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평화통일기원 1. 강명구 선수 유라시아 평화마라톤 16,000km] 두고 온 강, 대동강

'유라시아대륙횡단 평화마라톤'을 나서며 강명구 시민통신원l승인2017.08.30l수정2017.09.13 13:15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내 아버지는 시인이었다. 두고 온 강 대동강 변 송림(松林)을 노래하는 시인이었다. 아버지는 같이 못 온 누이와 대동강과 그곳의 명물 황주사과를 그리다가 미국에서 돌아가셨다. 잠시 피난 내려왔다가 살아서는 다시 못 밟은 땅, 육신의 무게를 벗어던지고서야 비로소 고향으로 갔을 것이다. 아버지 시 '두고 온 강, 대동강'이다.

내 고향은 송림(松林)
38선을 넘고서 반백년이 지냈어도
내 고향은 못 가는 곳

이역만리
미국에 와 있어도
미국보다 먼 곳

날개를 달까
통곡을 할.

어렸을 적 친구들 지금은 남남이 되었어도
두고 온 강 대동강은
내 핏줄에 흐르고 있다.

고향이란 나하고는
핏줄을 나눈 사이
눈물이 있어.

두고 온 강, 내 선창에서는
지금도 뱃고동 소리

목이 메인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어깨가 쳐져있었고 길을 걸을 때도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늘 지나가는 사람을 먼저 알아보지 못해 핀잔을 듣곤 하였다. 지독한 그리움은 시인에게는 훌륭한 양식이었겠지만 나와 어머니에겐 애정결핍으로 다가왔다. 분단은 아버지와 자식 사이로 흐르는, 부부지간에 흐르는 애정의 강물마저도 막아서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금까지도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

‘유라시아대륙횡단 평화마라톤’을 떠나기에 앞서 아버지와 화해를 하는 엄숙한 시간을 가지려한다. 핏줄이란 것이 무서운 것이어서 아버지의 핏줄에 흐르던 대동강의 푸른 일렁임이 내 핏줄에서 이렇게 요동을 치고 있다. 아버지 귓가에 환청으로 들리며 늘 아버지 어깨를 짓누르던 대동강 뱃고동 소리가 내게 이제는 희망의 행진곡이 되어 들려오는 것 같다.

나의 달리기 시원이, 내가 평범한 체력을 가지고 이리도 미친 듯이 달리는 이유가 아버지와 화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의 그 퀭한 눈동자가 미치도록 싫었다. 어릴 때는 태산 같은 존재였지만 고집이 세고 정이 없고 병약한 사람이었다.

많은 시간 아버지는 어색한 존재였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허공에 띄우지 못하고, 또 그를 쏙 빼 닮은 나도 "사랑합니다"란 말 한마디 입 안에 우물거리질 못했다. 이제 내 머리에 흰 머리가 생기면서 아버지는 가슴 먹먹하게 그리워지는 존재로 환생했다.

"하필이면 우리 시대냐./ 왜 우리들이냐./ 바람결에 빨래는 말라도/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또 다른 시에서 아버지는 한탄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나는 아버지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버지 절규 속에는 대동강 변 송림, 어느 골목집에 살았을 어느 소녀와 이루지 못한 사랑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평생 가슴앓이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나의 오이디푸스적 콤플렉스는 어머니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첫사랑 소녀에게 향해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 무의식 속에서 치명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내가 늦게까지 결혼을 못한 원인이 됐을 수도 있겠다 싶다.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흐느껴 살다간 할머니와 아버지. 할머니는 시집간 딸을 두고 왔다. 아쉬움 속에 잠시 이별이라고 여겼다. 올망졸망한 다섯 아들 고사리 손을 번갈아 잡고 야음을 틈타 3.8선을 내려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북한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할머니가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한반도에 있는 모든 용하다는 종교의 신령님들께 기도를 드렸을까. 어린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교회도 가봤고 천주교, 그리고 절에도 따라다녔다. 어린 나는 할머니가 아침이면 정화수 떠놓고 북녘 하늘을 향해서 기도하는 모습도 보았고, 신주단지 모셔놓은 것도 보았고, 심지어 일본식 종교인 남묘호렌게쿄까지 섭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랐다.

나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서는 도저히 가지 못한 머나먼 길을 가기 위하여 세상사람 아무도 달려보지 않은 16,000km를 달려서 간다. 그곳은 아버지의 영혼이 늘 머무르던 곳이고 내 오이디푸스적 콤플렉스의 원향이다.

아버지 핏줄에 흐르다가 내 핏줄 속에서 거칠게 일렁이는 대동강에 발을 담그고 아버지 살아서는 이루지 못한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내려올 것이다. 그곳에서 영혼으로 머무를 아버지를 만나 "사랑합니다. 아버지!" 소리 높여 외치고 눈물 한 무더기 대동 강물에 섞고 오겠다.

아버지와 화해의 손길이 내 발걸음을 거칠고 험한 평화의 발걸음, 소통의 발걸음으로 나를 이끈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나선 동화 속 아이들처럼 나는 아버지가 늘 환청으로 듣던 대동강의 뱃고동 소리를 따라 먼 유혹의 길을 떠나려한다.

▲ 공식적인 출발은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 이준열사 기념관 앞이지만 실질적인 출발은 8월 28일 아침 유라시아의 땅끝마을 등대 앞에서 했다. 한반도 모습과 닮았다.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페이스북 페이지(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에서 확인 가능하다. 또한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6870)과 만분의 일인 1.6km를 동참하는 런버킷챌린지 등의 이벤트를 통해 후원과 함께 행사의 의미를 알리고 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명구 시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bgil21 2017-09-01 03:09:40

    이 땅에는 아직도 일제와 분단의 멍울을 숙명적으로 지고 가야하는 이들과 일들이 많습니다.
    신이시여...신고 | 삭제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주주커뮤니케이션팀  |  전화 : 02)710-0124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이상준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준
    편집위원 : 김경애, 김국화, 김동호, 김미경,김태평, 서기철, 심창식, 정혁준, 허익배   |  객원편집위원 : 김혜성, 박효삼, 안지애, 양성숙, 유원진, 최성주, 하성환
    Copyright © 2020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