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에서 가야 할 곳을 검색하면 1위로 나오는 곳이 ‘게티 센터’다. 폴 게티(Paul Getty)가 소장했던 예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다 

게티 센터(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 /https://jenikirbyhistory.getarchive.net/media/aerial-getty-museum-6e7636)

폴 게티(Paul Getty)

폴 게티는 1892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 1976년 영국에서 사망했다. 24세인 1914년부터 유전 지대에 투자해 성공한 게티는 1942년 ‘게티 석유 기업(Getty Oil Company)’을 설립했다. 한때 가장 부유한 미국인으로 뽑혔을 정도로 부를 거머쥐었다. 사망 당시 그의 재산은 60억 달러 이상(2022년 기준 약 240억 달러, 한화 약 32조)이었다 한다. 현재 삼성 일가 재산도 182억 달러(약 24조 3천5백억 원)밖에 안 된다.  

‘게티에 대해선 여러 가지 평이 있다. 검소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검소함이 지나쳐 ‘구두쇠라고도 한다. 1973년 이탈리아 갱단이 16세 손자를 납치했을 때 그의 대응은 인색하고 냉정했다. 손자를 납치한 갱단이 1,700만 달러를 요구하자, 그는 돈을 내면 다른 손자 13명도 납치될 수 있다고 거절한다. 넉 달 후 머리카락 한 올과 사람 귀가 들어 있는 봉투가 도착하고, 돈은 320만 달러로 내려간다. 아들(게티 2세)의 읍소에 게티는 협상 후 220만 달러를 준다. 한 달 후 손자는 풀려났지만, 납치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약물중독 후 약물 후유증으로 24세에 뇌졸중이 온다. 눈이 거의 멀고 말도 못 하는 마비 상태에서 살다가 54세에 사망했다.

이런 게티는 예술품과 골동품 수집에는 열렬했다. 그는 생전 1953년, ‘J. Paul Getty Trust’ 예술재단을 설립하여 소장품을 관리하도록 했고, 사망 후 6억 6,100만 달러 이상을 박물관에 기부하면서 게티 센터, 게티 빌라, 게티 재단, 게티 연구소 등이 순조롭게 운영될 수 있도록 했다. 그 덕에 게티 센터와 게티 빌라는 무료 입장이다. 그의 소장품 대부분은 두 개의 박물관인 게티 센터와 게티 빌라에 전시되고 있다. 유럽 미술품, 장식 예술품 등은 주로 게티 센터에 있고, 신석기 시대부터 그리스, 로마 등 고대 미술품과 유물은 게티 빌라에 있다. 

‘게티 센터(Getty Center)'

게티 센터는 1997년에 오픈했다. 공사기간만 10년이 걸렸고 비용만 1조가 넘게 들었다고 한다.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미국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가 디자인했다. 긴 공사 기간과 비용이 말해주듯 흰갈색 벽돌로 지어진 이 센타는 ‘로스엔젤레스의 파르테논’이라고 불릴 정도로 LA에서 가장 빼어난 건축물이다.

메인 전시관. 트램에 내려서 올라가는 계단에도 작품이 있다. 
메인 전시관. 트램에 내려서 올라가는 계단에도 작품이 있다. 

 

게티 센터(Getty Center)
게티 센터(Getty Center)
게티 센터(Getty Center)
게티 센터(Getty Center)

산타모니카 산맥 오른쪽 끝자락 언덕(브렌트우드)에 지어져 LA를 사방에서 조망할 수 있다. 남쪽으로는 바다와 도시가 보이고, 동쪽으로는 산이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도시가 펼쳐진다. 언덕 위에 지어진 탓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나면 트램을 타고 올라가야한다. 주차비는 유료이나 트램은 무료다. 

게티 센터 옥상에서 만난 LA 
게티 센터 옥상에서 만난 LA 
게티 센터 옥상에서 만난 LA 
게티 센터 옥상에서 만난 LA 

게티 센터의 그 많은 작품들 중 지나가다 유난히 내 눈에 띈 작품들 몇 점만 소개하고자 한다

'Mercedes Dorame'의 Woshaa’axre Yaang’aro (Looking Back)

올라가서 만난 첫 건물인 메인 전시관 로비에는 심상찮은 작품이 걸려있다. 'Mercedes Dorame' 작가의 설치물 Woshaa’axre Yaang’aro (Looking Back)다. 그녀는 천장에 1~2미터의 거대한 5개 전복껍질을 매달았다. 벽면 상단에는 해안선을 그린 벽화가 빙 두르고 있고, 창문을 장식한 화려한 필름이 햇빛을 받아 화사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마치 인어공주의 집처럼... 

▲ 'Mercedes Dorame' 작가의 설치물 'Woshaa'axre Yaang'aro'( 통바어로 '뒤를 돌아 본다'란 뜻이라고 한다) 2023년 작
▲ 'Mercedes Dorame' 작가의 설치물 'Woshaa'axre Yaang'aro'( 통바어로 '뒤를 돌아 본다'란 뜻이라고 한다) 2023년 작

'Mercedes Dorame' 작가의 조상은 로스앤젤레스 분지와 채널 제도에 살던 '통바(Gabrielino-Tongva)'부족이다. 전복은 통바 문화에서 중요했다. 음식, 낚싯바늘, 의식 예복에서 사용되었다. 그녀는 과거에 중요했던 전복의 의미를 지금 현실 세계에 나오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는"방문객이 이 설치물을 보고 남부 캘리포니아의 생태를 존중했으면 한다. 그리고 통바사람들의 관점과 이 땅과의 관계를 생각해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녀는 "학교에서 '더 이상 통바족이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관계없이 그곳에 원주민이 있고 그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인정하고 배울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 Mercedes Dorame' 작가의 설치물 'Woshaa'axre Yaang'aro'( 통바어로 '뒤를 돌아 본다'란 뜻이라고 한다)
'▲ Mercedes Dorame' 작가의 설치물 'Woshaa'axre Yaang'aro'( 통바어로 '뒤를 돌아 본다'란 뜻이라고 한다)

'Andrea Mantegna'의 'The Adoration of the Magi'

▲ The Adoration of the Magi 1495년~1505년 작
▲ The Adoration of the Magi 1495년~1505년 작

‘동방박사의 경배(The Adoration of the Magi)’는 많은 화가들이 그렸다. 이 '동방박사의 경배'는 1495~1505년 경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 (Andrea Mantegna)가 그렸다. 세 명의 동방박사가 후광이 있는 아기 그리스도에게 경배하고 있다.  세 동방 박사들의 모습은 상당히 이국적이다. 동양 도자기를 들고 있는 왕, 터번을 쓰고 향로를 들고 있는 왕, 그리고 흑인 왕까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인종과 지역을 초월한 존재로 이 세상에 나오셨건만.... 

'Domenico Beccafumi'의 'Saint Catherine of Siena Receiving the Stigmata'

▲'Saint Catherine of Siena Receiving the Stigmata',  1513~1515년 작
▲'Saint Catherine of Siena Receiving the Stigmata',  1513~1515년 작

‘성흔을 받는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Saint Catherine of Siena Receiving the Stigmata)’다. 성녀 가타리나는(1347년 생) 이탈리아 도미니코 수도회 신학자다. 자신의 신비 체험을 모아 책으로 남긴 그녀는 1380년에 선종하였고, 1461년에 Saint 칭호를 받았다. 현재 가타리나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공동 수호성인이다. 그녀는 1375년 피사를 방문해 미사 중 성흔(stigmata)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전기에 따르면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채 나를 향해 내려오시며 놀라운 빛으로 나를 둘러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상처 구멍에서 다섯 개의 핏빛 광선이 내려와 내 몸의 손, 발, 심장을 향했습니다.’ 이 내용을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베카푸미 (Domenico Beccafumi)가 1513~1515년 실감나게 그렸다. 

'Correggio (Antonio Allegri da Correggio)'의 'Head of Christ'

▲ 'Head of Christ' 1525~1530년 작
▲ 'Head of Christ' 1525~1530년 작

1525년에서 1530년 사이에 그려진 코레조(Correggio)의 'Head of Christ'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가 못 박히기 전, 로마 군인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보라색 망토를 입히고, 가시 왕관을 씌우며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했다. 코레조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연민을 눈빛으로 표현했다. 

'Artemisia Gentilesch'의 'Lucretia' 

'▲ Artemisia Gentilesch'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캔버스에 유채, 1618~20년경 작품, 우피치미술관, 피렌체. 아트북스 제공(출처 : 르네상스 여성공동체가 탄생시킨 첫 여성주의 화가 (hani.co.kr))
'▲ Artemisia Gentilesch'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캔버스에 유채, 1618~20년경 작품, 우피치미술관, 피렌체. 아트북스 제공(출처 : 르네상스 여성공동체가 탄생시킨 첫 여성주의 화가 (hani.co.kr))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는 이탈리아 여류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가 그린 그림이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이다. 아시리아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때 홀로페르네스 장군은 아름다운 과부 유디트에게 반해 그녀를 저녁 만찬에 초대한다.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를 술에 취해 잠들게 한 후 목을 잘라버린다. '구스타프 클림트'를 비롯하여 유디트를 그린 작품은 많지만 아르테미시아 그림만큼 홀로페르네스를 강하게 제압하며 주저함 없이 목을 치는 그림은 거의 없다. 이 그림은 게티 센터에 있진 않지만 아르테미시아를 이해하기 위해 가져왔다.

1593년 태어난 아르테미시아는 17살 때부터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지인이자 스승이었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아버지는 법적 소송을 택했고  재판 과정에서 그녀는 강간에 대해 진실을 말하라고 손가락 고문을 당하는 등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이는 그녀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군다나 그녀가 살던 시대는 여성 화가들은 화가 집단에서 배척당했고 후원자도 구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는 피렌체 미술 아카데미 첫 여성 회원이 되었고 세계 도처에 그녀의 그림을 판매했다. 그 시대의 가장 진취적이고 성공적인 여성 화가이며,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 'Artemisia Gentilesch'의 'Lucretia' 1627년 작
▲ 'Artemisia Gentilesch'의 'Lucretia' 1627년 작

그 유명한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을 게티에서 만났다. 1627년, 그녀는 강간당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로마 귀족 '루크레티아(Lucretia)'를 그렸다. 루크레티아의 얼굴에서 원망에 가득 찬 눈과 간절한 소리 없는 호소가 들린다. 칼을 쥔 그녀의 곱고 떨리는 손이 순 백옥같이 죄없는 가슴을 찌르려는 것이 보인다. 여성이기에 고통받았던 그녀는 고통받는 여성을 소재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여성의 절망을 칼이 아닌 붓으로 대변해준 것이다. 

'Georges de La Tour'의 'The Magdalen with the Smoking Flame'

▲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의 'The Magdalen with the Smoking Flame' 1640년 작 
▲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의 'The Magdalen with the Smoking Flame' 1640년 작 

1640년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가 그린 'The Magdalen with the Smoking Flame'은 'LACMA(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GUEST MASTERPIECE'라고 별도로 표기해 놓을 것을 보면 LACMA에서 잠깐 원정 나온 작품인 것 같다. 

이 그림은 어둡고 음울한 배경과 대조적으로 촛불과 그녀의 상반신은 빛을 발하고 있다. 조용히 촛불을 응시하고 있는 막달레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하다. 해골을 잠 재우는 그녀의 손도 촛불을 받아 따스하고 부드럽다. 막달레나는 그리스도의 가장 헌신적인 추종자 중 한 명이였다. 주로 그리스도의 발밑에 엎드린, 즉 회개와 시련의 상징으로 등장하지만, 이 그림은 전혀 다르다. 막달레나의 예수에 대한 깊은 사랑을 살아있는 불꽃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2편에 계속)

참고기사 : 르네상스 여성공동체가 탄생시킨 첫 여성주의 화가
참고 사이트 : 위키백과, 다음백과 
참고사이트 : https://www.getty.edu/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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