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4일, 5일

▲ 9월 4일

국경선에는 군인도 없고 경찰도 없고 보안요원도 없었다. 당연히 검문소도 없었다. 뭉게구름이 넘나들고 바람이 넘나들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마치 이웃동네 마실 다녀오듯 넘나들었다. 그리고 유모차를 밀며 내가 그 국경을 평화롭게 넘고 있다. 라인 강물은 소리 없이 길옆으로 흐르고 그 위로 백조가 평화롭게 노닐고 있다.

▲ 백조가 한가하게 노닐고 있다

개인의 삶은 국가의 삶과 평행을 이룬다. 국가가 단절되자 내 할머니와 아버지 5형제들의 삶도 단절되었다. 그것은 그들 자손인 내게도 내 사촌들에게도 쫓아다녔다. 우리 땅에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웃동네 마실 다녀오듯이 길을 나섰다가 70여년이나 혈육과 단절된 채로 살고 있고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 권리를 찾는 것은 인류가 더 평화롭고 더 풍요롭고 더 평등해 지는 지름길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서 미지 세계로 떠나는 것은 인류 진화과정에서 늘 있어왔던 일이다. 나는 감히 인류 진화과정까지 들먹이고 있다. 내가 가는 길은 그들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유럽으로,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이주했던 길을 따라가는 길이 될 것이다.

이제 인류는 국경 없는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고 실현해 나갈 때다. 여권과 비자 없이도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천부인권인 ‘거주이전의 자유’에 의하여 어느 곳이든 자기가 원하는 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때다. 인간을 인간답게 존중하며 타자를 환영하며 이웃으로 인정하며 사는 것은 인류역사상 오래된 능력이다. 사람들이 낯선 나를 살갑게 대해주는 것도 이런 오랜 능력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국경이 없어지면 더 이상 분쟁은 없어질 것이며 군대는 다 해산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와서 새삼 이런 삶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는 서구인의 이기심 때문이다. 오랜 삶의 원형들은 불과 수세기 만에 다 파괴되었다. 중국인이 오랜 세월에 거쳐 만리장성을 쌓고 오랑캐와 중화를 구분하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국경선이 확실하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레이넨에서 도드와드로 가는 길에는 작은 강을 건너는 나룻배가 있었다. 나룻배라고 표현했지만 카페리다. 강을 건너는 사람은 작은 스쿠터를 탄 소녀와 내가 전부다.

▲ 카페리호

 

▲ 9월 4일 본 네델란드

그곳을 지나 네이메이겐으로 가는 길은 강둑을 하염없이 달리는 길이었다. 그 강은 네덜란드에서는 ‘왈 강’이라 불리고 조금 더 올라가 독일 국경을 넘으면 ‘라인 강’이라 불리는 강이다. 그 둑방길 위에서 만난 10여 명의 자전거 여행객들이 나를 열렬히 응원해주며 지금 한반도의 상황에 관심을 갖는다. 한 아주머니는 밥이라도 한 끼 따뜻하게 사먹으라며 10유로를 건네준다. 이제 나는 국제적 후원을 받으며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 라인 강 둑방길에서 만난 10여 명의 자전거 여행객들
▲ 밥이라도 한 끼 따뜻하게 사먹으라며 10유로를 건네주는 여인

점심시간 약간 지나 네이메이겐 시내로 들어왔는데 월요일이라 식당 문은 거의 닫혀있다. 다행히 근처에 야시장이 열려서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긴 줄로 서있다. 나도 그 줄에 섰다. 무엇이라도 먹어야했다. 생선튀김 가게였는데 5유로와 7유로짜리가 있어서 7유로짜리를 주문했더니 푸짐하게 한보타리를 싸주었다. 아까 그 아주머니가 준 10유로에서 아직도 3유로가 남았다.

▲ 9월 4일 상단 왼쪽 네이메이겐에서 펼쳐진 야외장터

이름도 모르고 주문했는데 라인 강에서 잡히는 메기튀김이었다. 미시시피를 지날 때 먹어봤던 바로 그 맛이다. 한국인에게 메기는 튀김 요리로 먹기 정말 아까운 생선이다. 우리에겐 매운탕이라는 기가 막힌 요리법이 있다.

내가 국경을 넘어 독일 땅에서 처음 밟은 도시는 크라넨버그다.

▲ 9월 4일 만난 이정표들, 마지막이 크라넨버그

옥수수 밭과 옥수수를 막 수확한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클레베는 ‘백조의 기사’ 전설이 있는 도시이다.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은 엘자 공주가 곤경에 빠졌을 때 백조를 타고 나타나 멋지게 구하고 엘자 공주와 결혼을 한다. 그는 결혼하면서 엘자 공주에게 자신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꿈같이 달콤한 첫날밤 엘자 공주는 금기를 어기고 만다. 이 이야기를 바그너가 오페라로 만든다.

바그너는 북유럽 신화의 보고인 ‘에디’와 독일 영웅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 등을 바탕으로 음악극 ‘니벨룽겐의 반지’ 대본을 썼다. 바그너는 독일의 민족적 정체성을 가진 신화나 전설에 관심이 많아 그것을 바탕으로 변형과 창작을 가했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관람한 후 바그너에 매료되었고, 독일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치켜세워주는 바그너의 음악과 자신의 영웅적인 신화창조와 융합을 모색했다. 이후 히틀러는 독일인을 하나로 묶고 자신의 나치즘 확산을 위해 바그너 음악을 철저히 활용했다.

알프스 산의 눈이 녹아 흘러내려 라인 강을 따라 흐른다. 잔텐은 라인강 옆에 있는 옛 로마인들이 살던 역사적인 도시다. 라인강은 남독일에서 북독일까지 880km를 관통하며 흐르는 예로부터 독일의 가장 중요한 젖줄이다. 라인강을 뱃길로 이용하기 위하여 독일인들은 이미 19세기부터 물길을 직선화하고 강바닥을 파는 준설 공사를 했으며 그 후 몇 개의 갑문도 세웠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우리의 4대강보다 먼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독일은 중부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다. 통일을 이루어낸 나라 독일은 곳곳에 천 년 역사를 품은 건물이 석탄 연기에 시커멓게 그을린 채 그대로 서있다. 대기에는 고전음악이 숲속 새소리처럼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듯하고 고전 철학이 봄 호수 위의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나라다.

▲ 오늘쪽 상단과 하단 잔텐의 고성. 잔텐은 로마시대 때부터 발달한 도시다

역사적으로 독일이라는 국가가 존재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인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게르만족 역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스웨덴인, 덴마크인, 노르웨이인, 앵글로색슨인, 네덜란드인, 독일인 등이 게르만족에 속한다. 375년 고트족이 아시아에서 침입해 온 훈족을 피해 이동을 시작하는데 이것을 게르만족 대이동이다. 이후 게르만 왕국이 각지에 세워졌다. 여기에는 북아프리카의 반달왕국, 에스파니아의 서고트왕국, 이탈리아의 동고트왕국, 남프랑스의 부르군트왕국, 북프랑스의 프랑크왕국 등도 포함된다. 게르만인은 남방인종에 비해 키가 크고 금발에 푸른눈의 눈동자가 특징이다.

원하는 일을 이루기까지 절대로 뒤 돌아봐서는 안 된다거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화나 신화에 자주 등장한다. 유모차 기사인 나는 이 여정이 끝날 때까지 무엇을 금기로 정해야 할까 생각해보았다.

▲ 9월 5일 만난 이정표
▲ 9월 5일 만난 사람들
▲ 9월 5일 독일의 모습
▲ 9월 5일 도심에서 만난 기아와 현대
▲ 9월 4일 완주코스
▲ 9월 5일 완주코스
▲ 9월 1~5일 완주코스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페이스북 페이지(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에서 확인 가능하다. 또한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6870)과 만분의 일인 1.6km를 동참하는 런버킷챌린지 등의 이벤트를 통해 후원과 함께 행사의 의미를 알리고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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