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안당 일기>

“여보, 지난 토요일(23일) 오후  문경에 내려가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 일요일 오후 저녁에 올라 왔어요.”

"제자 모임 있었군요?"

"그래요, 당신과 함께 참석했던 맥회 모임 있었어요."

당신 생각 문득 문득 나더군요. 그날 저녁 회의 마치고 다음 날 일요일,  아침 일찍 그곳 문경 성당 찾아 주님께 기도했어요. "그리스도님, 찬미 영광 받으소서!"

문경성당(출처 : 정우열)
문경성당(출처 : 정우열)

조반은 그곳 특산 음식 올갱이 해장국으로 했어요.

조반 식사하고 모두 함께 문경 새재 과것길 걸었다오.

영남제일관(嶺南弟一關),주흘관(主屹關)을 지나 지름틀 바위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다시 옛 원터를 둘러 보고 옛 과것길로 접어 들었어요.

영남제1관-주흘관(출처 : 정우열)
영남제1관-주흘관(출처 : 정우열)
지름틀바위(기름틀바위)(출처 : 정우열)
지름틀바위(기름틀바위)(출처 : 정우열)
옛 원터(출처 : 정우열)
옛 원터(출처 : 정우열)

여보, 이 길은 영남과 한양을 잇는 가장 큰 길로 영남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갈 때 이용했던 길이라오. 조선 태조13년(1413년) 개통 됐다 해요.  옛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당시 영남 지역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고갯길이 셋 있었는데, 주로 이 길을 많이 이용했다 하더군요.

다시 말하면 김천 쪽으로 '추풍령'(秋風嶺), 예천 쪽으로 '죽령'(竹嶺), 문경 쪽으로 여기 '새재'(鳥嶺)가 있는데 유독 이곳 조령 새재를 가장 많이 이용했다 하네요. 그 이유는 첫째, 시간상 추풍령은 15일, 죽령은 16일 걸리는데 비해 이곳 조령은 14일로 제일 시간이 짧게 걸렸기 때문이고, 둘째는 특히 선비들이 이 길을 고집한 것은 '추풍령'은 '추풍낙엽', '죽령'은 대에 미끄러져 떨어진다는 징크스 때문이라 하더군요. ㅎㅎㅎ

그러니 이 길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넘어가던 당시 선비들의 '희망의 통로'였소. 이곳을 '聞慶'이라 부른 것은 "경사스런 소식을 듣는다"는 뜻으로 한양 가서 과거를 보고 합격해 돌아 오는 선비의 합격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을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부쳐진 것이오. 예전엔 이곳을 '聞喜'라 했다는데 이 또한 "기쁜 소식을 듣는다"는 뜻으로 같은 맥락이오.

길은 왼쪽으로 계곡을, 오른쪽으로 벼랑을 끼고 꼬불꼬불 오르는데 석벽 여기 저기 옛 선비들의 자취가 보이더군요.

여보, 옛 선비들이 묵고 갔던 주막 터엔 '宿鳥嶺'(새재에 묵다)이란 제목의 율곡 선생의 시가 바위에 새겨져 있더군요.

 

            宿鳥嶺                     

      새재에서 묵다

       登登涉險政斜暉     

  험한 길 벗어나니 해 이우는데,

       小店依山汲路微     

산자락 주점은 길조차 가물 가물

       谷鳥避風尋去     

산새는 바람 피해 숲으로찾아 들고,

       邨童踏雪拾樵歸   

 아이는 눈 밟으며 나무지고 돌아간다.

       羸驂伏櫪啖枯草     

여윈 말은 구유에서 마른 풀 씹고,

       倦僕燃松熨冷衣   

  피곤한 몸종은 차가운 옷 다린다.

       夜久不眠群籟靜     

잠 못드는 긴 밤, 적막도 깊은데

       漸看霜月透柴扉     

싸늘한 달빛만 사립짝에 얼비치네

율곡 선생의 시, 새재에서 묵다(출처 : 정우열)
율곡 선생의 시, 새재에서 묵다(출처 : 정우열)

율곡 선생의 이 시를 웅얼대며 다시 얼마쯤 오르니 오른쪽으로 낙낙장송이 우뚝 서 있고 그 뒤로 '교귀정'(交龜亭) 정자가 버티고 서있더군요. 이곳은 조선시대 경상감사의 인수가 이루어지던 곳이라 하오.

교귀정(출처 : 정우열)
교귀정(출처 : 정우열)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컷 찍고 앞 계곡 건너편을 보니 바위에 '龍湫'란 글씨가 보이고 다시 옆에 '龍湫'란 제목의 시가 새겨져 있더군요.

교귀정 앞 소나무를 배경으로 필자(출처 : 정우열)
교귀정 앞 소나무를 배경으로 필자(출처 : 정우열)
龍湫(용추)(출처 : 정우열)
龍湫(용추)(출처 : 정우열)

            龍  湫

        龍動盤渦折     

용이 꿈틀거려 소용돌이 치니

        涵天明日新     

잠긴 하늘에 밝은 해가 새롭다

        晴雷白虹瀉     

갠 날 우뢰 소리에 흰 무지개 뻗치니,

        恍惚孰窮神     

황홀토다! 누가 그 신비를 알리!

용추 시(출처 : 정우열)
용추 시(출처 : 정우열)

여보, 용추란 용이 솟아오른 웅덩이(沼)란 뜻이요. 여기 '龍湫'란 글씨를 쓴 사람은 현종 7년(1666)에 사마시에 합격 공주와 청주 목사를 지낸 구지정(具志禎, 1647-1713)이란 분이라 하네요.

晴雷白虹瀉!  여보, 갠날 우뢰 소리에 흰 무지개  뻗친다 했구려!

흰 무지개!

흰 무지게 보며 다시 올라가니 음암(鷹巖,매바위) 폭포가 소리 치고 폭포 흐르는 물에 물레방아 돌고 있었소. 하도 물이 맑아 손 담가 보았소. "아이 차거워!" 나도 모르게 소리 쳤소.

응암(매바위) 폭포 물레방아(출처 : 정우열)
응암(매바위) 폭포 물레방아(출처 : 정우열)

다시 더 올라가니 콸콸콸 물소리 들려 살펴보았더니 산 중턱에서부터 사단폭포가 퍼붓듯 쏟아 지더군요. 바로 조곡폭포(鳥谷瀑布)였소.

조곡폭포 앞에서 필자(출처 : 정우열)
조곡폭포 앞에서 필자(출처 : 정우열)

여보, 난 한동안 그 폭포 바라보며 넋을 잃었소.

한 폭의 동양화였소. 문득 중국의 여산폭포 상기하며 이백의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 읊었소.

 

日照香爐生紫煙      향로봉에 햇빛 비쳐 자색 안개 생기고,

遙看瀑布掛前川      멀리 보니 폭포는 긴 강줄기를 매달았네.

飛流直下三千尺      물줄기 날아 내려 길이 삼천척이니,

疑是銀河落九天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 것 같네.

 

다시 제2관문(조곡관, 鳥谷關)으로 들어가 약수물 마시고 되돌아 내려 왔소. 내려 오는 길에 다시 석벽을 보니 퇴계 선생의 시가 있더군요.

제2관문 조곡관(출처 : 정우열)
제2관문 조곡관(출처 : 정우열)

     巨石贔贔雲溶溶     

큰 바위 힘 넘치고 구름은 도도히 흐르네

     山中之水走白虹   

  산속의 물 내달아 흰 무지개 이루네.

     怒從崖口落成湫     

성난 듯 낭떠러지 입구 따라 떨어져 웅덩이 되더니,

     其下萬古藏蛟龍     

그 아래엔 옛적서부터 이무기 숨어 있었다.

     蒼蒼老木蔽天日   

  푸르고 푸른 늙은 나무들 하늘의 해를 가리었네

     行人六月踏氷雪     

나그네는 유월에도 얼음이며 눈을 밟는다네.

     湫邊官道走玉京     

깊은 웅덩이 곁에는 국도가 서울로 달리고 있어

     日日輪蹄來不絶     

날마다 수레와 말발굽이 끊이지 않는다네.

     幾歲歡樂幾悽苦     

즐거웠던 일 그 몇번이며 괴로웠던 일 또 몇번이었던가?

     笑撫乾坤睨今古     

하늘 땅 웃고 어루만지며 예와 오늘 곁눈질하네.

     大字淋漓寫巖石     

큰 글자 무르 녹은 듯 바위에 쓰여 있으니,

     後夜應作風和雨     

다음 날 밤에는 응당 바람 비 내리리.

퇴계 이황선생의 '용추' 시(출처 : 정우열)
퇴계 이황선생의 '용추' 시(출처 : 정우열)

눈을 비벼가며 퇴계의 이 시 읽고 내려오다 보니 오른 쪽으로 영화 종합 촬영소가 보이더군요. 낯익은 곳이오. 10년 전 당신  살아 있을 때 온 가족이 와서 구경했던 바로 그곳이요.

영화종합 촬영소(출처 : 정우열)
영화종합 촬영소(출처 : 정우열)

여보, 그 때 아들, 딸, 그리고 손자, 손녀, 온 가족이 와서 난 왕, 당신은 왕비 되어 당상에 앉아 사진 찍었는데...

여보, 이번에 당신 옆에 없어 당신 대신 부산 김대한 원장이 수고 많이 했어요. 올라 갈 때부터 내려 올 때까지 동행하면서 말벗이 되어준 김원장 아니었으면 왕복 8km 거리 아마 어려웠을 것이요.

여보, 우리 김 원장에게 깊은 감사 올립시다!

김원장,  고마웠네!  그리고 사랑해! ♡♡♡

그리고 당신 위해 조곡 폭포 물소리 담아 왔으니 여름날 복중에 시원하게 들으세요!

여보, 안녕! 사랑해!♡♡♡

 

2024. 3. 27.늦은 밤에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이 아내 한솔에게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정우열 주주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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