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송, 다른 별일 없지?
소식 없어 궁금하이!
화창한 봄날은 아름다운 경치로 나를 부르고, 조물주는 나로 하여금 글을 쓰라하네.
현송, 지난 토요일, 봉은사 매화 하도 성화돼서 만나보고 왔네. ㅎㅎㅎ
일주문에 들어서니 法王樓(법왕루)가 반갑게 맞아 주고, 법왕루를 지나 다시 계단으로 오르니 大雄殿(대웅전) 부처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어서 오라" 하시더군!
봉은사 경내엔 여러 곳에 매화가 있는데, 처음 일주문 들어서 왼쪽 주차장 언덕에 홍매화, 다시 법왕루 들어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돌면 '梅花堂'(매화당)이 보이는데 그 앞에 두 그루 매화 있네. 하나는 '單葉紅梅'(단엽홍매)이고, 또 다른 하나는 '雲龍梅'(운용매)일세.
'雲龍梅'란 꽃잎이 구름 위로 솟아오르는 듯하고, 줄기가 마치 용이 꿈틀꿈틀 용트림하듯 뒤틀려 자란다해 부쳐진 이름이네. 색은 흰색일세. 그리고 '單葉紅梅'란 색이 붉고 화편이 중첩이 아니라 단엽으로 피었다고 해서 부쳐진 이름이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 재생되고 있는 매화는 중첩매가 많고 단엽매가 드무네. 조선 시대 월사(月沙)가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선물로 받아 가지고 온 매가 단엽매인데,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네. 그 분재가 월사 사당 앞에 있었는데 그것마저 고사(枯死)하고, 월사 종손 집에 있다는 소문 들었으나 아직 친견하지 못했네.
이 '매화당' 앞 두 그루 매화를 친견하고 다시 왼쪽으로 대웅전을 끼고 층계를 올라 '靈山殿'(영산전)에 이르렀네. 영산전은 나한을 모신 곳이네. 다시 영산전을 지나 '影閣'(영각)을 만났네. 영각은 조사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여기엔 보우국사, 서산대사 등 7분의 조사(祖師)의 영정이 모셔져 있더군.
기둥엔 각각 '我人忘處超三界', '大悟眞空證法身', '無影樹頭花爛漫', '靑山依舊劫前春'이란 주련 글씨가 쓰여 있었네. 이 주련은 소백두타(小白頭陀)라고 칭송을 받았던 진호석연(震湖錫淵) 스님이 엮은 <석문의법- 대예참례> 가운데 '여러 조사에게 청례하고 공양을 올리는 예문' 가운데 찬탄으로 나오는 계송의 일부분일세.
이때 어디선가 매화 향기가 코를 찔러 살펴봤더니 영각 서쪽 처마 끝에 홍매 한 그루가 봄바람에 향기를 풍기고 있더군! 또한 그 주위 언덕으로 여기저기 홍매가 있지만 영각 홍매만 못했네.
다시 아래 '彌勒殿'(미륵전) 뒤 높이 우뚝 선 '미륵불상'에 잠시 경배하고 지나니 '板殿'(판전)현판을 볼 수 있었네. 이 건물은 경판(經板)이 모셔져 있던 곳으로 '板殿'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돌아가시기 3일전 병환중인 71세에 쓰신 것일세. 이 판전 바로 옆 왼쪽에 '추사 김정희 선생 기적비'가 있고, 또한 '흥선대원위 불망비'가 있더군.
그리고 위 비탈길을 오르다 보니 긴 돌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거기엔 '조선 불교 조계종 대본산 봉은 본말사 주지대표000'이란 글씨가 있는데 그 밑에 주지 이름은 지웠더군. 아마 이 표석은 일제 강점기 때 이 절을 대처승들이 차지하면서 당시 본말주지 대표가 세운 것으로 추정되네. 거기 '昭和18년'이라 한것으로 보아 광복 2년 전인 1943년에 세운 것으로 보이네.
'竹林精舍'(죽림정사), '普濟樓'(보제루)를 둘러보고 내려와 종각, 관음상, 우물을 보았네. 그때 우물 뒤를 보니 '수양매'가 있더군. 수양매(垂楊梅)란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칭칭 늘어져 부처진 이름이네! 퇴계는 이를 '倒垂梅'(도수매)라 했는데, 퇴계와 두향(杜香)의 도수매 시가 유명하네.
一花纔背尙堪猜 꽃 한 송이가 고개를 돌리고 있어도 그 미워함 견디기 어려운데,
胡奈垂垂盡倒開 어찌하여 모두 거꾸로 매달려 피었는가!
賴是我從花下看 이리하여 내가 몸을 낮춰 꽃 밑에서 올려다보니,
昴頭一一見心來 치켜든 송이송이마다 다가오는 마음 보이는구나!
다시 우물을 지나 '미륵전' 앞에 이르니 범종루(梵鍾樓)가 있더군!
현송, 봉은사 매화는 이상에서 보듯 매화당 운용매, 영각 추녀밑 홍매가 으뜸이라네.
奉恩寺庭春色滿 봉은사 뜨락에 봄빛 가득하니,
梅花堂前雲龍梅 매화당 앞 운용매,
影閣堂宇翼紅梅 영각 당우 처마끝 홍매화 제일이라.
暗香浮動夕陽來 석양에 그윽한 향기 은은하게 떠도누나!
현송, 문경엔 어떤 꽃이 반길까?!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이네! ㅎㅎㅎ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身老心不老) 하신 옛 어른들의 말씀 헛말씀 아니네! ㅎㅎㅎ
그럼, 그날 문경에서 만나세! 안녕!
2024. 3. 12.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이 달구벌 현송에게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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