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 팜므파탈의 소용돌이

조선생의 화해 제스처와 장선생의 화답으로 긴장이 잠시나마 풀어지는 순간이다. 조선생이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다. 다들 마음을 놓고 긴장이 풀어졌을 때 칼춤을 추며 살며시 다가가 적장의 등에 비수를 꽂는 것이다. 조선생이 드디어 일을 벌인다.

"그런데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어요."

그리고는 작심한 듯 양선생에게 칼끝을 겨눈다.

"예전에 제가 명상센터에 들어와 처음 야유회를 갔을 때, 양선생님이 저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나세요?"

긴장을 풀고 있던 양선생은 불똥이 자신에게 튀자 움칠한다. 양선생이 머리를 긁적이며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조선생이 정색을 하며 양선생을 몰아세운다.

"저에게 팜므파탈 같은 이미지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근데 그거, 저를 성희롱한 거 아닌가요?"

갑자기 휑하고 찬바람이 분다.

팜므파탈. 그 본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최근에는 '매혹적인 여인'이라는 말로 쓰이기도 하여 좋게 들을 수도 있는 말인데, 조선생이 그것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거기에다가 성희롱이라는 단어는, 그것을 입에 담는 순간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간접적인 협박이기도 하다. 강연도 다니고, 지역사회에서 지명도가 있는 양선생이 '성희롱'이라는 말 한 마디로 자칫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도 있다. 양선생의 표정이 일순간에 굳어져버린다. 눈빛이 초점을 잃고 흔들린다.

조선생의 발언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박선생이 서둘러 중재를 나선다.

"아! 팜므파탈이라는 것은 그만큼 조선생님이 매력적이라는 말인데, 뭘 그런 걸가지고 그러세요? 마치 양선생님이 흑심이라도 품었다는 듯이 말씀하시네."

그러자 조선생이 정색을 하고 박선생을 반박한다.

"팜므파탈이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요? 남자를 유혹해서 파멸시키도록 운명 지워진 여자라는 뜻이에요. 아니, 내가 그런 여자로 보이세요?"

똑같은 말이라도 곡해하고 들으면 한도 끝도 없다. 이렇게 되면 누구의 중재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오해의 당사자인 양선생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저는 그저 인상이 좋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그러자 조선생이 양선생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바로 반박을 한다.

"아니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성적인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꼈거든요."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치가 떨려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사실 팜므파탈은 '유혹'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악마적인 여성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악마와 팜므파탈은 동일하게 유혹을 주 무기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팜므파탈이라는 말 한 마디 했다고 양선생을 궁지로 모는 것은 무리가 있다. '치가 떨려 잠을 못 이룰 정도'라는 말도 지나친 과장이 아닐까? 조선생이 아무리 타인의 잘못을 지적질 하는데 일가견이 있다고 쳐도 이건 정도가 심하다.

조선생은 그렇다 치고 양선생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팜므파탈이라는 말을 한 걸까? 보통 그 단어는 영화의 여주인공이나 탤런트중 미모가 뛰어나면서 매혹적인 여자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당사자가 없을 때 그 사람을 평하면서 농담으로 말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만난 여자에게 직접 그런 표현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혹시 남자가 여자에게 모종의 연정을 품었다면 몰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60대 후반의 양선생이 50대 후반의 조선생에게 호감어린 애정 표시를 하기라도 한 걸까? 그걸 눈치 챈 조선생이 양선생을 거절하고 그 뒤부터 양선생을 그렇게도 쪼아댄 걸까? 당사자들의 증언을 듣기 전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게 남녀관계다. 팜므파탈의 소용돌이가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계속>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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