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44년 10월 27일자에 실린 일본군 위안부 모집공고(출처 : 하성환) 불과 10여일을 앞두고 긴급히 위안부를 모집한다는 내용으로 조선총독부도 깊숙이 관여했음을 알려준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44년 10월 27일자에 실린 일본군 위안부 모집공고(출처 : 하성환) 불과 10여일을 앞두고 긴급히 위안부를 모집한다는 내용으로 조선총독부도 깊숙이 관여했음을 알려준다.

2020년 5월 정대협 활동가 ‘윤미향 사태’ 당시, 조중동 수구 언론을 비롯해 한국 사회 다수 언론이 보인 행태는 기레기 수준을 넘어 참혹했다. 심지어 과거 사회 운동으로 명망을 쌓았던 진보 인사들조차 정대협 활동가 윤미향 의원의 ‘위선’을, 나아가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정대협 후신) 활동가들의 ‘도덕성’을 의심하며 질타했다. 그러나 ‘윤미향 사태’는 검찰의 불순한 의도(?)와 언론이 조작 날조한 혐의가 짙다.

사건의 발단은 이용수 피해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우연히 시작되었지만 검찰 수사 자체는 기획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제2의 조국 사태’를 연상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실제로 1심 재판에서 검찰은 윤미향 의원을 사기, 업무상 횡령을 비롯해 무려 14가지 혐의로 기소하면서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그렇지만 1심 판결은 13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윤미향과 정의연, 그리고 주변을 여러 차례 압수 수색했음에도 검찰의 무리한 기소였다.

강덕경(16세), 김학순(17세),  길원옥(13세), 김복동(15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 생전 모습(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강덕경 할머님은 그림을 통해 일본군 만행을 고발했고 김학순 할머님은 1991년 8월 14일 명동 향린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출신임을 최초로 고백했으며 13세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길원옥 할머님은 오랜 시간 윤미향 활동가와 <우리집 쉼터> 손향미 소장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김복동 할머님은 베트남 전쟁, 콩고 내전 등 전쟁으로 고통을 받은 피해여성을 지원하는 데 거액을 기부하는 등 여성인권활동가로 거듭나셨고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다.(출처 : 하성환)
강덕경(16세), 김학순(17세), 길원옥(13세), 김복동(15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 생전 모습(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강덕경 할머님은 그림을 통해 일본군 만행을 고발했고 김학순 할머님은 1991년 8월 14일 명동 향린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출신임을 최초로 고백했으며 13세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길원옥 할머님은 오랜 시간 윤미향 활동가와 <우리집 쉼터> 손향미 소장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김복동 할머님은 베트남 전쟁, 콩고 내전 등 전쟁으로 고통을 받은 피해여성을 지원하는 데 거액을 기부하는 등 여성인권활동가로 거듭나셨고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다.(출처 : 하성환)

정대협 활동가 윤미향 의원은 30년 넘게 일본군 위안부 수요시위를 이끈 정대협의 산증인이다. 일본군 위안부 후원금 회계 부정을 통해 결코 사익을 추구한 위인이 아니다. 그녀는 30년 동안 전국을 돌며 일본군 위안부 만행을 알리기에 분투했다. 그녀는 자신이 행한 수많은 강연으로 받은 강연료를 그때마다 고스란히 정대협에 기부했다. 그 액수가 1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2020년 5월 당시, 검찰은 윤미향의 ‘위선’을 기획 수사하듯이 언론에 흘리며 기소했다. 정치적 의도에 따라 ‘공권력’을 남용한 의심을 피할 수 없는 순간이다. 그러자 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이 시민운동가 출신 윤미향 의원을 ‘사악한 위선자’로 악마의 편집을 일삼았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외벽에 부착된 평화나비 노란 스티커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과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펼침막(출처 : 하성환) 윤미향 활동가는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를 탄생시킨 주역이자 피해할머님들의 보금자리인 <우리집 쉼터>와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살아있는  교육문화공간인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출처 : 하성환)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외벽에 부착된 평화나비 노란 스티커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과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펼침막(출처 : 하성환) 윤미향 활동가는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를 탄생시킨 주역이자 피해할머님들의 보금자리인 <우리집 쉼터>와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살아있는  교육문화공간인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출처 : 하성환) 

결국 정의연(정대협) 산하 「우리 집 쉼터」 손향미 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사태를 초래했다. 글쓴이가 보기에 손향미 소장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검찰(권력)과 언론(권력)의 합작품, 아니 정치검찰과 기레기가 자행한 사회적 타살이다. 문제는 절대다수 시민사회가 침묵했다는 사실이다.

정치검찰과 기레기가 ‘정의’의 이름으로 칼날을 휘두를 때 사건의 본질을 통찰하지 못한 채, 일부는 반신반의하거나 또 다른 일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민 활동가를 의심했다. 중요한 것은 검찰 권력과 언론 권력이 저지르는 불의 앞에 시민사회의 저항은커녕 절대다수가 침묵했다는 사실이다. 2020년 ‘윤미향 사태’는 검찰 권력과 주류언론이 한패가 되어 초래한 합작품이자 비극이다.

그 비극 앞에 시민들은 ‘비판적 지성’을 발휘하기보단 반신반의하면서 침묵했다. 2020년 5월 대한민국 시민사회가 보여준 현실은 그 자체로 안타깝다 못해 서글펐다. 이는 마치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논두렁 시계’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언론은 검찰발 악의적 기사를 쉼 없이 내보냈고 심지어 진보언론을 자처한 『한겨레』 신문조차 노무현의 ‘도덕성’을 의심하고 비난했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안에 있는 노회찬 무덤(출처 : 하성환) 노회찬은 50년대 죽산 조봉암을 40년 만에 계승한 사민주의 대중정치인으로 죽산 선생만큼 휴머니즘 가득한 직업정치인이었다. 7월 한여름 뙤약볕에 노란 모자를 쓴 젊은 여성이 배낭을 벤치에 던져두고 묘소를 손질하고 있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안에 있는 노회찬 무덤(출처 : 하성환) 노회찬은 50년대 죽산 조봉암을 40년 만에 계승한 사민주의 대중정치인으로 죽산 선생만큼 휴머니즘 가득한 직업정치인이었다. 7월 한여름 뙤약볕에 노란 모자를 쓴 젊은 여성이 배낭을 벤치에 던져두고 묘소를 손질하고 있다.

중요한 건 시민사회가 침묵하며 방관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행태는 2018년 드루킹 사건 당시 『조선일보』의 악의적 편집과 거짓 보도 앞에서 노회찬 의원의 죽음에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우리는 그 불행한 현실을 똑똑히 기억한다. 검찰 권력과 언론 권력을 개혁하고 감시하지 않는 한, 그러한 죽음은 반복될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은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탄생한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만이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 그것은 오직 ‘민주시민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이주외국인과 사회 소외계층,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공감과 배려의 능력을 길러내야 한다. 그리고 존중과 상생의 삶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민주주의는 높은 시민 의식을 갖춘 민주시민에 의해서 유지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향후 10년이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경고음이 연일 울리는 ‘기후 위기 시대’ 아닌가! 절체절명의 ‘기후 위기 시대’! 시민 모두가 녹색 시민으로서 일상을 살아가는 꿈을 꾸는 것은 지나친 이상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이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삼성고 학생들이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평화나비 노란 스트커에 염원을 담아 외벽에 붙이고 있는 모습(출처 : 하성환)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삼성고 학생들이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평화나비 노란 스트커에 염원을 담아 외벽에 붙이고 있는 모습(출처 : 하성환)

요컨대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간직한 시민사회 형성 여부는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짓는 관건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과두제 지배 형태나 소수 엘리트 통치가 아니다.

서울 영등포구 소재 여의도고등학교 NGO 동아리 학생들이 옛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피켓 시위하는 모습(출처 : 하성환)
서울 영등포구 소재 여의도고등학교 NGO 동아리 학생들이 옛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피켓 시위하는 모습(출처 : 하성환)

더구나 다수결 원리를 내세운 중우정치 또한 아니다. 오직 깨어있는 시민의 ‘참여’와 권력에 대한 ‘비판’, 그리고 적극적 ‘연대’를 통해 유지되고 발전하는 체제다.

그런 의미에서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북서유럽 민주시민교육’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교사로서 시대의 소명에 부합하는 것이자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이라 생각한다.

1999인권연대를 창립한 오창익 사무국장 역시 자신의 강연료를 고스란히 인권연대에 기부한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달리 인권연대는 검찰, 교도소, 경찰 등 권력기관을 대상으로 인권 침해 감시와 연수를 감당해 오고 있고 방학을 이용해 교사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 연수를 꾸준히 실천하는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인권 NGO이다. 후원자가 3천 명, 상근자가 5명 정도로 열악하나 그 역할은 지대하다정의기억연대(정대협 후신)는 2020년 5월 당시 상근활동가 7명과 정기후원자 700명 수준으로 미국 의회와 유럽의회로 하여금 일본군 위안부 만행 규탄과 결의문 채택을 이끌어 내는 등 한국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대신 해내고 있었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