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신문 편집자주_ 헌법과 보건의료기본법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성별, 나이,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에 상관없이 건강권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환자 수와 수익이 직결되고 병·의원이 스스로 운영비를 벌어야 하는 구조 속 누군가는 헌법이 보장한 건강할 권리를 박탈 당했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병원을 방문하고 외래 환자 발길이 끊기자 감염병 대응에 소극적이었던 의료기관들의 행태가 이를 방증한다. 이 같은 결과는 운영비 지원이 없는 민간의료기관에서 뚜렷했고, 코로나19 환자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수용했던 공공의료기관은 진료를 받던 다른 질환 환자들이 병상을 비워야 하는 등 또 다른 문제를 낳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헌법적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두고, ‘전문성’을 중시하는 ‘의료’라는 영역에 시민의 주체성이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지난 10월 <옥천신문>은 전국 최초 면 단위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든 홍성군 홍동면 사례를 보도했다.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우리동네의원의 주요 역할에는 병·의원을 ‘찾지 않는’ 예방 활동도 있는데 ‘환자 수=병·의원 수익’ 구조에서는 선뜻 할 수 없는 결정이다. 이는 의료기관의 책임과 역할, 방향성을 정하는데 주민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의료 영역에 시민의 주체성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일본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민간의료기관’ 단체인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는 정부 지원 유무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코로나19 감염병에 적극 대응했다. 민의련은 주민이 주체적으로 설립한 의료기관의 연합회로 ‘의료는 공공재’라는 가치를 지역 주민과 의료인이 공유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병·의원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가 공유된 70년 역사는 농어촌 지역의 의사 수 부족, 초고령화 현상 속 의료기관 부족 등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간의료기관의 연합회인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는 70년간 차별없는 진료를 지향해 왔다. 사진은 코로나19 발생 당시 초기 대응에 나선 민의련 산하 의료법인 건생회와 소속기관인 타치카와 상호병원 관계자들.
민간의료기관의 연합회인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는 70년간 차별없는 진료를 지향해 왔다. 사진은 코로나19 발생 당시 초기 대응에 나선 민의련 산하 의료법인 건생회와 소속기관인 타치카와 상호병원 관계자들.


■환자는 돈이 아니고 의료는 ‘서비스’가 아니다

세계대전 이후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의 의료 수요를 해소하기 위해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설립한 의료기관들의 연합회인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는 1953년 6월7일 발족해 올해 70주년을 맞았다. 민의련 소속 의료법인 건생회 산하 타치카와 상호병원 역시 전신인 타치카와 진료소가 1951년 설립될 당시부터 차별없는 의료를 지향해 왔다. 

타치카와 상호병원이 속한 도쿄의 타치카와시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육군 주거 단지가 있던 곳으로 적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전후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서 주민들이 폭발음에 시달렸으며 성매매 업소, 마약 거래가 성행한 지역이었다. 이에 빈곤층, 재일한국인 등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누구나 진료받을 의원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이러한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져 취약계층 대상 무료·저가 진료사업 등으로 구현되고 있다. 타치카와 상호병원은 건물 1층에 칸막이 상담실을 두고 의료비 상담을 하고 있으며 필요한 대상에게 의료보험 자부담금을 면제 혹은 감면해주고 있다. 그 대상은 △의료보험을 적용받기 위해 필요한 보건증이 없는 경우 △구조조정이나 실업으로 소득이 없는 경우 △병이나 장애로 취업이 어려워 생활비도 벅찬 경우 등 의료보험 자부담비조차 지불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취약계층이다. 

2021년 4월부터 2022년 2월까지 타치카와 상호병원에서만 41건, 감면금액 89만3천325엔(약 782만원) 규모의 지원이 있었다. 병원 측에 따르면 전체 환자 가운데 평균 7~8%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해당한다. 타치카와 상호병원, 치과의원을 포함한 의료법인 건생회 소속 4개 사업소로 범위를 넓히면 같은 기간 309건, 감면금액 298만4천556엔(약 2천612만원) 상당의 사업이 추진되었다. 

의료법인 건생회 마츠자키 마사토 전무이사는 “민의련은 전쟁 당시부터 빈곤한 사람들, 결핵 환자 등이 돈에 신경 쓰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받는 것을 목표로 시작되었다”라며 “무료저가 진료사업은 비용이 들긴 하지만 전체 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이러한 활동을 더욱 넓혀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다인실 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특실에 입원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입원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애초에 만들지 않는다. 소위 브이아이피(VIP) 병실을 두지 않는 것은 ‘환자를 돈으로 보지 않는’ 민의련 정신의 상징과도 같다. 병원 측은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벗어나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1인실 혹은 2인실을 제공하지 않는다. 

마츠자키 마사토 전무이사는 “민의련에게 중요한 것은 무차별평등의료다. 돈으로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다른 병원은 개별실에서 호텔 서비스를 해주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코로나19 발생땐 정부보다 빨리  초기 대응

타치카와 상호병원이 코로나19 사태 초기 공중보건 위기에 적극 대응한 배경도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앞선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외래 환자 감소, 코로나 환자 병상 확보에 따른 수익 감소를 겪다 최근에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타치카와 상호병원은 옥천신문이 방문한 당일에도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해 일부 구역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정부가 코로나 환자 병상 확보를 위해 병상을 비워두는 병원에 보조금을 지급해왔지만 외래 환자 수 감소 등으로 인한 타격을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타치카와 상호병원 마수코 모토시 사무장은 “주민들의 건강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보조금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보조금과 상관없이 코로나 환자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기 수개월은 1억엔(약 8억7천만원) 적자가 발생했다. 지금 월수입은 6억엔(약 52억5천만원)으로 회복했음에도 기존 수입의 20%가량이 감소했다”며 “코로나19 대응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환자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경영상, 재정상 어려움을 공개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다 부원장이 코로나 최일선에 있는 병원의 상황을 언론을 통해 알렸고 국회의원을 찾아 보조금의 필요성을 강하게 이야기해 성사됐다. 그때 당시 구조조정을 우려하는 직원 가족들의 전화가 빗발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건생회 히라노 유우조 사무부장은 “2023년 4월~9월(일본의 상반기)도 여전히 적자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다른 환자들이 베드(병상)를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수익이 비었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보조금이 줄어들다 10월부터는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건생회 자료에 따르면 타치카와 상호병원은 상반기 경상이익에서 2억6천만엔(약 22억8천만원) 가량 적자가 났다. 당초 예산과 비교하면 4억1천만엔(약 35억9천만원)가량 적자를 봤다. 보조금 1억6천만엔(약 14억원)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적자다. 코로나 확산세가 수그러들었지만 타치카와 상호병원은 현재까지 6~9개 가량의 병상을 코로나 전용 병상으로 남겨 두고 있다. 


■ 전문화된 의료 체계 속 방황하는  환자·만성질환자, 종합내과가 수용해 의료 접근성 낮춰

타치카와 상호병원은 환자들의 경제적 문턱을 낮추고, 전염병 사태 때도 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의료 접근성을 저해하는 다양한 요인을 해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의료 체계가 나날이 전문화되어가는 분위기 속에 어느 과를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환자들을 위한 종합내과를 운영 중이다. 종합내과는 우리나라의 가정의학과 격에 해당하는 곳이다. 

타치카와 상호병원 종합내과는 △다양한 합병증과 만성질환을 가진 고령 환자가 여러 과를 전전하는 경우 △질병의 명칭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어느 과를 가야할지 모르는 경우 △스트레스 등 정신적인 문제가 동반되는 경우에 대처하고 있다. 

민의련 부회장을 맡고 있는 타치카와 상호병원 야마다 히데키 부원장은 “전문의 중심 의료체계 속에서 환자들은 방황하고 내쫓긴다. 내과를 찾는 사람의 상당수가 내장 기관의 문제가 아닌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기도 하다. 만성질환으로 여러 과를 전전해야 하는 고령 환자들에게도 종합내과가 필요하다. 다른 전문과와의 연결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옥천신문  허원혜·이훈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 이 기사는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옮긴 이 : 김미경 편집위원

옥천신문  허원혜·이훈 기자   minho@okinews.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옥천신문 기사더보기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