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한솔 아녜스와 함께  (출처 : 정우열 필진님)
아내 한솔 아녜스와 함께  (출처 : 정우열 필진님)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자 아내 한솔 아녜스의 5주기가 되는 날이다.

오전 10시, 아들 다경(茶耕)과 함께 운양동성당에 나가 '재 의식'과 함께 아내를 위해 연미사를 봉헌했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윤영욱 프란치스코 신부님은 신자들의 이마에 일일이  재를 바르며 이렇게 주문하셨다.

그렇다! 모든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숙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의 평생 동반자이자 버팀목이 되었던 아내 한솔 아녜스!

나는 조용히 아내를 위해 기도했다.

"주님, 아내 아녜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옵소서! , 아멘"

카톡!
막 미사를 마치고 나올 때,   누군가에게서  카톡이 왔다.

평택 종제(從弟, 사촌동생)의 카톡이었다.

     옹달샘
     맑은 물로
     정성껏 먹을 갈아
     하얀 종이 위에 
     마음을 그려내니
     하늘은 
     저절로 푸르고
     저멀리
     뭉게 구름
     꿈을 싣고
     피어오르네

언제 형수가 쓴  시를 작품화해 올렸다.

 한솔 이석표의 시 (출처 : 평택 종제 정우경)
 한솔 이석표의 시 (출처 : 평택 종제 정우경)

그리고   "형님, 오늘이 형수님 기제사라 지난 세월 많이 회상되시겠죠!?"하고 나를 위로했고, 한편  "명절 때 바쁘게 준비하시던 형수님의 모습이며, 형님이 형수님과 함께 큰어머님께 효도하시던 모습, 그리고 형수님이 손수 붓으로 가훈을 쓰시어 작은 집에 일일이  나누어 주시던 모습이 떠오르네요"하면서 형수의 옛 모습을 떠올렸다.

한솔 선생이 쓴 문숙공 집안의 가훈 (출처 : 정우열 필진님)
한솔 선생이 쓴 문숙공 집안의 가훈 (출처 : 정우열 필진님)

얼마나 고마운가! 형수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시동생이 있다는 것이. 그러고 보니 아내는 한 평생을 헛되이 살다가지 않았다.

아우가 올린 작품(시)을 몇몇 가까운 친지들에게 보냈다.

바로 친정 올케 노연미 리오바의 답글이 왔다.

"벌써 5년~
 세월이 유수와 같네요.
영혼의 맑고 밝음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한 뒤 "저는 오늘 '날마다 행복' 시를 지었습니다. ㅎㅎㅎ"하고 아래와 같이 시를 보냈다.

올케 노연미 리오바의 화답시, <날마다 행복>  (출처 : 노연미 리오바)    
올케 노연미 리오바의 화답시, <날마다 행복>  (출처 : 노연미 리오바)    

잠시 머릿속을 비우고 하늘을 쳐다본다.
맑은 하늘 사이로 흘러가는 
하늘과 구름의 조화는
바쁜 일상 대신 맑은 정신과 아름다움을 내게 선물한다.

잠시 일을 미루고 내게 차 한 잔을 대접한다.
차 한 잔의 여유는 잃었던 행복한 추억과 건강을 내게 선물한다.

잠시 공원을 걸으며 꽃들과 대화해 본다.
안녕? 어제 보다 성숙해진 꽃들은 저마다 뽑낸다.
뽑내는 자연의 호흡이  계절의 순환을 내게 선물한다.
나는 속삭인다. 고맙다! 차 한 잔아! 자연아!

올케 리오바는 이렇게 시누이 한솔 아녜스의 시에 화답했다.

하늘에서 시누이가 얼마나 좋아할까!?

오늘은 날씨가 봄날처럼 따뜻하다.

아내가 노래한  "하늘은 저절로 푸르고  저멀리 뭉게구름 꿈을 싣고 피어오르네" 그대로다.

난 점심을 먹고 강변길을 걸었다. 아내와 걷던 그 길이다. 문득 아내가 그리워진다. 잠시 아내와 함께 쉬던 버드나무 아래 그 벤취  앉아 명상에 잠겼다.

그때 어디선가 기러기떼가 날아와 "할아버지 나오셨냐?"는 듯 "끼륵 끼륵"하며 머리 위를 배회한다.

머리위를 배회하는 기러기떼 (출처 : 정우열 필진님)
머리위를 배회하는 기러기떼 (출처 : 정우열 필진님)

늘 아내와 함께 벗하던 그 기러기들이다. 

與雁堂! 그래서 옥호를 기러기와 더불어 함께 하는 집 '여안당'이라 했다.

옳지! 저 기러기 편에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야지 ...

바로 편지를 썼다.
 
   今夜如寶五週忌
   或如難艱尋來堂
   石燈點火掃暗幽
   審察操心歸來往

여보, 오늘 밤이 당신 5주기구려!
혹시 당신 여안당 집 찾아 오는데 힘들까봐, 석등에 불 밝혀 어둠 쓸어 냈으니 조심 조심 살펴 왔다 가소서!

밤 12시,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 밤이 깊도록 아내와 나누었다.

"아버지 안 주무세요?" 
옆에서 엄마를 위해 기도하고 있던 아들이 말했다. "그래, 자자! 엄마 잘 보내드렸다"

"다시 꿈 속에서 만나야지!"
하며 난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와 함께한 즐거운 하루였다. 여보, 사랑해!

2024. 2.14. 깊은 밤에

김포 여안당에서 아내의 5주기를 맞아 한송 쓰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정우열 주주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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