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류 최대의 적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은, 원래는 원수처럼 지내지만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입장을 같이 할 떄 쓰는 추상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나는 이해관계가 전혀 들어맞지 않는 관계인데도 적과의 동침을 지속하고 있다. 그것은 추상적인 용어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서의 동침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적과의 동침을 운명인 냥 받아들이는 이 기막힌 현실을 도대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한단 말인가? 국내적으로는 일부 언론이나 방송매체에서 일시적으로 문제 삼은 적은 있지만 큰 이슈가 되지는 못한다. 힘없는 국민들이 마지막 순간에 두드려 본다는 국민신문고에서는 이에 대해 아예 무관심하기까지 하다.

어디 국내뿐인가? 국제적으로는 유엔에서도 캠페인성으로 문제 삼기는 하지만 연례행사 차원에서 그치고 만다. 개인의 인권문제에 열을 올리는 인권단체에서도 사생활이 침해되는 적과의 동침을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보수 정권에서 진보 정권으로 바뀌었을 때 잠간 기대를 한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기대를 저버린 것은 진보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적과의 동침을 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에 대해 진보 정권에서도 아무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보수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해서 정권초기에 문제를 제기하긴 했으나 결국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하긴 해결책이 없으니 문제의식을 지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렇다고 문제의식마저 없다면 그 해결책은 더욱 요원한 일이 아니겠는가?

침실이라는 내밀한 공간에 배우자도 아니고, 애인이나 첩도 아닌, 적을 끌어들인다는 게 - 사실로 말하자면 끌어들인 게 아니라 제 발로, 아니 제 날개로 찾아온 것이긴 하지만 -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인 것이다.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빌 게이츠가 출연한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2015년 가장 인간을 많이 죽인 동물로 지정했을 정도이다. 재단에서 추산한 피해자는 무려 7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이 녀석들이 인류의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간야말로 가장 많이 인간을 살상한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한 해 7억 명에 가까운 사람이 녀석이 옮기는 병에 걸리고, 맹수에게 물려 죽는 사람보다 녀석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훨씬 많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로 꼽힌다. 미국 하버드대 ‘앤드루 스필먼’ 연구원은 책 '인류 최대의 적, 모기'에서 "지구상의 어떤 곤충도 인간의 역사에 이토록 직접 개입해 치명타를 가한 경우는 없다"고 밝혔다. 새해 초부터 중남미와 태평양 일대 국가를 강타하고 있는 지카 바이러스를 비롯해 말라리아, 뎅기열, 일본뇌염, 황열병 등 인류를 위협하는 감염 병이 모두 녀석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계속>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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