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폐적 성향의 금고지기들

자기금고를 털리지 않는 방어전문가들 중에 자폐적 성향의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자폐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폐쇄적이고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정도로 생각하는데 그건 실상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회에 잘 적응하고 멀쩡한 사람 중에 의외로 자폐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 그들이 자폐적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이 모르는 것은 그들 중에 상당수가 금고털이 방어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자폐증이라는 뜻의 영어 "autism"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자신’을 뜻하는 ‘αυτος (autos)’에서 유래된 말로, 오이겐 블로일러(Eugen Bleuler)가 1912년에 《미국 정신 이상 잡지》에 게재한 글에 처음 쓰였다. 이 병을 명확히 분류한 사람은 미국의 소아정신과 의사인 리오 카너(Leo Kanner)인데, 그는 신체적 발달이나 외모는 정상인데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말이 늦거나 말을 하더라도 제대로 의사소통을 못하며, 언어 사용에 있어서 혼란이 있고, 같은 놀이나 행동을 되풀이하며, 상상력은 부족하지만 기억력은 좋은 특이한 아이 11명의 사례를 ‘유아 자폐증(early infantile autism)’이라는 이름으로 의학 잡지에 보고한 것이 시작이었다.

부모 자식 간의 상호작용과 같은 출생 후 요인들이 비정상의 자폐증의 주요원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자기공명영상(MRI)을 사용한 최근의 연구 결과 중추 신경계의 장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자폐아의 뇌 구조, 특히 소뇌와 변연계의 초기 발달단계에서 이상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자폐증 환자의 경우 푸르키녜세포(Purkinje cell)라는 커다란 신경세포가 결핍되어 있으며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과다하게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인구 10,000명당 약 5명꼴로 발생하는 자폐증(autism)은 자기 자신에 비정상적으로 몰입한 상태를 말하며, 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에 어려움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지체나 과잉운동증, 모성결핍에 의한 반응성 애착장애, 뇌 손상, 아동기 정신분열증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질병으로, 1980년 이후 전반적 발달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PDDs)로 부르다가 최근 학계에서는 ‘자폐성 장애’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이들 중 15~20% 가량은 사회적·직업적으로 독립할 수 있으며 남성이 여성보다 3~4배 정도 더 높은 발병률을 보인다. 자폐증 진단이 조기에 이루어지고, 치료를 시작하면 일부 자폐아동들은 사회적 교류를 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영화 ‘말아톤’이나 ‘레인맨’에서 보듯, 자폐증이란 자기 세계에 갇혀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함을 나타내는 증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인간은 모두가 자폐아 출신이라는 견해는 일리가 있다. 태아로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누구나 자폐아였다. 의사표시 방법이 전무한 자폐아였다는 말이다. 이뿐인가? 유아시절 언어를 배우기 이전의 시절에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울거나 표정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해야했다. 주위의 어른들이 알아주면 다행이고 몰라주면 계속해서 울기만 할뿐 별다른 의사표시 방법을 알지 못한다. 전형적인 자폐아적 모습이다. 유아기를 지나 언어를 배우면서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하지만 자라난 환경에 따라 계속 자폐아적인 상태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자폐적 증상이 미약하여 사회적으로 적응한 사람을 정상인이라 부르고, 자폐적 증상이 강하여 사회적 적응에 실패한 사람을 자폐아라고 분류하지만 사실 그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그들 모두가 자폐적인 영역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정신의학자 민코프스키가 자폐를 '현실과의 살아있는 접촉의 상실'이라고 정의한 바 있듯이,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낭패를 보거나 갈등으로 인해 어떤 조직에서 이탈했을 때 일시적이나마 자신의 자폐적인 영역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자폐적인 영역과 사회적인 영역은 마음속에서는 바로 이웃하고 있어서 언제든지 왕래가 가능하다.

자폐적인 영역에는 선과 악의 구분이 없고, 진리와 거짓의 구분도 없다. 판단 이전의 영역으로 그곳에서는 버림받았거나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위로받고 가라앉힐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자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영역에는 따스한 사랑도 없고 공허감이 밀려오기 때문에 오래 있을 수 없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다시 사회적인 영역으로 진입해야 한다. 자폐적 영역에서는 어둠과 공허로 인한 결핍감과 무언가를 갈구하는 욕구가 끊임없이 발산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자폐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을 수시로 왕래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뒤엎는 혁명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외관상으로는 사회순응형으로 보이며 그렇게 성장하기도 한다. 이 사람들이 나중에 자기 금고를 털리지 않는 방어전문가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다. 자폐로부터의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자폐적 영역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상센터에서의 박선생과 나는 말하자면 자폐적인 영역과 사회적인 영역을 수시로 넘나드는 금고털이 방어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자폐적인 증상을 지니고 있지만 타인들이 절대 자폐적이라고 생각지 못한다. 서울공대 출신의 박선생은 대기업에서 잘 나가는 간부급 고액 연봉자이다. 모든 게 정상이다. 자라면서 자신도 모르게 금고털이 방어전문가가 되었을 뿐이다. 명상센터에서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우리는 서로를 알 수 있다. 전문가들끼리의 언어는 말이 필요 없다. 특히 방어전문가들끼리는 더욱 그렇다. 이제 60대의 양선생을 주목할 때가 되었다. 그가 점점 내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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