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바벨탑 그 이후

우리의 의식에는 '의식하고 있는 의식'과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의식'이 있는데, 두 의식의 비율이 1대 6 이라는 주장도 상상력의 중요성을 대변한다.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의식하고 말을 해도 내 상상력을 좌우하는 무의식이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느낀다면, 나의 말대로 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대화가 소통의 주요 수단이라고 하지만 대화가 갈등을 촉발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상대방이 내 말을 나의 진심 그대로 받아들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의 진심보다는 듣는 자가 연상하고 상상하는 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확률이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6분지 5이상이다. 오해와 왜곡의 확률이 훨씬 더 크다.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그러니 세상을 산다는 것은 화합보다는 불화의 가능성이 얼마나 더 많은지, 그리고 얼마나 서로 간의 갈등을 안고 사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 마디로 대화가 소통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오해와 왜곡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자 언어의 한계이기도 하다.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려면 진심으로 그를 사랑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자주 사랑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 그것도 정답은 아니다. 그 진심어린 사랑이란 것도 결국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바벨탑 사건이후 언어가 갈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을 기록한 성경을 보면 신이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원래 바벨은 ‘혼잡하다, 혼동하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혼란이라는 뜻이다. 언어를 혼잡하게 했다는 것은 언어를 달리했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신의 목적은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언어만 달라진 게 아니라 같은 언어끼리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함을 예고하고 있다.

이를테면 여자들의 언어구사방식이 남자들의 언어방식과 천양지차라는 사실은 오늘날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언어표현방식이 다른 지역에서 혹은 가족문화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자 간에 혹은 여자끼리의 언어구사방식 차이도 만만치 않다. 그런 차이들로 인해 멀쩡한 가정들이 깨지기도 하고, 모임에서는 불화가 속출하기도 한다. 소통이 왜곡되는 현상은 바벨탑 이후에 벌어지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러나 바벨탑의 비애는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보다 자기 스스로를 높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윤선생과 조선생은 둘 다 에밀 쿠에의 말을 각자 자기식대로 해석하면서 상대를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듣는 자는 자기 멋대로 상대의 말을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윤선생의 말도 맞고, "말하는 자가 도의를 벗어난 말과 행동은 삼가야한다."는 조선생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사실은 둘 다 중요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소통과 공감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인간이 지닌 '못 말리는 자아의식'일 것이다.

한번 터진 봇물은 바닥을 보여야 끝이 난다. 사람의 감정도 한번 폭발하기 시작하면 그 에너지가 다 소진된 다음에야 잠잠해 질 것이다. 조선생이 윤선생의 예봉을 피해나가자 아까 발끈했던 장선생이 정색을 하며 조선생을 힐책하듯이 몰아세운다.

"아까 저에게 '여자가 너무 쉽게 보인다.'고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뭐가 쉽게 보인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주세요. 그리고 그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를 요청합니다."

장선생의 강경한 요구에도 조선생은 끄떡없어 보인다. 오히려 무슨 그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느냐는 듯이 어이없어 하며 장선생을 쳐다본다.

나와 박선생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러나 남의 싸움에 끼어들 때는 초기에 진압하든가, 그게 아니면 어느 정도 사태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특히 여자들끼리의 말싸움에 어쭙잖게 끼어들었다가는 자칫 뼈도 못 추릴 수 있다. 그래도 명색이 명상센터 모임인데, '설마 막장까지 가랴?'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계속>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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