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만나려면 튀르키예로 가라. 그중 에페소 유적은 로마를 볼 수 있는 최고봉이다."

누군가 한 이 말을 에페소 가기 전에 새겼어야 했는데... 너무 뭘 모르고 에페소에 갔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인데.... 그렇게 모를 수 있었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그 위대한 로마 유적을 감상은커녕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왔다. 그래도 본 만큼만이라도 기록하고자 한다.

에페소의 역사 

에페소의 역사는 다소 복잡하고 다사다난하다. 

기원전 6000년경 신석기시대에 에베소 주변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기원전 3000년경인 청동기 시대에도 정착지가 있었고, 소아시아 한 국가의 수도가 될 정도로 번성했다.

기원전 10세기 그리스 사람들이 대거 이주해 왔다. 아테네의 왕자 안드로클로스는 부왕이 죽자 아테네를 떠나야 했다. 그는 원주민을 몰아내고 나머지 주민들과 연합해 에페소를 도시로 만들었고, 이오니아 연맹 도시에 가입했다. 그의 통치 동안 도시는 번영했다.

기원전 650년경에서 335년경까지 300여 년 동안 킴메르인 공격, 폭군 통치, 백성 반란, 공의회 통치, 리디아 정복, 페르시아 통치, 페르시아에 대항하는 이오니아 반란 참여,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아테네와 동맹, 스파르타 동맹, 다시 페르시아 통치로 이어지는 험난한 과정을 밟았다. 이 전쟁들은 에베소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에베소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이어서 쉽게 낯선 사람들과 통합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리디아 통치 기간인 기원전 550년 세워졌다. 

기원전 550년 세워진 아르테미스 신전은, 200년 후  기원전 356년 헤로스트라투스에 의해 불살라졌다. 헤로스트라투스는 자신의 이름을  떨치려는 목적으로 이 신전에 불을 질렀다. 신전 대부분이 소실되어 현재는 기둥 하나만 남아 있다. 사진은 아르테미스 신전 모형 (터키 이스탄불 미니아투르크 공원 /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iniaturk_009.jpg) 
기원전 550년 세워진 아르테미스 신전은, 200년 후  기원전 356년 헤로스트라투스에 의해 불살라졌다. 헤로스트라투스는 자신의 이름을  떨치려는 목적으로 이 신전에 불을 질렀다. 신전 대부분이 소실되어 현재는 기둥 하나만 남아 있다. 사진은 아르테미스 신전 모형 (터키 이스탄불 미니아투르크 공원 /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iniaturk_009.jpg)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물리친 후 그리스 도시들은 해방된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가 죽자, 에베소는 알렉산더 휘하 장군이었던 리시마코스가 통치한다. 리시마코스는 큰 어려움을 만난다. 수 세기 동안 Küçük Menderes(=카이스트로스 ) 강이 침식되어 퇴적물이 평야와 해안을 채우면서 해안선은 서쪽 바다로 이동한다. 습지가 넓어지면서 모기가 창궐하고 말라리아 전염병이 돌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리시마코스는 아르테미스 사원 주변의 항구와 초기 정착지를 버린다. 2km 떨어진 장소로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하수구를 막아 고대 도시는 범람시킨다. 이 새로운 정착지가 지금 에베소다. 

보라 동그라미는 에페소, 현재 에페소와 가장 가까운 해변은 Pamucak Beach로 약 8km 거리, 붉은 동그라미는 옮겨간 Küçük Menderes 강의 하구, 초록 동그라미는 최초의 도시와 항구가 있던 곳, 아르테미스 신전도 여기 있었다.  
보라 동그라미는 에페소, 현재 에페소와 가장 가까운 해변은 Pamucak Beach로 약 8km 거리, 붉은 동그라미는 옮겨간 Küçük Menderes 강의 하구, 초록 동그라미는 최초의 도시와 항구가 있던 곳, 아르테미스 사원도 여기 있었다.  

기원전 281년 리시마코스 사망 후 셀레우코스 제국의 일부가 된다. 기원전 246년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도시를 통치한다. 잠시 페르가몬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133년 로마공화국이 통치하게 된다. 

기원전 88년 로마 정부의 과다한 세금에 폰투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는 반란을 일으킨다. 폰투스 군대는 소아시아의 많은 도시를 정복했고, 그는 라틴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을 대량 학살했다. 주로 로마인과 이탈리아 시민 80,000명 이상이 죽었다. 3년 후 로마가 탈환했지만, 도시와 마을도 상당한 손실을 보았다.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에베소를 속주 아시아의 수도로 삼은 후 에베소는 총독의 관저이자 상업 중심지가 되면서 다시 번영을 누린다. 개선문, 송수로를 시작으로 오랜 기간 화려하면서도 실용적인 공공건물들이 들어선다. 당시 에베소는 로마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하고 큰 도시였다. 

서기 17년 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본다. 하지만 회복된 후 다시 무역과 상업의 중요한 중심지가 된다. 서기 110년 셀수스 도서관도 이때 건설되고 인구가 25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서기 263년 도시와 신전은 고트족에 의해 파괴된다.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재위 306년~337년)는 도시를 재건했지만,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후 에베소는 더욱 쇠퇴한다. 고대 어머니 여신 아르테미스 숭배는 금지되고 각종 신전은 기독교도들에 의해 파괴된다. 에베소는 더는 항구로 이용 가치가 없어지고,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면서 점점 소도시로 전락한다.  

1090년에 셀주크가 들어왔고 이어 오스만이 지배하면서 에베소는 15세기에 사람들의 시야에서조차 사라진 완전히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1839년에 첫 발굴이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오스트리아와 튀르키예 학자들이 발굴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발굴된 유적은 전체 30% 정도라고 한다.

에페소 남쪽 문에서 북쪽으로 우리가 따라 갔던 유적 길 
에페소 남쪽 문에서 북쪽으로 우리가 따라 갔던 유적 길 

 

오데온(Odeon)

에페소 유적지에 들어서서 처음 만난 유적이다. 오데온은 소극장이면서 회의장이다. 예술 공연도 열고 관료들이 모여 토의도 하는 장소다. 서기 150년 경 에베소의 부자 블리우스 베디우스 안토니누스(Publius Vedius Antoninus)의 후원으로 지어졌다. 지붕이 있었으며 22개의 계단을 가진 관중석에는 약 1,5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근처의 베디우스 경기장도 블리우스 베디우스 안토니누스의 후원으로 지어졌다. 

오데온 
오데온 
오데온 옆 통로.
오데온 옆 통로.

로디안 페리스타일(Rhodian Peristyle)'과 프리타네움(Prytaneum) 

로디안 페리스타일은 아우구스투스 시대(기원전 27년~서기 14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신격화된 카이사르와 로마 여신 혹은 아르테미스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헌정된 신전이라고 한다. 

로디안 페리스타일 기둥
로디안 페리스타일 기둥

이곳을 발굴하던 중 이곳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여신 동상 2개가 발견되었다. 아래 안내판에 있는 아르테미스 동상이다.

로디안 페리스타일(Rhodian Peristyle)'과 프리타네움(Prytaneum)  안내판
로디안 페리스타일(Rhodian Peristyle)'과 프리타네움(Prytaneum)  안내판

고이 누워있는 상태로 발굴된 이 여신상은 파손 흔적이 없다. 기독교가 공인되었을 때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에페소에 있는 신상들을 파괴했다. 아르테미스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에페소 사람들이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하던 대상이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사랑했던 에페소 시민들은 그 파괴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여신상을 땅에 묻었다. 여신상이 파손 없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한다.

에페소 박물관에서 만난 발굴된 아르테미스 여신상
에페소 박물관에서 만난 발굴된 아르테미스 여신상

아르테미스 동상은 현재 셀주크에 있는 에페소 박물관(Ephesus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프리타네움은 고대 그리스에서 저명한 손님에게 공식적 환대를 했던 공회당 혹은 시청 같은 공공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말한다. 프리타네움은 '로디안 페리스타일'과 같은 시기에 바로 옆에 지어졌다.  에베소 통치자들의 공식 축하 행사, 피로연, 연회를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Prytaneum의 재구성 된 기둥
 Prytaneum의 재구성 된 기둥

멤미우스 기념비(Memmius Monument)

에페소 역사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기원전 87년, 폰투스 미트리다테스 6세는 로마의 과한 세금에 지쳐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3년 후, 독재자 술라가 이끄는 로마 군대가 에베소를 탈환했다. 서기 1세기 술라의 손자 멤미우스(Memmius)가 에페소 탈환을 기념하는 승리의 아치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는 4면이 있는 로마 개선문식 아치 형태였다. 이 기념비 정면에는 술라와 그의 군대의 위업과 도시 해방을 알려주는 비문이 있다. 술라, 그의 아들 가이우스 멤미우스, 그의 손자(가이우스 멤미우스)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림이 기념비 부조에 묘사되어 있었지만, 이들 중 많은 부분이 손실되었다.  

멤비우스의 아버지 가이우스와 할아버지 술라의 부조

도미티아누스 광장(Domitian Square)

도미티아누스 광장은 도미티아누스 사원 근처에 있는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서 보면 양쪽에 멤미우스 기념비(Memmius Monument)와 폴리오 분수(Pollio Fountain)를  볼 수 있다.

광장은 상업 중심지로 많은 상점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점 문으로 사용되었을 몇 개의 작은 아치형 건물도 남아있다. 에베소는 다른 로마 도시보다 많은 상점이 있었다. 이는 방대한 해외 무역을 증명하는 것이며 또한 이 도시의 부를 가져왔다. 

도미티아누스 광장의 폴리오 기념비(Pollio Monument),
도미티아누스 광장의 폴리오 기념비(Pollio Monument),
화환 부조로 장식된 둥근 베이스 
화환 부조로 장식된 둥근 받침대 

황소 머리가 이고 다니는 화환으로 장식된 둥근 받침대가 도미티아누스 광장 중앙에 서 있다.  4세기 중반에 도시의 다른 부분에서 옮겨온 것으로 본다.  황소 장식은 다산과 풍요를 나타내고 제단은 희생 제물을 위한 제단일 수 있다고 한다. 

니케의 부조 

날개 달린 여신 니케(=나이키) 부조도 이 광장에 있다. 니케의 한 손에는 승리를 상징하는 올리브 잎으로 엮은 왕관과 다른 한 손에는 승리의 열매를 상징하는 야자수 가지로 날개를 펼치고 있다.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이다. 매서운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기서 나이키 로고도 찾아볼 수 있다. 

헤라클레스 문(Hercules Gate)

쿠레테스 거리 입구에 헤라클레스 문이 있다.  이 문을 기점으로 에페소는 업타운과 다운타운으로 나뉜다. 이 문은 2세기에 지어졌고 부조는 4세기 또는 5세기에 다른 곳에 있던 걸 가져온 것으로 추정한다.

헤라클레스 문

헤라클레스 문은 삼단 계단 위에 있고 문 폭이 좁다. 쿠레테스 거리가 이 문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계단과 입구 폭이 좁아 바퀴 있는 마차나 수레는 지나다닐 수 없게 했다. 보행자 전용도로가 시작되는 문이다.   

헤라클레스 문 (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phesus_-_Heracles_Gate.jpg)
헤라클레스 문 (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phesus_-_Heracles_Gate.jpg)

두 개 기둥에는 헤라클레스를 조각한 부조가 있다. 원래 이 문 이외에 6개의 기둥이 있고 2층 건물에 아치형 통로를 가진 건물이었다고 한다. 부조가 있는 기둥 중 일부는 도미티아누스 광장으로 이전되었다. 

쿠레테스 거리(Curetes Street) 

쿠레테스 거리는 에베소 주요 도로 중 하나다. 헤라클레스 게이트에서 셀수스 도서관까지 이어지는 길로 남쪽에서 북쪽을 따라 뻗어 있다. 이 거리는 기원전 3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적어도 천 년 동안 사용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갈 도로로 지어졌으나 로마 시대에 처음으로 대리석 돌로 포장되었다. 길이는 210m, 너비 6.8m~10m 었다. 해발 약 20m로 약간 가파르게 올라가다 내려간다.

쿠레테스 거리의 오르막길
쿠레테스 거리의 오르막길
쿠레테스 거리의 내리막길
쿠레테스 거리의 내리막길

이 거리를 따라 분수, 동상, 사원, 상점 등이 있었다. 경사면에는 부자들이 사는 집도 많이 있었다.  하수도 시스템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면 돌에 쇠로 된 손잡이가 있다. 맨홀 뚜껑 역할을 하는 바위를 들어올리기 위한 손잡이라고 한다. 

쇠로 된 손잡이가 있는 대리석 포장길
쇠로 된 손잡이가 있는 대리석 포장길

이 거리는 서기 3세기와 4세기에 지진으로 반복적으로 손상되었고 보수 공사를 거쳤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붕괴한 기둥들은 다른 지역에서 수집된 기둥들로 대체되면서 서로 다른 건축 양식이 혼합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트라야누스 분수(Trajan Fountain)

서기 104년 이 분수는 트라야누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쿠레테스 거리 북쪽 끝에 지어졌다. 이 분수는 에베소에서 가장 웅장한 3대 분수 중 하나다. 로마와 마찬가지로 에베소도 분수의 도시였다. 로마 시대에 대부분의 가정은 분수대에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매일 시민, 하인, 노예는 공공 분수에서 물을 채우기 위해 그릇을 들고  달려갔다. 분수는 장식 역할도 있었지만 물 공급소 역할도 했던 것이다. 

트라야누스 분수(Trajan Fountain)

앞쪽과 뒤쪽으로 분수 두 개가 있었다. 뒤쪽 분수는 코린트식 기둥으로 둘러싸였고, 가운데 트라야누스 황제의 거대한 동상이 있었다. 이 가운데 동상 기둥에서 물이 흘러나왔고 아래  작은 분수대로 흘렀다. 동상 비문에는 '세계가 황제의 발아래 놓여 있다'라고 적혀 있지만 현재는 트라야누스 동상을 받쳤던 받침대와 발 한 개만 남아있다. 

하드리아누스 사원(Temple of Hadrian)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5 현재 중 한 명이다. 그는 평생을 로마 지방 도시를 순방했다고 한다. 서기 128년 에페소 부자인 P. Quintilius Valens Varius는 하드리아누스를 위한 사원을 지었다. 그는 인근 목욕탕(Varius 목욕탕)도 지은 사람이다. 안탈리아 사람들이 그의 방문을 기념하여 '하드리아누스의 문'을 지은 것처럼... 에페소 시민들도 그를 사랑해서 지었을까? 사실은 로마 황제에게 헌정 사원을 짓는 것은 아나톨리아에서 널리 퍼진 관습이었다고 한다. 지방 도시가 중앙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다. 에베소에는 이런 사원이 두 개 있는데 다른 하나는 도미티아누스 광장 옆에 있던 도미티아누스 사원이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하드리아누스 사원

사원의 정면에는 아치를 지지하는 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있다. 가운데 기둥은 곡선이고, 양옆 기둥은 정사각형이다. 아치문 꼭대기 한 가운데 한 도시의 번영과 운명을 지키는 수호신 티케의 부조가 있다.

티케의 부조
티케의 부조

아치문을 들어서면 건물이 나온다. 이 건물 현관 위 반원형 프리즈에 또 아름다운 부조가 있다. 아칸투스 잎 장식과 함께 서 있는, 횡액을 막아주는 메두사의 부조다. 구불구불한 뱀의 머리칼이 특징인 메두사이긴 하지만 메두사는 보통 얼굴만 있고 몸통은 없으므로 다른 여신, 꽃과 풍요의 여신 '플로라'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메두사 혹은 플로라의 부조
메두사 혹은 플로라의 부조

건물 현관 양쪽 프리즈에는 에베소 탄생 이야기가 부조되어 있다. 그리스 왕자 안드로클로스는 아테네를 떠날 때 델포이의 신탁을 받았다. "물고기와 멧돼지가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라는 신탁을 받은 안드로클로스는 에게해 앞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불에 구워 먹었다. 그때 바람이 불어 불똥이 산으로 튀었다. 산에 불이 났고 산불에 놀란 멧돼지가 뛰어 내려왔다. 안드로클로스는 "아... 이게 바로 신탁의 의미구나" 생각하곤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프리즈에 새긴 탄생 이야기 부조
프리즈에 새긴 탄생 이야기 부조

지하실에는 한때 신으로 숭배된 하드리아누스 황제 동상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 에베소에 있는 현관 위 부조는 복사본이다. 부조의 원본은 에베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4세기에 지진이 발생하여 사원은 보수되었다. 하지만 결국 파괴되었다. 사원이 언제 파괴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원은 1957~1958년에 발굴된 원래 조각과 현대 건축 자재로 재건되었으며, 이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거쳤다.

하드리아누스 사원 재현 평면도(출처 : 에페소 안내판)
하드리아누스 사원 재현 평면도(출처 : 에페소 안내판)

셀수스 도서관과 대극장은 다음 편에...

참고 사이트 : 다음 백과, 위키 백과
참고 사이트 : 에페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