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망상의 바다에 빠진 명상가

명상은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명상이 잘못 되면 망상으로 흐를 수도 있다. 명상의 세계에서 망상의 바다로 빠지는 명상가들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명상은 긴장과 잡념에 시달리는 현실세계로부터 의식을 떼어놓음으로써 밖으로 향하였던 마음을 자신의 내적인 세계로 향하게 한다. 항상 외부에 집착하고 있는 의식을 안으로 돌려줌으로써 마음을 정화시켜 심리적인 안정을 이루게 하고 육체적으로도 휴식을 취하게 해준다. 모든 생각과 의식의 기초는 고요한 내면의식인 바, 명상을 통하여 순수한 내면의식으로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그런데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타인들과 소통하게 되면 자신의 내면을 보듯이 타인의 내면도 보다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망상의 바다에 빠지게 된다. 그 망상은 물론 그럴듯한 명분을 동반한다.

"저 사람의 잘못된 생각과 감정을 교정시켜주어 진정한 내면의 평화로 인도해줘야겠다." 라든가 혹은,

"내가 저 사람의 단점을 고쳐주는 과정에서 갈등과 불화가 생긴다 해도 나에게는 문제될 게 아무것도 없다. 고치면 다행이고 아니면 말고." 와 같은 식의 망상이다.

일전에 박선생과 함께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조선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그 결과 조선생이 위와 같은 망상의 바다에 빠져들었다는 결론을 낸 적이 있다. 타인의 단점을 지적하여 이룰 수 있는 것은 불화와 갈등밖에 없다. 그래서 망상이다.

동양적 명상은 자기 안에 있는 이기심과 헛된 욕망과 허물을 보게 되고, 자기 관조를 더욱 정교하게 함으로써 자아의 해방감과 환희를 일시적으로 가져다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자기중심적인 영성을 지니게 되는 측면도 있다.

조선생의 망상은 누가 귀띔해준다고 해서 깨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 망상의 바다 끝까지 가봐야 한다. 망상의 바다 끝에는 천 길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폭포가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잘못을 고쳐주려는 망상이 절정에 이를 때, 조선생은 망상의 급류에 휩쓸려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 깊이가 얼마나 될지는 조선생이 지닌 망상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 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조선생은 망상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판은 키우기가 어렵지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조선생의 칼끝은 이미 양선생에게로 향해 있었다. 최선생을 혼내고 장선생을 약 올린 것은 그 전초전에 불과하다.

장선생이 정색을 하고 사과 요구를 하자 조선생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어느새 안색을 온화하게 바꾼다. 언제 다투기라도 했냐는 듯이 말투도 상냥하다.

"나도 그 나이 때는 장선생만큼이나 예뻐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시절이 있었어요.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다 장선생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조선생이 장선생과 화해를 시도한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장선생을 치켜세운다.

"어머, 장선생은 얼굴만 이쁜줄 알았더니, 피부도 어쩜 이렇게도 고울꼬!"

조선생으로부터 예기치 않은 칭찬을 들은 장선생은 떨떠름하면서도 조선생의 칭찬이 싫지는 않은가보다. 표정이 금방 화사하게 변한다. 장선생으로서도 조선생에게 더 이상 얻어 낼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뭘요. 조선생님이 제 나이 때는 저보다 더 고우셨을텐데요."

조선생이 내민 화해의 손을 장선생이 일단은 잡았다. 조선생의 '기습호감'의 솜씨는 여전하다. 불쾌감과 호감표시를 자유자재로 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일 수 있다.

소통이란 것은 언어능력이기도 하지만, 감정능력이고 인성능력이기도 하다. 대화라는 언어적 교류 안에는 생각의 교류만 있는 게 아니라 감정의 교류와 더불어 인성의 교류도 함께 들어있다. 그런데 조선생이 장선생에게 실언을 하고 그것을 주워 담는 과정이 여간 매끄럽지 못한 것은 조선생의 인성에 어떤 장애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얼렁뚱땅 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몰염치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조선생이 갑자기 꼬리를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장선생은 출중한 미모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상냥하여 회원들에게 인기가 높다. 장선생과 정식으로 한판 붙는다면 자신에게 불리하게 사태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정도는 조선생도 짐작하고 있다. 더구나 조선생의 타깃은 따로 있다.

<계속>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주주통신원  cshim777@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