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탐색전

60대의 양선생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다. 굳이 분류하자면 양선생은 금고 터는 공격전문가일 확률이 높다. 그와 같은 금고 터는 전문가는 필연적으로 나 같은 방어전문가에게 다가오게 되어있다. 별로 대화도 많지 않았는데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그는 나의 내면세계를 탐색해냈다. 내 마음의 금고 바깥쪽이 이미 털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금고 안쪽의 깊은 내면세계는 어림도 없다. 방어전문가의 깊은 금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털릴 수 없다.

어느 날 명상을 마치고 다과시간에 그는 나에게 슬며시 다가왔다. 그의 언어구사 방식은 무척 신중했다. 나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나의 내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식이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나의 내면을 열어보였다. 그가 다가오기 전에 이미 나는 그에게 내 마음의 금고를 열어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의 내면을 살피고자 하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어느 정도까지는 열어보여야 한다. 양선생도 그 정도의 매너는 지니고 있었다.

‘우리 안에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 뒤에 있는 것과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보잘 것 없다.’고 에머슨은 말한 바 있다. 인간은 그 내부에 자기를 지배하는데 필요한 일체의 것을 소장하고 있으며, 자기 몸에 닥쳐오는 참된 행복과 재난의 일체는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양선생과 내가 서로의 내면을 공유하는 것은 서로의 내면세계를 존중한다는 의미와 아울러 상대방이 지닌 내면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서로의 관계가 편해진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슨 말이든 이해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같은 편이 되는 것이다. 모임에서 양선생 같은 비중 있는 인물과 같은 편이 된다는 것은 나의 위상을 자연스레 높일 수 있는 계기도 된다. 반면에 양선생 입장에서도 나같이 웬만해서는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는 사람과 서로의 금고를 열어 보이는 것은 그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밀약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늘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물며 이런 명상센터 같은 곳에서도 말이다.

양선생은 서울공대출신의 명상가인 박선생과도 그런 밀약이 되어있는 관계이다. 서로를 감싸주는 관계까지 발전해있다. 양선생은 다른 회원들과도 직접 간접으로 연결망이 형성되어 있는 듯 보인다. 특히 양선생은 여자회원들에게 인기가 많다. 비단 명상센터만이 아니라 다른 모임에서도 삼사십 대 여성회원들 중에 양선생 팬이 많다. 가끔 명상센터에 참관인들이 오곤 하는데 주로 양선생의 소개로 오는 사람들로 거개가 젊은 여성 회원들이다. 센터 내에서도 미모의 장선생과 털털한 윤선생도 양선생을 따르는 편이다. 특이하게도 양선생을 견제하는 조선생을 제외하면 양선생의 권위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권불십년이라는 말은 정치 권력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런 모임에서도 한 사람의 권세(?)는 언제고 흔들릴 소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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