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칼춤을 추는 여인

명상센터에 가입한지 세 번째 분기가 되었을 때 음악회에 갔다. 꽤나 수준 있는 음악회였는데, 관람을 마친 후 호프집에 간 게 화근이었다. 문제는 항상 애프터 모임에서 터진다. 미모의 장선생이 조선생에게 살포시 미소를 지어보이며 조선생 맞은편에 앉는다. 나와 40대 학원장인 최선생도 같은 테이블이다. 모임이 늘 그렇듯이 4인 기준으로 테이블은 갈리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끼리 대화를 하게 마련이다.

최선생은 농담을 잘하는 편이다. 다소 외설스럽게 들릴 수 있는 농담도 하곤 하는데 익살스럽게 좌중을 즐겁게 하기 때문에 그를 두고 여태껏 문제 삼은 사람은 없었다. 그 날도 역시 장선생의 미모에 대해 농을 하자 다들 배꼽을 잡으며 낄낄거리며 웃는다. 그러자 조선생이 잠시 최선생을 노려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장선생에게 시선을 돌린다.

"너무 쉽게 보이는 여자들이 문제에요. 다른 여자들도 도매금으로 넘어가잖아요?"

순간 장선생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지금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세요? 쉽게 보이다니요? 나 참~ 기가 막혀서."

발끈하는 장선생을 제쳐둔 채 조선생이 이번에는 최선생을 지그시 쳐다본다. 최선생은 어리둥절하며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런 성적인 농담은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지난번에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치고 있네요. 그러다 나중에 큰 코 한 번 다칠 거예요."

조선생은 마냥 진지하게, 진정으로 최선생을 위해서라는 듯이 충고를 한다. 최선생은 조선생앞에서 양처럼 순하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 이의를 제기했다가는 판이 깨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다.

옆 테이블의 박선생이 그만하면 알아들었을 거라며 넌지시 조선생을 제지한다. 그런데 조선생은 이미 칼을 빼들었다. 빼든 칼로 누군가를 쳐야하는데 주위의 제지로 멈추게 되어 성에 안찬 듯하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양선생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아닌가? 양선생은 조선생의 눈길을 애써 피하며 딴청을 피운다.

언제부터인가 조선생은 명상센터에서 군기반장 행세를 하고 있다. 윤리와 도덕으로 무장한 채 다른 사람들을 그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한다. 심리학자 '존 브래드쇼'가 밝힌 바와 같이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간직하고 있다. 상처받은 과거는 늘 그의 주위를 맴돌며 과거의 상황을 재현한다. 재현된 상황에서 어떤 특정인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로 둔갑한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고통스럽고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조선생이 정확히 그런 모습이다. 좌충우돌하며 상처를 주고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자신의 불편한 내면 상태의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명분은 윤리와 도덕이며 합리성의 탈을 쓰고 있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짓누르는 음울한 자아가 내면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조선생 본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조선생에 대해 연민을 품고 있다. 그러나 조선생의 내면세계를 평정해줄 만큼의 내공이 아직 내게는 없다. 그럴만한 관계도 아직은 아니다.

삶속에서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깨달음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러기에 사고와 실천 사이에는 깊은 바다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먼저 생각을 바꾸고 그에 따라 행동을 바꾸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먼저 행동을 교정하면 그에 맞춰 생각이 바뀌게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조선생에게 그 시도를 권유하기에는 조선생이 너무 앞질러가고 있다. 칼춤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계속>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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