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신경전

같은 명상이라도 종교에 따라 그 방법과 목적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명상이 끝난 어느 날 다과시간에 양선생이 그에 대해 요약 설명을 하고 있었다. 불교적 명상과 가톨릭의 묵상이 어떻게 다르고 그 특징은 무엇인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회원들은 양선생이 말하면 대체로 경청하는 편이다. 제일 연장자이기도 하거니와 아는 것도 제일 많았다. 그러니 들어줘야 한다. 별로 질문할 것도 없다. 서론, 본론에서부터 결론도 스스로 내는데 무슨 덧붙일 말이 필요하겠는가?

내용도 그럴듯하여 다들 듣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칼칼한 성격의 조선생이 여지없이 양선생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그런데 전에부터 항상 느끼던 건데요. 왜 양선생님은 우리에게 말할 때 마치 선생이 학생에게 하듯이 강의조로 말을 하는 거죠?" 조선생의 갑작스런 질문에 양선생의 당황한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고, 연륜이 있어 그런지 그 말을 듣고도 빙긋 웃기만 한다.

양선생은 대학교수 출신이다. 평생 강의를 하다 보니 강의조의 말투가 몸에 배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선생의 예리한 지적에도 굳이 변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듯하다.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50대의 조선생은 기자출신이다. 중앙일간지 여성기자로 활약을 하다가 지금은 프리랜서로 대학에 강의를 나가거나 각종 모임에 강연을 나가기도 한다. 그런 조선생이 날린 직격탄에 그 노련하고 박식한 60대의 양선생이 약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분명 속은 쓰릴 것이다.

조선생은 신경증적 증세가 있는 편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서울공대출신의 박선생이 신경증적인 조선생을 지그시 바라본다. 나는 한방 먹은 양선생의 표정을 살핀다. 다소 긴장이 되는 상황인 것은 틀림이 없으나 그렇다고 제삼자가 나설 상황도 아니다.

나와 박선생이 눈빛을 주고받는 사이에 화제가 다른 데로 흘러간다. 다행이다. 양선생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 되기도 했지만 흥미롭기도 하다. 조선생은 어찌 보면 양선생이 가는 영혼의 노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길목인지도 모른다. 조선생은 양선생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당신이 진정한 명상가라면 나를 넘어가보라" 고.

모임이 파할 즈음 자리를 떨치고 일어서려는데 조선생이 느닷없이 나를 보며 한마디 한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 같은 분은 좋아요~ !"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당황스럽다. 표정을 보니 조금 전과는 달리 우아하고 세련된 표정으로 얼굴이 바뀌어 있다. 양선생을 공격한 직후에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50대 후반의 여성에게 도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기습공격은 당해봤어도 '기습호감'은 난생 처음이다.

창졸지간에 급하게 정신을 가다듬어본다. 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도 따뜻한 인간미가 있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걸까? 그게 아니라면 순수하게 나를 좋게 보는 것일 수도 있다. 하긴 나도 조선생의 진지한 삶의 자세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녀의 예리한 지적은 그런대로 합리적이기 때문에 은근히 그녀의 편을 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눈감고 넘어갈 수 있는 개개인의 단점을 지적하는 입바른 소리이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나의 생각을 조선생이 눈치 채고 있는 걸까? 이를테면 '나는 당신이 나에게 동조하고 있음을 알아요.' 라는 메시지일수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 남자에게 불쾌감을 표시한 바로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남자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여성의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과연 여자들은 '신도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농담이 맞는 걸까? 좋아한다고 하니 싫어한다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만 나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사람들도 호기심어린 눈으로 나와 조선생을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마치 자신들이 모르는 둘만의 섬씽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시선으로. 조선생은 자신의 입장을 옹호해줄 우군이 필요한 것일 게다. 좌충우돌하는 자신을 곤경에서 구해줄 흑기사를 찾는 건지도 모른다.

양선생은 못들은 척 하며 멀찌감치 앞서간다. 세상을 아무리 살아도 처음 겪는 일은 계속 생기기 마련이다. 아직 나는 인생의 고수가 못된다. 그리고 명상센터에서 활동을 오래한 조선생이나 양선생조차도 아직 고수가 아닌 듯 보인다. 인생에 고수가 과연 있기는 한걸까?

<계속>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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