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마녀사냥의 배후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의 일들을 거울삼아 살아간다. 그래서 과거는 현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의 과거를 알면 현재를 예상할 수도 있다. 과거는 현재의 모태이고 현재를 쥐고 흔드는 권세가 있다. 미래는 어떤가? 미래는 아직 권세가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미래라는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현재를 불안하게 하고 초조하게 하기도 한다. 미래가 지닌 영향력이다. 그리하여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틈바구니에 끼어 쪼그라들고,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십상이다.

팜므파탈사건 이후 양선생이 명상센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동생이 입원하여 병간호 때문이라고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박선생이 양선생에게 연락을 했지만 만나지도 못했다고 한다. 양선생이 장고에 들어간 게 틀림없다. 예감이 별로 좋지 않다.

양선생이 누구인가? 금고털이 전문가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고 터는 전문가이지, 자신의 마음을 방어하는 전문가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여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는 데 한계가 있을 터였다. 공격 전문가가 공격을 받으면 방어보다는 반격으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박선생과 나는 그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조선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명상모임에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가 상처를 입었다면 전문가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조선생이 양선생에게 겨누었던 칼끝이 이제는 조선생을 향하여 조여 오고 있었다.

양선생이 모임에 나오지 않은 지 한 달 정도 후에 긴급 비상회의가 소집되었다. 양선생과 조선생을 제외한 모든 회원이 소집되었다. 양선생의 일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대신에 조선생이 다른 회원들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많은 회원들이 조선생으로부터 받은 모욕이 보고되었다.

조선생이 명상모임에서 퇴출되는 순간이었다. 선배를 위시해서 나와 박선생은 그런 식의 마녀 사냥은 적절치 않으며 조선생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선생에게 일방적인 퇴출 통보가 전해졌고, 조선생이 반발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조선생의 퇴출건도 그렇고 마음이 편치 않아 박선생과 따로 만나기로 했는데, 그 사실을 전해들은 선배와 장선생도 동석하게 되었다. 우선 조선생을 퇴출시키는데 의견이 모아진 배경이 궁금했다. 선배와 장선생이 밝힌 바에 따르면, 최선생과 장선생이 앞장을 섰다. 조선생에게 대놓고 무시당했거나 조롱당한 회원들이 앞장을 선 것인데, 그 일이 있기 전에 양선생과의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생을 퇴출시키자는 장선생과 최선생의 제안에 여러 회원들이 적극 동의했다. 선배를 포함해서 나와 박선생은 조선생에게 호의적일 것 같고 평소 중립적이어서 연락을 취하지 않았고, 평상시에 교류가 많지 않았던 두서명의 회원들에게도 사전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도 조선생 퇴출에 전격적으로 동의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조선생 퇴출에 적극 동의한 걸까?

박선생에 따르면, 오래 전에 양선생과 박선생을 포함한 몇 명이 모여 심령술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를 통해 악령이나 선한 영이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에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고대 악령에 대한 연구도 했었다고 한다. 박선생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 고대 악령들이 행한 비술 중에 가장 사악한 것이 바로 사주(使嗾)나 교사(敎唆) 행위이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은밀하게 다른 사람들을 사주하여 살인이나 복수를 행하는 것이다. 부족 간의 분쟁이나 종족간의 전쟁은 몇 세대에 걸쳐 인류의 평화를 파괴했는데, 모두가 바로 이런 사악한 복수심 때문이었고, 그 배후에는 고대 악령들이 개입되어 있었다. - 는 것이다.

그런데 양선생이 고대 악령에 관한 연구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악령과 선한 영이 사람의 마음과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고대 악령에 대한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게다가 박선생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하였다.

"양선생이 다른 회원들을 사주했다면, 혼자 힘으로는 어려웠을 거예요. 악령을 불러들였을 겁니다. 복수와 간계의 악령을 불러들여 그 악령으로 하여금 다른 회원들의 영과 교접하여 조선생에 대한 복수심을 충동질한 거지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쾌락을 샀다면, 양선생은 복수를 위해 영혼을 팔았다고나 할까요?"

양선생이 금고털이 전문가에서 금고털이 전문범으로 전락한 것이 확인되었다. 양선생은 그 일로 금고털이 전문가 대열에서 탈락하게 될 것이다. 전문가 행세를 하지 못하고 범인 취급을 받는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이 터부시했던 금기를 어긴 것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끼어 초라한 행색을 드러낸 양선생. 그에게 있어 과거는 명예욕이자 명예에 대한 집착이었고, 그에게 미래는 그 명예에 따른 타인들의 존경심이었다. 조선생의 팜므파탈 건으로 그의 과거가 뿌리 뽑히고, 미래가 흔들리게 될 위험에 처하자 그의 공격본능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상황을 과소평가했고, 자신을 과대평가했다.

박선생의 말을 듣던 선배가 동의한다는 듯이 조심스러운 의견을 개진한다.

"물론 양선생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복수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겠지요. 조선생이 성희롱으로 자신을 걸었을 때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꼈을 텐데, 양선생 같은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런 위협에 직면하여 조선생을 몰아내 위협을 원천적으로 제거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계속>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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