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들이 병장을 달았다.

병장을 兵들의 꽃이라고 한다. 병장이 되면 청소를 안 해도 되는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누구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이란다. 홈스테이 눈칫밥을 3년 얻어먹으며 고교를 다닌 아들은, 눈치껏 할 줄 알면서도 눈치 보는 것을 싫어했다. 군 생활이 남들보다 훨씬 편했지만 알아서 눈치를 조금씩 봐야하는 것을 피곤해했다. 이제 병장이니 집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눈치 볼 사람이라고는 특수임무 반장님과 팀장님이 있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 반장님과 팀장님처럼 좋은 상사는 없을 거야.” 할 정도니 얼마나 좋은 분들이기에 저런 말을 할까~ 만나보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선임병장 눈치는 어떨까? 조금 깔끄러운 면이 없지는 않을까? 아들이 상병이었을 때 씩씩대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 나 병장되면 손봐줄 병장 한 명 있어.”

같이 상병으로 있다가 병장으로 막 올라간 선임이 달라졌다고 투덜거렸다. 허물없이 지내던 2-3개월 선임이, 없던 규정을 만들어 은근히 후임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특임반은 훈련이 워낙 고되다 보니 훈련 끝나면 자유롭게 해준다. 얼차려 같은 것은 당연히 없고 자유시간에는 침대에 누워 편히 쉬어도 되고, 개인 운동 때도 셔츠바람에 있어도 된다. 그런데 한 선임이 병장이 되면서 ‘병장이외는 눕지 마라.’ ‘운동할 때 셔츠바람에 있지 마라.’ 하면서 피곤한 지시를 한다는 거다.

한마디로 완장 유혹에 빠진 신참 병장이 이병, 일병, 상병 시절에도 없던 규정을 만들어 군기를 잡은 거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계급이 다르기 때문에 속으로 꿍~ 하면서 참았다. 한참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내무반에 말과 웃음이 없어지면서 냉기가 흐르고, 서로 간에 예민해져서 살벌해졌다. 이를 눈치 챈 반장님이

“니들 요새 좀 이상하다. 옛날처럼 지내~~. 눕기도 하고 여름이라 더운데 셔츠바람으로 운동도 하고...”

그 한마디에 완장병장의 위세는 다 사라지고 말았다. 다행히 아들이 손봐줄 병장도 사라지고...

병장이 된 지금 아들에게 또 고민거리 두개가 생겼다.

첫째는 전국 공군특수임무반 경연대회 걱정이다.

11월 중순에 치러지는 공군특수임무반 경연대회를 앞둔 아들은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맹훈련 중이다. 훈련에 대해선 불평이 없는 아들에게 고민은 경연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어쩌냐는 거다. 작년, 아들 부대는 12개 비행단 중 5등 안에 들었는데 윗사람에게 “그것밖에 못하냐?” 는 핀잔을 들었다. 그래서 등수 안에 들지 못할까 걱정한다. 아들 말을 듣고 아들이 악착같이 하려다 사고라도 날까 걱정이 되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아들아, 군대에서 다치면 누가 대신 아파주고 그런 것 없어. 그러니까 1등 하려고 욕심 부리지마. 무리하면 안 돼, 선임 됐다고 훈련 만만하게 봐서도 안 되고. 너에겐 교만이 최대의 적일 수 있어. 이 세상에서 네 몸이 제일 소중한 거니까 항상 네가 할 수 있는 것만큼 적당히 조심조심 해.”

누가 들으면 무슨 엄마가 ‘힘껏 열심히 해봐’라고 격려는커녕 '적당히 하라'고 하나?  흉볼 수도 있는데 나는 소심쟁이 엄마라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소심쟁이 아들도 이렇게 답했다.

“엄마, 나 엄청 조심해. 레펠 탈 때도 바닥에 매트리스 깔린 곳 아니면 안 타. 기다리느라 비 맞아도 꼭 매트 깔린 곳에서 타고.. 총 관리도 조심해서 하고.. 사실 제일 위험 한 것은 5m 높이에서 사람을 도움 삼아 내려오는 건데. 내려올 때 항상 걱정되는 것이 있어. 내가 처음 훈련소에서 왼쪽 발목을 다쳐 안 좋잖아? 내려올 때 접질리거나 삘까봐 엄청 조심해.”

둘째는 제대 후 뭘 할까 고민이 생긴 거다. 나에게 이런 말도 했다.

“엄마. 특수임무반 마치면 경찰특공대에서 특채한다는데... 공항 같은데서 일할 수도 있고. 나는 영어가 되니까 유리하지 않을까?”

멀리서 아들의 군 생활을 지켜보면서, 혹시 아들이 완전 군체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첫째로 아들은 사격에 능하다. 혹 실수를 해도 감정에 변동이 없이 침착하게 대처한다. 욕심 없이 쏘는 형이라고나 할까? 둘째로 아들은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하지 않는다. 나쁘게 말하면 게으른 형이고 좋게 말하면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 형이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가장 적은 에너지를 사용해서 문제를 해결할까~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전쟁과 같이 긴급한 상황에서는 에너지를 적절히 통제하여 분배하는 능력이 유리할 거라고 본다. 셋째로 아들은 공간파악 능력이 뛰어나다. 전체 상황에 대한 흐름을 정확하게 읽는다. 아들은 기마전에서 늘 기수를 잡는데 상황이 한눈에 확 들어와 어떻게 이동해야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고 한다. 여태껏 기마전에서 아들이 기수 잡은 팀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예전에도 아들은 어떤 장면을 기억할 때 세부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모습 통째로 기억했다.

하지만 아들의 경찰특공대 지원 이야기를 들은 나는 질색을 하며 이런 말을 해주었다.

“용산참사 진압한 것도 경찰특공대고, 쌍차파업 진압한 경찰도 특공대야. 어떻게 진압했는지 알지? 경찰은 명령에 의해 나가라면 나가고.. 들어오라면 들어오는 거야. 진짜 테러범이건 아니건 그건 상관없어. 용산참사 진압한 특공대원 한 명은 죽었잖아? 자기 목숨 내놓고 일하는 거야. 너같이 맘 약한 아이들은 절대 할 수 없어.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아들은 고등학교만 마친 상태에서 군대에 갔다. 한국이나 캐나다에서 학업은 계속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아들이라 다른 생각도 하는 것 같다. 캐나다로 가고는 싶은데 캐나다 대학은 입학생의 1/4은 졸업을 못하는, 죽기 살기로 해야 살아남는 시스템이다. 學力에서 자신감을 갖지 못한 아들에게 캐나다 대학 진학은 많은 부담이 될 거다. 그래서 지금 잘하고 있는 것으로 쉽게 선택가지를 생각했나 보다.

나는 아들이 그런 거친 인생보다는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 무엇을 하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 거기에 특별히 덧붙인다면 '정의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돈, 명예, 권력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아들이 어려서 겁도 많고 눈물도 많고 자신감도 없어서 이런 기도를 했다.

“그저 해맑고 당당하게 자라도록 도와주세요.”

아들이 군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한 선임이 '대책 없이 해맑아서 재수 없는 놈' 이라고 했다. 지금 별명은 '터미네이터' 라 하니 내 기도가 먹혔나? 가만 생각하니 기도에 하나 더 넣을 걸~~ 하는 얄팍한 마음이 생긴다. 

“해맑고 당당하고 똑바로 자기 길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들에게 거는 기대나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쓰고 보니 자식 욕심이 지나친 엄마 같기도 하다. 어려서 자폐증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이렇게 커준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야하는데... 이렇게 힘자랑 할 정도면 뭘 해도 먹고 살겠지 뭐... 하고 마음을 비워본다

▲ 지난여름 휴가 나와서 발차기 자랑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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