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톨같은 친구 진과 온

            정겨운 풍경이 있는 마을(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정겨운 풍경이 있는 마을(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우리 동네에만 정을 가득 담은 공깃방울들이 많아 때때로 흘러넘치는 것인가, 내 안에 사랑 분자들이 많은 것인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요상하게 정겨운 일들이 참 많은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2023년은 부당해고 투쟁, 직장내 괴롭힘 진정 투쟁! 아픈 아버지와의 동거로 인한 여러 가지 애로사항들이 진득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동네 친구들을 사귄 것입니다.

시간은 늘상 없었지만 9 to 6 임금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에 비하면 여유가 많았던 것 같아요. 연극모임이니 합창단 활동이 가능했고, 옥상에 올라가 북한산의 거대한 정기를 들이마신 뒤 빨래를 널어 햇살에 말리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처절하게박복한 해였으나 곱게도정이 가득했던 해였다고 정의내릴 수 있겠습니다. 역시, 사람도 생도 납작한 것이란 없나 보아요.

 

안녕하세요~ 독백 형식으로 문장을 쓸지, 대중에게 말하듯이 쓸지 명쾌히 결정짓지 못한 채 오락가락하는 [향농일기] 김백정은 주주입니다.

              눈길로 뒤덮인 마을 풍경(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눈길로 뒤덮인 마을 풍경(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2024년이 시작되고 벌써 스물일곱 날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새해 첫 마음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친구와 작당했어요. 한국 사람에게 진정한 새해는 음력 설에 시작된다! 그래서 아직 23년을 떠나보내지 못하였습니다.

한해를 돌아보며 무엇이 좋았는지,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정도는 적어 내려가야 진짜 작별 같아서요. 새 수첩에 지난 해 놓치고 싶지 않았던 기록들을 옮겨 적는 일도 물론 중요하겠지요.

이번에는 같은 빌라에 사는 이웃 진을 소개하고 싶어요. (참새 아저씨, 길 아저씨, 캣맘 키님, 등 쟁쟁한 분들을 물리치고 다섯번 째 이야기 주인공으로 선정!) 진은 초등학생 온의 엄마이고 반려식구 마요와 까망의 집사입니다. 축구를 하는 덕에 멋진 근육과 구릿빛 건강한 피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의 일이에요. 옥상에서 빨래를 탈탈 털며 빨랫줄에 널고 있는데 스스럼없이 인사를 서로 나누게 되었어요. 진은 옥상에서 가꾸고 있는 어여쁜 장미 화분을 선물로 건네주기도 했어요. , 저는 중고책방에서 사둔 멋진 그림책과 어린이책들을 한 꾸러미 그 둘에게 선물해주었어요. 진도 덩달아 좋아하는 그림책들을 빌려주어서 재미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과 온의 귀여운 선물(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진과 온의 귀여운 선물(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동네를 거닐다보면 함께 킥보드를 타거나 손을 잡고 지나가는 둘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뭐랄까 귀여운 밤송이와 밤 한 톨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진은 퀼트 공예를 전투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마치 축구처럼) 하고 있고 저는 어마어마한 양의 양말목 공예 재료를 소유하고 있어서 한 번은 양말목 매트를 만들기 위해 우리 집에 모였어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죠.

            매트 위에 앉은 고양이(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매트 위에 앉은 고양이(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 사람들은 친해지기 어려워요. 아이들하고 동물들은 다들 절 좋아하던데...
  • (비인간) 동물들은 거짓이 없어 맑잖아요. 인간(동물)들은 탁하지 않아요? 눈이... 마음도요.

 

사람과 사람은 처음 만나면 계산기부터 두드리나봐요.(실은 제가 그렇습니다.) 편히 대해도 될까, 격식을 갖추어야 할 사람인가, 나보다 여유(경제적) 있는 이일까, 어디서 살지, 무슨 일을 하지 등등. 저만 쏙 빼놓고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며 작은 해소감을 느낍니다.

진과 주고 받은 선물은 하도 많아서 글의 분량 상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지난 한파에 동파가 되어 출근길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준 며칠 전 일이 기억나요. 그 라인에 1층 아주머니도 2주 전에 동파되어 그 양동이에 물을 담아 드린 일이 있었답니다.

동파되면 정말 막막하고 슬퍼지고, 화도 나잖아요. 부담 없이 편안히 물을 떠다 주고 받는 일이 더없이 보람차고 따수웁게느껴졌어요 저는. 물론 진은 그 양동이에 고구마를 가득 담아서 주더군요. 뭐 담지 말고 그냥 달라는 빈말은 하고 싶지 않더군요. 진의 마음 담긴 고구마가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정겨운 이웃이 갖다준 반찬들(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정겨운 이웃이 갖다준 반찬들(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오늘 아침의 일입니다. 이사를 결심한 뒤 진은 정신없이 바쁘고 긴장된 하루하루를 보냈을 거에요. 마침 곱고 아름다운 이 동네 옆 빌라에 집을 계약하기로 했다고 하여 둘 다 기뻐하던 차였어요.

그런데 어긋나게 되었나봐요.(심술 부리는 집 주인과 엮이면 세상 피곤해지지요!) 다른 집으로 잘 정해진 것인지 궁금하여 평소 좋아하던 간식을 들고 연락해 보았어요. 오전에 시간이 맞아서 잠깐 보기로 했는데, 작은 손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어린이였어요. 작고 아름다운 아이 온.

 

  • 오셨어요?(고양이 두분께서는 후다닥 이불 속으로 들어가신다) 우리 오디님 앵두꽃님은 친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에요. 이 무거운 걸 들고 오셨어요?
  • 심부름 시켰어요.(친하지 않은 이모집에 용기 있게 찾아온 온, 멋지다!!)

 

온은 커다란 먹거리를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각종 반찬과 잡곡밥 야채와 곱창김(가장 좋아하는 먹거리!) 그리고 따뜻한 청국장찌개까지!! 감동이 넘쳐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친정엄마처럼 전화로 너무 말라 보인다며 외출하기 전에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출근하라는 말을 하는 거에요. 제가 외출해야 해서 진의 귀한 아침밥 초대를 다음으로 미룬 건데, 이렇게 찌개까지 요리해서 보내시면 어쩌죠. 이건 너무 행복한 이야기 아닌가요?

온에게 약속했어요. 다음에 이모가 맛난 상 차려서 초대할 테니까 엄마와 꼭 방문해 달라고. 오디님 앵두꽃님과는 자주 보면 조금씩 친해질 거라구요.

먹거리에 관심이 많고 진심인 우리는 통하는 것이 많아요. 생협인 한살림 조합원이기도 하고 언니네 텃밭을 애용하고 있지요. 진이 추천해준 대로 저도 언니네 텃밭 꾸러미로 채소를 건강하게 섭취하여야겠습니다.

         치매예방을 위한 운동(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치매예방을 위한 운동(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작년에 치매 전문의가 이런 말을 했어요. 치매 예방에 있어 중요한 세 가지는 운동, 사회적 관계, 공부라고요. 우리는 운동을 열심히 하려 하고 있고, 관계 속에서 포실한 사랑과 안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공부는 늘 합니다. 기본이죠.

그런데 한 가지가 빠진 것 같아요.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풍족하지 못하고 가진 게 적어도 좋은 먹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겠죠. 진과 저는 그런 면에서 퍽 잘 맞는 친구랍니다.

그러고 보니 향림도시농업체험원 작은 운동장에서 공차기를 같이 해보는 것도 재미날 것 같아요! 여러분도 동네에서 친구 사귀어가는 재미에 빠져보시는 것 어떠세요? 걱정은 붙들어매시고 사랑을 믿어보시어요.

           향림마을에 내린 정겨운 풍경(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향림마을에 내린 정겨운 풍경(출처 : 김백정은 주주님)

향림마을에 내린 눈처럼 좋은 일도 그렇지 않은 일도 모두 그 나름으로 아름다운 걸요.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김백정은 주주  baerong5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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