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말과 상상력의 싸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들이 볼 때 그렇다는 것이고, 그 때 당사자들은 죽을 지경이다. 불난 당사자는 얼마나 애가 탈 것이며, 싸우는 당사자는 상대에 대한 분노에 얼마나 치를 떨고 있을지 알 길이 없다. 더구나 모임에서 구성원들끼리 감정이 상해 있을 때 이것만큼 난감한 것도 없다. 서로에 대해 마음 상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하고, 상대에 대한 비난과 인신공격을 말로 내뱉는 순간 그들이 서로를 원수로 여기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서울공대출신의 박선생이 양선생에게 눈짓을 한다. 감정으로 치닫는 듯 한 기류가 있으니 자리를 그만 파하자는 의미다. 양선생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잠자코 있던 윤선생이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엉뚱한 질문을 한다. 마치 난센스 퀴즈라도 내는 듯이 허공에 질문을 툭 던진다.

"말과 상상력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아세요?"

다들 갑자기 무슨 소린가 하고 윤선생을 쳐다본다.

"말과 상상력이 싸우면 말이 이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상력이 이긴다네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세계가 실체를 드러낸 세계를 이긴다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그럴 법도 하다. 그런데 그 사실이 지금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상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이것은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듣는 사람이 무엇을 연상하는가와 관련이 있다는 거죠. 상대가 어떤 말을 해도 자기 방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면, 그 사람에게는 상대방의 말이 아니라 자기가 상상한 것이 진실이 된다는 거죠. 지금의 조선생님이 그런 거 아닌가요?"

언뜻 들으면 윤선생이 조선생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조선생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한다. 윤선생의 말에 복선이 깔려있음을 조선생이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윤선생은 좀전에 장선생이 조선생에게 당한 수모를 대신 갚아주려는 것이다. 조선생으로서는 가만히 있으면 자기가 자신의 상상대로 상대방의 말을 왜곡하거나 멋대로 해석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조선생의 눈자위가 위로 치켜 올라간다. 다들 긴장한 채 조선생을 쳐다본다.

조선생이 윤선생을 향해 같잖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 말을 누가 했는지는 알고나 하는 말이에요?"

윤선생이 조선생의 일격에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가 뭐가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 말은 에밀 쿠에가 한 말이에요. 말과 상상력이 일치할 때 성취의 효과가 높다는 의미지요. 말에는 권세가 있고 예언 성취적인 면이 있으므로,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한 말이죠."

두 사람의 공방이 치열하다. 조선생은 일단 에밀 쿠에를 들먹이며 예봉을 피해나간다. 역시 조선생답기는 하다. 그러나 둘 다 에밀 쿠에의 말을 자기 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프랑스의 의사였던 에밀 쿠에는 “말과 상상력이 싸우면 반드시 상상력이 이긴다. 만약 말과 상상력이 손을 잡으면 그 힘은 단순히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상승효과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상상력이 말이나 의지보다 훨씬 강력하며, 상상력과 의지가 충돌할 때 늘 상상력이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다.

사람의 말이 중요한 이유는 그의 말을 통해 그가 어떤 상상을 하며 세상을 살고 있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사람의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관찰하면 그 사람의 인품과 인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선생은 그런 점에서 사람들의 인심을 잃고 있다. 타인의 단점은 귀신같이 찾아내면서도 막상 자신의 뒷모습은 보지 못한다. 조선생의 장점을 알고 있는 박선생이나 나는 그런 점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계속>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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