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인류 역사에 개입한 흔적들

녀석이 인류 역사에 개입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녀석은 인류가 서로의 땅과 재산을 탈취하기 위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최초의 인간 루시뿐만 아니라 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생사를 좌우하며 알게 모르게 인류 역사에 개입해왔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모기를 창조했다면, 인류는 모기의 도전을 극복해야 할 과제가 태초부터 주어진 셈이다. 다만 인류가 무지하여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뿐이다.

 

▲ 별의별 걸 다 알려주는 서울시, 5월 1일부터 모기예보 개시(사진 출처: 한겨레 신문 / http://www.seouland.com/arti/culture/culture_general/394.html)

인간 역사는 녀석을 가볍게 보거나 소홀히 여김으로 인해 뒤바뀐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녀석이 인류 역사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에서 갑자기 사망한 것은 녀석의 개입으로 인한 것임이 드러났다. 32살의 젊은 나이였다. 그의 사인을 두고 독살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었고 숱한 의혹이 제기되어왔다. 당시 알렉산더는 지구 끝까지 정복했다고 생각했었다. 더 이상 정복할 곳이 없다고 생각한 알렉산더는 공허와 실의에 빠졌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최근 학자들은 알렉산더의 사인(死因)은 말라리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산더 전문가인 영국의 앤드루 척은 그 근거로 알렉산더 대왕이 죽기 2주일 전 배를 타고 바빌론 교외의 늪지대를 순찰했던 사실을 든다. 이 지역은 현재도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이다. 말라리아의 잠복기가 9일에서 14일이니까 딱 들어맞는다.

세계사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인물은 칭기즈칸이다. 칭기즈칸의 사망원인도 명확하지 않지만, 말라리아를 앓다가 죽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래서 말라리아 희생자 자료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말라리아가 모기에 의해 옮겨진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20세기 들어서이다. 그 전에는 말라리아가 공기로 전염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말라리아라는 병 이름도 이태리어 중에서 나쁘다는 뜻의 접두어 ‘mal’과 공기라는 뜻의 ‘aria’가 합쳐진 단어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소설 중에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이라는 책이 있다.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가 직접 만나보고 <군주론>을 쓸 때 모델로 삼았던 실존 인물이다. 당시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아들로서, 이탈리아 통일을 꿈꾸는 젊고 잘 생긴 유력한 야심가였다.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를 찾아가 도시계획을 논의한다. 그러나 그의 꿈도 아버지인 교황 알렉산더 6세가 말라리아로 죽으면서 좌절되었다. 결국 말라리아 때문에 대제국 건설의 큰 꿈들이 좌절되고, 인류 역사가 크게 바뀐 셈이다.

이밖에도 말라리아로 사망한 역사적 인물들은 로마 황제와 유럽의 왕, 교황들을 포함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테레사 수녀, <신곡>을 쓴 단테, 성 어거스틴도 모두 말라리아의 희생자들이다. 조지 워싱턴과 링컨을 사경으로 몰아 미국 역사를 거의 바꿀 뻔 하기도 했다. 모두가 녀석이 옮기는 질병으로 인한 사건이었다. 인류 역사에 관여해 온 녀석의 역사는 실로 찬란하기까지 하다.

지금도 녀석은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꿀 누군가를 말라리아나 전염병으로 소리 없이 저 세상으로 보내고 있다. 적과의 동침이 위험한 이유이다.

* 참고 :  체사레의 아버지인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애인인 반노차와 낳은 아이들을 자신의 친자식으로 인정한 첫 번째 교황이었다. 알렉산더 6세는 체사레 외에 6명의 자녀를 두었다. 체사레는 아버지의 배경으로 추기경까지 올라 이탈리아 전체를 교황령 아래 통일하려는 야심을 가졌지만 아버지가 죽고난 뒤 얼마 못 가 31세의 나이에 시신을 뉘울 만한 곳도 없이 초라하게 죽는다(출처 : 다음 백과 사전).

▲ 도소 도시 〈체사레 보르자의 초상화〉 캔버스에 유채 / 95×77cm / 1518년경 제작 /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 1층 7실

<계속>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심창식 주주통신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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