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두 종류의 금고털이 전문가

나는 어디에서나 어느 모임에서나 동족을 식별할 줄 안다. 나와 같은 동족은 어느 모임에나 있기 마련이다. 말은 많지 않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족속들. 그러나 막상 들여다보면 별 것도 없는데 그래도 끝까지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족속들. 앞에 나가 설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은둔 상태에 있지만은 않고, 주변 상황의 중심과 맥을 면밀히 살피며 자신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족속들. 겉으로는 묵묵한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결코 묵묵하지만은 않은 족속들. 그들이 나와 같은 동족들이다.

명상센터에도 여지없이 나의 동족이 있었다. 그는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자도 나를 알아본 것 같다. 그가 바로 서울공대 출신의 박선생이다. 말없이 수행에 여념이 없고, 야유회에 가서도 별 말은 없지만 필요할 때가 되면 할 말은 어떻게든 하는 족속. 그와 나는 첫 모임에서 눈빛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이미 서로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동족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종족들은 자신의 금고를 여간해서는 털리지 않는다. 자신의 금고를 방어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족속들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동족들을 사랑한다. 동족끼리 사랑하는 것은 거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말은 안하지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금고털이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그런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도 있다. 나는 그런 학원을 차리고도 남을 사람들을 몇몇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학원을 차릴 만큼의 금고털이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쪽 방면에 흥미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금고털이 전문가도 두 종류로 나뉜다. 어떤 방법으로도 금고를 안 털리는 방어전문가와 어떤 금고든 털려고 애쓰는 공격전문가. 당신이라면 과연 어떤 전문가가 되고 싶겠는가?

자기 금고를 안 털리는 방어전문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남의 금고를 터는 공격전문가가 될 것인가? 이건 순전히 사람의 성향에 따라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은 어느 방면에서든 전문가가 되기 어렵다. 오히려 내향적인 사람들이 주로 전문가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내향적이면서 외부 세계에 대한 애착이 많지 않은 이들은 방어전문가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고, 내향적이지만 외부 세계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은 공격전문가에 합류할 것이다.

그런데 남의 금고를 터는 공격 전문가중에 금고털이 전문범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금고털이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적 재능을 이용하여 남에게 사기를 친다든가 남에게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끼치면 금고털이 전문범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와 전문범의 차이는 종이 한장의 차이만큼이나 그 경계가 엷다. 그 가능성 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반면에 방어전문가중에는 자폐증적인 증상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있다.

<계속>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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