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씨앗과 나쁜 씨앗

▲ 사진출처: 향기로 바람으로 오는 가을(한겨레신문)

좋은 씨앗과 나쁜 씨앗이 있을까?

그렇게 나누는 것은 본질을 벗어나지 않을까?

인간의 그릇된 인식은 아닐까?

생명에 대한 무도한 차별이다.

그들은 나름의 격과 존재이유가 있다.

타고 나고 생긴 대로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이를 두고 가타부타 하는 것은

어리석은 속박에서 온 것이리라.

▲ 출처 : 꾸지뽕 열매 따는 원산마을 아낙네(한겨레신문)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가 있을까?

누구의 시각이고 판단일까?

열매는 그대로가 축복이고 살아온 귀결이다.

보이는 것으로 어떤 촉수를 둘 수 없다.

긴긴 시간과 비바람 속에서의 결실은

그 내외부의 모습으로 판단불가하다.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나온 그들의 과정을 누가 안단 말인가?

그들은 그 자체에 자신의 온전함을 담고 있다.

그것으로 대견하고 충분한 것이다.

기름진 땅에 뿌려진 씨앗이 있고

척박한 땅에 뿌려진 씨앗이 있다.

어떤 씨앗이 더욱 굳세고 강인해 지겠는가?

어느 쪽에 더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가?

결실로 그들을 재단할 수 있을까?

동질의 씨앗이라면 척박한 땅에 뿌려진 씨앗에

더욱 정성을 들여야 되지 않을까?

비록 척박한 땅에 뿌려진 씨앗이

기름진 땅의 10분의1의 결실을 맺더라도

이는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삶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문제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겉으론 착한 척, 좋은 척하면서

뒤로는 못된 짓만 골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그런 사람이 흔치는 않겠지만...

겉으론 못 되 보이고 아닌 듯 하지만

실제론 착하고 좋은 짓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우리를 웃게 만든다.

얼씨구! 조~오~타!

이 경우에도 진실의 잣대를 들이대야 할까?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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