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全裸)의 행복

 

새벽산책을 마치고 문 앞에 선다.

아직 가지 못한 밤이 어슬렁거린다.

방문을 여니 고독과 정적이 가득하다.

내가 없는 동안 방과 책도 외로웠겠지?

반기는 그들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외로우면 누구를 기다리기 마련인가?

 

모자를 벗어 책상 위에 놓고,

안경과 핸폰을 그 곁에 둔다.

상하의를 벗어 의자에 걸치고,

속옷을 벗어 그 위에 얹고,

양말을 벗어 바닥에 놓는다.

몸에 걸친 게 꾀 많았구나!

이제 난 전라(全裸)가 되었다.

 

세상의 빛이 온통 나를 감싼다.

허울을 벗고 나니 몸이 가뿐하다.

가벼운 몸 상쾌한 맘이 둥둥 뜬다.

껍데기만 벗어도 이렇게 좋은데,

속까지 벗는다면 어이 될까?

보일러를 급탕으로 돌린다.

수건을 목에 걸치고 탕실로 간다.

샤워기를 틀고 온수를 기다린다.

 

따뜻한 물줄기가 몸통에 닿으니,

온 몸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비누를 전신에 문질러 거품을 낸다.

얼굴, 몸통, 팔다리를 차례로 씻는다.

겉처럼 속과 맘도 씻어지면 좋겠다.

물이 없다면 어이 살겠는가?

물은 진정한 성자로구나!

 

샤워를 마치고 몸을 닦는다.

방에 들어와 머리털을 말린다.

걸레로 방안을 두루 닦고,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흡입한다.

문명의 이기가 참 편리하다.

발전이 생명을 위협한다지만

이래서 그치지 못하는구나.

 

피부보습제를 얼굴등에 바른다.

나신(裸身) 그대로 이불 속으로.

맨 몸에 닿는 면직촉감이 좋다.

사지를 펴고 눈을 감는다.

별이 보이고 그대가 보인다.

난 이대로 구름을 타는구나!

 

참~ 좋~다! 진정 편안하구나!

이게 행복이라면 행복이 좋은 거다.

이대로 있다가 이대로 가고 싶다.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바라겠는가?

어찌 이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얼~씨구 좋~다! 절~씨구 좋~아!

맨 몸이 되고 빈 맘이 되고나니,

천지가 내 차지고 만물이 내 것일세.

 

천자(天子)를 원하는가?

맨 몸이 되어라.

천지(天地)를 갖고픈가?

빈 맘이 되어라.

행복(幸福)이 그리운가?

전라(全裸)가 되어라.

참사랑을 하고픈가?

사랑하지 마라.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주주통신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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