체감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림이 관람객 눈높이에 오도록 높낮이를 맞추어 설치한 배려는 매우 좋았다

이로써 이 전시가 회화 작품으로서 전시보다는 그 안의 그림에 초점을 맞춘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에 그림 병풍은 궁궐과 민간에서 두루 사랑받았다. 흥미를 끄는 것은 병풍이 어디에 쓰인 것이냐에 따라 병풍 그림 속의 어법과 미감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궁궐용 병풍이 풍성하면서도 섬세하게 만들어져 위엄이 가득했을 원래의 자리를 연상케 한다면, 각양각색의 민간 병풍은 그 앞에 앉아 있었을 주인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이번 전시는 총 7개의 크고 작은 전시 공간을 활용하여 각 주제별 병풍의 개성과 특징들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서로 다르게 조성하였다.

첫 번째 전시실로 들어갔다. 이 전시실엔 양반 사대부에서부터 서민에 이르는 민가에서 장수의 복을 기원하고 공간을 치장하며 관혼상제의 의례용으로 썼던 민간병풍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장수를 기원하고 이상향을 꿈꾸는 <무릉장생도8폭병풍(武陵長生圖八幅屛風)>을 비롯하여 풍요로움과 다산, 과거 합격 및 출세를 염원하는 <어해도10폭병풍(魚蟹圖十幅屛風)>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무릉장생도8폭병풍(武陵長生圖八幅屛風)>
<무릉장생도8폭병풍(武陵長生圖八幅屛風)>
<어해도10폭병풍(魚蟹圖十幅屛風)>
<어해도10폭병풍(魚蟹圖十幅屛風)>
<어해도10폭병풍(魚蟹圖十幅屛風)>
<어해도10폭병풍(魚蟹圖十幅屛風)>

한편, <문자도8폭병풍(文字圖八幅屛風)>에서는 전통적인 유교 윤리인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여덟 글자를 개성 넘치게 꾸며낸 자유분방한 화풍을 살펴볼 수 있었으며, <삼국지연의도8폭병풍(三國志演義圖八幅屛風)> 및 <구운몽도8폭병풍(九雲夢圖八幅屛風)>에서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소설의 장면들이 병풍이라는 매체에서 어떻게 시각화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자도8폭병풍(文字圖八幅屛風)>
<문자도8폭병풍(文字圖八幅屛風)>
<삼국지연의도8폭병풍(三國志演義圖八幅屛風)>
<삼국지연의도8폭병풍(三國志演義圖八幅屛風)>
<구운몽도8폭병풍(九雲夢圖八幅屛風)>
<구운몽도8폭병풍(九雲夢圖八幅屛風)>

이처럼 민간병풍을 전시한 공간에서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 개성 넘치고 자유분방한 작품에서부터 공들여 그려 세밀한 필치를 보이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감한 미감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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