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전설속의 은인과 최초의 인간 루시

녀석은 내 경험과 역량으로 퇴치될 수 있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녀석은 오늘날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자기 종족의 공로에 힘입은 것이라며 그에 대한 대가로 인간의 피를 상납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긴 인간이 녀석의 종족들에게 신세를 지었다고 하는 인도의 전설이 있었다.

인간이 아직 지구상에서 세력이 약할 무렵, 갈수록 강성해가는 인간을 보며 위협을 느낀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지금 인간을 멸종시키지 않으면 자신들이 위험해질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고, 인간을 어떻게 멸종시킬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열었던 것이다. 모든 동물들이 인간을 멸종시키자는 프로젝트에 찬성했는데 오직 녀석의 종족만이 반대하며 '인간이 그렇게 좋은 별미인데 그냥 냅두죠 뭐' 라고 끝까지 변호하는 바람에 동물의 '인류 말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한 전설이지만 아주 터무니없는 내용은 아니다.

인도 전설이 말해주듯 인간과 모기의 역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인연이 깊다. 미국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에 유골이 전시돼 있는 최초의 인간 ‘루시’가 말라리아 감염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모기와 인간의 질긴 악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보다 수억 년 먼저 지구상에 정착한 모기는 새로운 식단으로 인간을 반겼음에 틀림없다.

전 세계 19개 박물관과 연구 센터의 소식지 '스미스소니언 인사이더(Smithsonian insider)’는 2013년 10월 무려 4,600만 년 전의 화석에 대해 보도한 바 있는데, 그 화석은 뱃속에 피가 들어 있다고 확인된 모기의 화석이다. 현생 인류라고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때가 15만 년~25만 년 전으로 추정할 때 -유인원까지 포함해도 인류역사는 최대 600만 년 정도로 모기의 역사와는 비교가 안 된다 -인류는 탄생하면서부터 바로 녀석들의 맛있는 별미로 존재해왔다고 볼 수 있다.

▲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루시(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한겨레〉 자료사진.

최초의 인간 루시는 1974년 11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하다르의 한 강가에서 미국의 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이 발견한 52개의 뼛조각이다. 학자들은 이 화석을 약 320만년 전에 살았던 키 107cm, 몸무게 28㎏ 정도의 25세 여성으로 추정됐다.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발견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 인류였다.

루시라는 별명은 요한슨이 즐겨 듣던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따왔다. 가장 오래된 직립원인 유골로 ‘최초의 인간’, ‘인류의 어머니’인 셈이다. 고고학자 도널드 요한슨은 루시가 '인류의 조상이며 유인원과 현생 인류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학설에는 허점이 있었다. 루시는 직립보행을 했지만 침팬지의 외양과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도구를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그러다가 1992년 루시가 발견된 지역 인근에서 '아르디'가 발굴되면서 루시는 '인류의 어머니' 자리를 내주었다. 아르디는 약 44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직립보행을 했고, 물건을 세게 쥘 수도 있었다고 한다.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라미두스’다.

1974년에 발견된 '최초의 인간 루시’는 40년 후 2014년 뤽베송 감독의 영화 주인공으로 뇌용량의 100%를 사용하는 ‘전지전능한 루시’로 다시 태어난다. 영화 속에서는 두 명의 루시가 조우하는 장면도 나온다. 수백만 년 전 루시가 지구에 살 때, 인류는 지극히 미미한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수백만 년 후 인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무서운 자리를 차지하였고, 인류 때문에 대가를 치르고 있는 다른 생명체에 대해 큰 책임을 느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류가 모두 뤽베송의 ‘전지전능한 루시’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최초의 인간’ 루시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생명체와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조화로운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피를 탐하고 말라리아 등의 전염병을 옮기는 녀석의 종족들과 조화로운 공존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는 논란이 있다. 녀석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인류가 말라리아 등에 대한 백신을 발견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계속>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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