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신문 편집자주_ 국가와 지자체의 의료비, 보험비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지역사회 통합돌봄 구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시작된 지역사회 통합돌봄 구축 시범사업이 현 정권에서도 유지되고 있는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가 구축하고 있는 통합돌봄 모델은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을 구축한 일본에서 따왔다. 고령이 되어도 살던 곳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의료·예방·케어·주거·생활지원 등의 서비스를 지역사회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일원화하는 것이 골자다. 그 중 도쿄와 인접한 지바 현 가시와 시는 이러한 일본 정부의 지역포괄케어 시범 사업을 수행한 곳이다. 가시와 시의 사례는 일본의 개호보험법에 크게 영향을 미쳤고, 일본 내에서도 산·관·학, 지역 의사회까지 적극적으로 결합해 주도한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의 선진 사례로 알려진 지역이다.

2014년 도요시키다이단지 내 조성된 고령자주택 ‘코코판 가시와 도요시키다이’는 지상 6층 건물로 105개의 객실을 갖췄다. 4~5층은 자립동(33호), 2~4층은 간병동(72호)이다. 눈에 띄는 점은 1층에 △재택의료 △방문간호 △방문요양 △약국 △의원 △주거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기관들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의료진 및 간호·간병인들이 24시간 상주하며 거주자들을 돌보고 있다.

‘가시와 시의 도요시키다이단지는 일본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 했다’
‘가시와 시의 도요시키다이단지는 일본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 했다’

일본 지바 현 가시와 시에 위치한 도요시키다이단지는 일본주택공단(현 UR도시기구, 이하 UR)이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인 1950~60년 조성한 임대주택 단지다. 당시 단지 내에만 4천600여 호의 주택이 공급됐고, 약 1만여명이 거주했다. 도쿄까지 30분 거리의 가시와 시는 당시 인구가 급증하며 베드타운으로 부상했다. 도쿄에 살던 중산층이 집을 장만하는 곳이자, 고령 은퇴자들이 노후를 설계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수 십년이 흐르면서 가시와 시는 그 생기를 잃어갔다. 단지 건물은 낙후되고, 사람은 늙어갔다. 도요시키다이단지의 고령화율이 40%를 넘었고, 가시와 시의 전체 고령화율은 25%를 돌파했다. 급격한 고령화로 ‘머지 않아 지역 병원의 병상이 노인들로 가득 찰 것’이라는 예측이 맴돌았다. 

이런 상황을 직면한 가시와 시의 전문가들은 도요시키다이단지를 주목했다. 2060년 일본의 고령화율이 40%에 다다를 것이라 예상되는 가운데, 도요시키다이단지를 일본의 미래를 가늠케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에 비유했다. 가시와 시와 지역 내 도쿄대학 캠퍼스, 그리고 UR 3자는 도요시키다이단지를 ‘살던 곳에서 안심하게 살 수 있는’ 도시 모델로 삼고자 연구에 돌입한다. 2010년 3자는 ‘도요시키다이지역 고령사회 종합연구소를’ 조직해 ‘도요시키다이 프로젝트 : Aging in Place’에 착수했다. 

가시와 시 건강의료부 건강정책과 고바야시 타다히로 부참사는 “(베이비 부머 세대인) 단카이 세대가 대거 고령층으로 편입되면서 가시와 시에서는 의료와 간호 서비스 도입이 필수인 상황이었다. 마침 도교대학 또한 도시 내 고령화 문제를 가장 큰 과제로 보고, 연구 모델이 될 만한 지역을 필요로 했다. 이에 가시와 시는 도쿄대학, UR과 손을 잡고 도요시키다이단지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에 착수했고, 이를 성공시킨다면 향후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는 모델이 될 것이라 봤다”라고 설명했다.

2014년 도요시키다이단지 안에 설립된 지역의료연계센터는 가시와 시 지역포괄케어의 거점 시설이다. 가시와 시 의사회와 치과의사회, 약제사회가 직접 비용을 들여 짓고 시에 기부한 건물로, 지역 의사회와 행정이 함께 재택의료 시스템을 구축한 상징과도 같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케어 매니저와 함께 의료, 돌봄, 예방 등 개인별 맞춤형 케어 플랜을 설계한다.
2014년 도요시키다이단지 안에 설립된 지역의료연계센터는 가시와 시 지역포괄케어의 거점 시설이다. 가시와 시 의사회와 치과의사회, 약제사회가 직접 비용을 들여 짓고 시에 기부한 건물로, 지역 의사회와 행정이 함께 재택의료 시스템을 구축한 상징과도 같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케어 매니저와 함께 의료, 돌봄, 예방 등 개인별 맞춤형 케어 플랜을 설계한다.



■ 단지 내 지역의료연계센터 중심으로 ‘30분 내 도착 가능한’ 의료·돌봄·예방·생활지원·주거지원 서비스 권역 구축… 고령자 사회 관계망 위해 고용 지원도 나서

도요시키다이단지가 달라지고 있다. 지은 지 반세기가 지난 2004년 UR이 단지 재건축에 나섰고, 가시와 시와 도쿄대가 결합한 ‘고령사회 종합연구소’가 단지를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고령친화 마을 모델로 구축에 나서면서다. 핵심은 일생 생활 권역 단위, 즉 30분 안에 도착할 있는 거리에서 △의료 △돌봄 △예방 △생활지원 △주거지원 등 5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권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2014년 단지 내 문을 연 고령자주택 ‘코코판 가시와 도요시키다이’는 가시와 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역포괄케어 모델을 집약해 보여주는 사례다. 이 고령자주택에 입주하는 대상자는 고령의 저소득자들이다. 지상 6층 건물로 105개의 객실을 갖췄는데, 4~5층은 자립동(33호), 2~4층은 간병동(72호)이다. 눈에 띄는 점은 1층에 △재택의료 △방문간호 △방문요양 △약국 △의원 △주거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기관들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의료진 및 간호·간병인들이 24시간 상주하며 거주자들을 돌보고 있다. 

가시와 시의 이러한 구상에서는 2014년 도요시키다이단지 안에 설립된 ‘지역의료연계센터’가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가시와 시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담당하는 행정 부서는 물론 서비스 수행 주체인 가시와 시 의사회, 약사회, 치과회 등도 이곳에 사무국을 두고 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케어 매니저와 함께 5대 서비스에 기반한 개인별 맞춤형 케어 플랜을 설계한다. 케어 플랜을 기반으로 센터는 환자가 필요한 서비스 제공받을 수 있도록 의사나 약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를 연계한다. 단지 입주민뿐만 아니라 가시와 시 주민들도 지역의료연계센터를 찾고 있다. 

고바야시 타다히로 부참사는 “환자들의 집이 곧 병실이고, 방문간호스테이션 등이 집 근처에 설치돼 마을 전체가 하나의 병원처럼 이미지화 되도록 마을 만들기를 해왔다. 가시와 시 전 지역을 차로 30분 안에 도착 가능한 거리 내에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권역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가시와 시는 단지 내 거주하는 고령자들의 일자리를 위해 도쿄대학, 상공회의소, 사회복지협의회 등 지역 기관 단체와 평생활동추진협의회를 구성했다. 협의회를 주축으로 △상담 창구 운영 △고용 안내 홈페이지 개설 △일자리 세미나 개최 등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3월까지 3천여명의 고령자들이 상담 창구를 방문했고, 400여명이 취업했다. 

고바야시 타다히로 부참사는 “가시와 시는 도쿄로 출퇴근 하는 주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정년 퇴임 후 지역에서 지내는 이들은 친구나 이웃이 없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주택 근처에서 다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동료나 친구 등 사회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고바야시 타다히로
고바야시 타다히로
구마이 노리코
구마이 노리코


■ 산·관·학 손 맞잡고 의료, 간호 자원 끌어모아 재택의료 추진… 10년 새 재택의료 참가 의원 14→36개소, 방문간호 스테이션 11→41개소 늘어

가시와 시와 도쿄대학, UR 3자가 손을 맞잡고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다직종의 기관·단체를 공공 영역으로 끌어모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가시와 시 행정이 중심이 돼 사무국을 맡고 △가시와 시 의사회(진료소, 병원) △치과의사협회 △약사협회 △방문간호스테이션 연락 협회 △간호지원 전문가협회 △사회복지협의회 △가정영양사협회 등과 ‘다직종 연계 협의회’를 구성했다. 의료·간호·돌봄·복지 등 다직종의 기관들이 환자에게 산발적으로 제공하던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연계해 돌봄의 완성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협의회는 △다직종 기관 대표자 회의 △워크숍 및 연수회 △대면 회의 등을 정기적으로 개최해 각자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상호 간 연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한다.

다직종 기관 간의 이러한 연계는 ICT 기술을 접목한 정보공유시스템을 구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의사나 간호사, 요양보호사, 케어 매니저 등 소속이 다른 관계자가 팀을 이뤄 환자 한 명의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체계를 만든 것이다. 산·관·학 3자가 조직한 ‘고령사회 종합연구소’가 민간회사와 공동으로 연구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고바야시 타다히로 부참사는 “올해 3월 기준 이 정보공유시스템에 정보가 등록된 환자는 2천명이 넘고, 이 정보를 이용하는 사업소가 470여 개소에 달한다. 이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이 바라는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가시와 시의 지역포괄케어에서 눈에 띄는 점은 지역 의사회의 적극적인 협조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내에서도 지역 의사회가 주도적으로 지역포괄케어에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가시와 시는 2010년 지역 내 의원 14개소와 본격적으로 재택의료에 뛰어들었다. 의사들이 행정과 함께 재택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공적 주체로 올라선 것이다. 또 가시와 시의 지역포괄케어의 거점 시설인 지역의료연계센터는 의사회, 치과 의사회, 약제사회가 비용을 들여 짓고 가시와 시에 기부한 건물이다. 

고바야시 타다히로 부참사는 “사실 일본에도 재택의료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의사들이 많았다. 일반 의원은 오전 9시부터 5시까지만 진료하면 되지만, 재택의료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의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된다”라며 “그럼에도 의사회에서 회원을 소개 받아 일일이 찾아가며 가시와 시의 지역포괄케어 정책을 설명하고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사업 초기 의사회 회장을 맡았던 분이 가시와 시의 재택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주신 덕도 크다. 지역에 지역포괄케어가 꼭 필요하다는 의사회와 치과 의사회, 약제사회의 사명감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재택의료에 참여한 민간 의원 수는 이후로도 크게 늘어 지난해까지 38곳의 의원이 가시와 시의 재택의료 정책에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2011년 11개소에 그쳤던 방문간호 스테이션 또한 지난해까지 41개소로 늘었다. 

도요시키다이단지 내 복지 단체가 운영하는 사회 참여 공간에서 고령의 주민들이 수업에 참가하고 있다.
도요시키다이단지 내 복지 단체가 운영하는 사회 참여 공간에서 고령의 주민들이 수업에 참가하고 있다.

■ ‘노-노 케어’로 간호 수요 낮추는 데 총력 ‘가시와 프레일 예방 프로젝트 2025’… 지역 행사 등 지역 활동 참여자에게 전자 화폐 포인트 지급해 사회 참여 유도

가시와 시는 도쿄대학 이지마 카츠야 교수가 고안해낸 ‘프레일’ 예방 시스템을 도요시키다이단지를 중심으로 접목하고 있다. 

프레일이란 건강한 상태에서 서서히 약해져 돌봄이나 간호가 필요하기 직전의 단계를 뜻한다. 사회 관계망이 헐거워져 정신이 허약해지고, 영양 결핍과 신체 생활 능력이 저하돼 간호가 필요하기 전의 노쇠 단계다. 이 때 적절한 개입을 통해 다시 건강한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프레일 예방이다.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프레일 상태에 놓여있음을 인지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시와 시는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지역 내 고령 주민들이 서로 간 간이 프레일 체크를 통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인지하고, 행동의 변화를 종용해 다시 건강한 상태로 회복하도록 하는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일정 연수를 거친 ‘프레일 예방 서포터’들은 이웃의 고령 주민을 대상으로 간이 ‘반지 걸림 테스트’ 또는 ‘11가지 항목 테스트’를 실시해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검사 결과에 따라 대상자에게 △영양(식생활, 구강기능) △운동 △사회 활동 참가 등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프레일 체크 결과에 따라 고위험층에 해당하는 대상자의 경우에는 맞춤형 의료, 간호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사나 기능훈련사, 영양사가 상담에 나선다. 

고바야시 타다히로 부참사는 “프레일 예방 서포터들은 다른 사람의 건강을 체크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본인의 건강도 개선되었다고 평가한다. 행정에서는 시민 사이에서 이러한 운동이 널리 퍼지게끔 유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회성의 저하가 프레일의 가장 큰 단서인 만큼, 가시와 시는 프레일 예방 포인트 제도를 활용해 고령 주민들의 사회 활동 참여를 유인하고 있다. 40대 이상의 주민이 △운동 프로그램 △건강검진 △평생직업상담 △자원봉사 △환경보전활동 등 가시와 시가 지정한 사회 활동에 참여하면 시는 시가 발행한 전자화폐 카드에 포인트를 부여한다. 올해 3월까지 카드는 2만 여명의 주민에게 발행됐다. 해당 포인트는 상점이나 마트 등에서 현금 대신 사용할 수 있다. 가시와 시의 이러한 프레일 예방 프로젝트는 효과를 상당 부분 인정 받아 현재 일본 100여개 지자체에서 도입하고 있다. 

 

옥천신문  허원혜·이훈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 이 기사는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옮긴 이 : 김미경 편집위원

옥천신문 허원혜, 이훈 기자  minho@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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