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46]: 동북공정과 서북, 서남공정

역사도 질 수 없는 전쟁 김동호 주주통신원l승인2017.09.25l수정2017.09.2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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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동북공정은 중국 동북지역 3성, 즉 헤이룽장(黑龍江, 흑룡강), 지린(吉林, 길림), 랴오닝(遼寧, 요녕)성 역사에 관한 연구공정입니다. 자기들 땅에서 자기 역사를 어떻게 하던 우리가 감놔라 배놔라 할 이유도 없고, 하고 싶은 맘도 없지요. 하지만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이유는 고구려와 그 유민이 세운 발해 그리고 백제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왜? 무슨 이유로 남의 역사까지 가져다 주장을 해야 하는지 조금 언급을 하려고 합니다.

동북공정은 과거 역사의 문제임에 비해 현실에선 훨씬 심각한 문제가 서북공정과 서남공정입니다. 지금도 독립을 주장하며 끊임없이 테러와 분신이 일어나고 있는 신장(新疆, 신강), 위구르와 시장(西藏, 서장), 티베트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입니다.

▲ 서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신장, 위구르지역을 중국역사에 편입시키고 있습니다. 고속도로 나들목에 세워진 광고판에는 ‘각기 다른 민족들도 석류알갱이처럼 꼭꼭 끌어안고 함께 살자’며 어르고 있습니다.

이 두 지역은 역사나 민족이나 종교를 보면 완전히 다른 나라로 중국이 강제로 점령한 지역입니다. 예전에도 언급을 한 적이 있지만 중국은 국가 혹은 국경에 대한 개념이 없는 국가였습니다. 그냥 천자의 나라, 천하를 통치하는 국가였고, 나머지는 모두 천자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미개인들 즉 오랑캐들이라고 봤습니다.

동이(東夷, 동쪽 오랑캐), 서융(西戎, 서쪽 오랑캐), 남만(南蠻, 남쪽 오랑캐), 북적(北狄, 북쪽 오랑캐)이라고 했지요. 우리가 흔히 동이는 조선족을 지칭한다고 여기는데, 동이에는 조선족뿐만 아니라 거란족, 여진 만주족들도 다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혹자는 오랑캐 이(夷)자를 풀어서 대궁(大弓), 즉 큰 활을 잘 다루던 우리 조상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꼭 따라오는 고사가 양만춘 안시성 성주가 당태종 이세민 눈을 맞춰서 여당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이세민 자료를 찾아봐도 어디에도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이야기는 안 나옵니다. 어렸을 때 실감나게 안시성 전투 이야기를 글로 보면서 들었던 의혹은, 수만 명의 군사들이 서로 활을 당기고 있는데 양만춘 장군이 쏜 화살이라고 하는 것은 좀 억지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나중에 안 사실은 고려시대에 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어디에도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없고, 그저 안시성 성주로만 나오는 실존인물인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불린 이름이라고 합니다.

위구르지역이나 티베트지역은 중국이 통일이 되고 강력했을 때 점령을 했던 역사가 있지만 중국의 통치하에 있던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 한 무제, 당 태종, 청 강희제가 점령을 하였다가 중국 마오쩌둥이 정권을 잡은 후 또다시 침공을 해서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랑캐라고 부르던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도 자기들 역사라고 하면서 왜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가 차지한 땅은 중국 땅이라고 주장을 안 할까? 아마 몽골리아라고 하는 나라가 아직도 있어서 뻘쭘한가?

지금 중국에서는 한 뼘의 땅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의식이 팽배합니다. 특히 위구르, 티베트 지역의 독립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있을 수 없다고 못 박고 있지요. 한 친구는 티베트가 독립을 하면 약 4억 5천만 명이 유역에 살고 있는 장강(양자강)의 발원지가 히말라야, 즉 티베트 지역이라서 중국의 젖줄이 끊긴다. 따라서 중국이 망하기 전에는 포기를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중국이 실질적인 동화정책으로 장기간에 걸쳐서 한족을 계속 이주시키는 방법과 서북공정 서남공정을 통해서, 중국은 단일민족국가가 아니고 예전부터 한족과 여러 소수민족이 어우러져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 왔다는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공정입니다.

역사적으로 자기들이 점령했던 지역을 중국역사에 포함을 시키는데 주저함이 없는데 문제는 동북지역이 상당히 껄끄럽습니다. 역사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자기들 입맛에 맞게 해석을 하면 되지만 유물 유적은 어떻게 할 수가 없지요.

바로 고구려가 점령한 지역을 세세히 상술하고 기록한 광개토대왕비가 중국 지린(吉林, 길림)성 지안(集安)시에 떡 버티고 있습니다. 또한 선대 광개토대왕비를 세운 아들 장수왕의 능도 이곳에 있습니다. 장군총이지요. 고구려가 반대로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광개토대왕비.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주로 '호태왕(好太王)비'라고 부릅니다.

이 역사를 뒤집을 수 없을 바에는 고구려를 아예 중국역사라고 주장을 하자는 것입니다.

만리장성의 아래쪽을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하는 건 누구도 이의를 제기 하지 않습니다. 동쪽 끝, 만리장성의 시작점이 하북성에 있는 산해관(山海關)입니다. 그 북쪽은 북적(北狄)의 땅이고, 오른쪽은 동이(東夷)의 땅입니다. 이 동이 땅에서는 조선과 고구려 이외에도 거란족이 흥해서 요란 나라를 세워 중국을 압박하였고, 말갈족(여진, 만주족)은 금나라를 세워 중원으로 들어가 송나라 수도 개봉을 함락시키자 송나라는 도읍지를 항주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후에 여진족, 즉 만주족이 중국 전역을 정벌하여 청나라를 세워 삼백년간(1616년~1912년)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고구려라는 이름은 중국역사에서 가장 큰 아픔이고 공포였습니다. 중국이 힘이 없었거나, 강력한 무력을 갖춘 몽고의 원나라나 청나라에 나라를 통째로 뺏긴 사실은 나름 할 이야기가 많지만, 자기들이 가장 강력한 힘으로 수차례 전쟁을 일으킨 고구려에게는 치욕적인 참패를 번번이 당하고 말지요.

유비와 제갈공명도 통일을 하지 못한 위촉오 삼국시대, 그리고 위진 남북조, 오호십육국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수나라 문제도 고구려는 어쩌지 못했고, 야망이 컸던 아들 수양제는 백만이 훨씬 넘는 군을 동원하여서 쳐들어갔다가 요동성을 넘지 못하고, 우중문, 우문술 형제의 30만 별동부대는 을지문덕 장군에게 몰살을 당하면서 국운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수나라가 역사에서 지워집니다.

무엇보다 중국인의 자존심을 가장 크게 구긴 일은 바로 정관의 치라고 전 인류 역사에서 손꼽는 치적을 자랑하는 당 태종 이세민도 몸소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처음으로 패배를 맛보았다는 사실입니다.

당태종 이세민은 당 고조 이연의 둘째 아들로 수나라가 망하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함께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당을 건국한 인물입니다. 후계자인 형과 동생을 죽이고, 아버지를 핍박해 황제에 올랐지요.

나가서 싸우면 한 번도 진적이 없는 뛰어난 책략가이며, 불세출의 장군 그리고 행정가인 이세민은 하늘이 내린 장수라는 의미로 천책상장(天策上將)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런 이세민이 참패를 하고 돌아와서 죽기 전에 아들에게 남긴 유언이 고구려를 치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당나라는 중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왕조입니다. 당시의 문화를 논해도 세계사에서 가장 선진국이었습니다. 그런 당나라 사람들에게 이세민을 격퇴시킨 고구려의 실세 연개소문은 죽음을 부르는 사신과 다름없고, 후에 중국인들이 즐겨보는 경극에서 가장 무서운 살인귀가 이 연개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런 고구려가 신라의 요청으로 들어온 당나라 소정방 군대와 신라 연합군에게 무너졌습니다.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의 분란으로 망했다고 봐야겠지요. 당나라 입장에서는 국가적인 숙원이자 조상대대로 공포의 적수였던 고구려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고구려 유민들을 산개시킵니다. 일부는 중국에 남아 ‘고구려 놈’이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출세를 하기도 하고, 일부 유민은 멀리 현재의 태국까지 유랑가서 살고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당나라 군대가 이득 없이 왔을 리는 천부당만부당. 바로 이 역사적인 사실로 오늘날 동북공정에서 한국은 오로지 신라의 후예고, 고구려와 백제까지도 중국이 정복한 나라, 그래서 중국역사에 편입을 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조상들이 동북공정의 빌미를 제공한 셈입니다.

두번째 빌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장 빨리, 가장 멀리 도망친 선조 때문입니다. 의주까지 도망가서도 빨리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가자고 재촉했던 선조가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냥 도와달라고 하지는 않았겠지요. 듣기에 조선 이북의 땅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서약과 일부 국토 할양이란 밀약도 있었다고 하는데 자신의 안위가 급하면 백성이고, 역사고, 미래 후손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했던 행실을 보아하니!

제가 생각하는 동북공정은 단순한 역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남북한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중국은 자동 개입을 할 거고, 북의 지도층은 세가 불리하면 중국에 나라를 넘기겠지요. 중국은 역사적으로 자기들 땅이었다고 하면서 흡수를 할 거라는 가설입니다.

따라서 동북공정을 무력화시킬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우선 남북통일을 전제로 국호를 정했으면 합니다. 사실 고조선이 망하고 그 유민들이 그 땅에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만든 나라가 고구려이지요. 조선이 그 고조선, 단군조선의 국호를 이어받았듯이 새로운 남북 통일국가의 이름도 다음 왕조인 고구려를 이어받아 대한민국이나 북조선인민공화국 대신 국호를 ‘대고구려(大高句麗)’, 약자는 ‘고려’, 영문은 'GREAT KOREA' 약자는 'G K'를 사용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우리 국호를 정하는데 어느 누가 시비를 걸까요? 우리 영문 이름이 고려에서 나온 KOREA 인데!

그러고 나서 통일이 되면 해마다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에 가서 국경일 행사도 하고요!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와 혼을 담은 통일국가를 우리 자손만대에 물려주기를 소망합니다.

편집 : 안지애 부에디터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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