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사랑

천산에는 신장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 나라티(那拉提,나랍제)대초원이 있습니다. 오늘은 약 250여 년 전, 1771년 1월 5일 한겨울에 강물이 어는 러시아를 탈출한 몽고인들의 인솔자 워바시(渥巴錫,악파석)의 발자취를 따라 이동을 합니다. 그들이 이리분지에 도착한 것은 그해 7월이었습니다. 우리 버스는 이리 분지에 있는 이닝(伊寧,이령)시를 떠나 250Km를 이동하여 나라티(那拉提,나랍제)대초원에 도착하였습니다.

▲ 나라티대초원. 일 년 강수량은 800ml정도로 목초가 생장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초원에서의 모든 일정은 취소하고 건륭황제가 워바시(渥巴錫,악파석) 일행에게 약속한 ‘약속의 땅, 바인뿌루커(巴音布魯克,파음포로극)대초원’을 향해 출발을 합니다.

산악지형을 한참 오르다보니 빗방울이 어느 순간 진눈개비로 바뀌더니 더 오르자 함박눈이 되어 내립니다.

산등성이를 넘어서자 초원이 함박눈으로 설원이 되고 목동도 양떼도 하늘도 땅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곳이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바인뿌루커(巴音布魯克,파음포로극)대초원인가요? 얼마를 달려가니 드디어 몽고인 마을이 나타납니다.

▲ 몽고인 마을. 몽고인의 이동가옥 게르는 카자흐족 이동가옥과는 다르게 창문이 있음.
▲ 초원이 워낙 넓은지라 같은 시간에 방향만 바꾸어도 눈이 있는 잔디, 없는 잔디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바인뿌루커(巴音布魯克,파음포로극)대초원은 천산산맥의 중부에 있는 산간 분지로 사방이 설산으로 둘러싸여있습니다. 해발 평균 약 2,500m의 고원에 있는 분지입니다. 지세가 평탄하고 물과 풀이 풍성한 초원으로 주변 설산에서 녹아내리는 물과 강우량으로 많은 연못과 호수도 있어 천혜의 목축업기지입니다. 참고로 동귀영웅(東歸英雄) 워바시(渥巴錫,악파석)가 러시아를 떠날 때가 29살이었고, 신장에 돌아와 몇 년 안 된 33살에 병사를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천하를 호령하고,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영웅호걸이나, 이름 없이 살다간 양치기나 이 초원에서는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었고, 흘러가는 구름이었을 뿐입니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이 초원의 주인이 될 수 없는데 어이하여 인간들은 그토록 어리석을까요? 인간들이여! 풀 한포기 뽑지 말고, 돌 하나 옮기지 마시라. 천 년 전에도 또다시 천 년 후에도 이 초원의 주인은 그저 초원일 뿐!

일반적으로 양들은 영하 45도가 생존할 수 있는 한계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의 겨울은 영하 50도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일반 양들은 겨울에 동사를 하고 만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사진 위쪽의 흑두양(黑頭羊)들은 얼어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곳의 양들은 모두 검은머리 양들입니다.

사진과는 다르지만 이곳에서 털소(毛牛)도 처음 봤습니다. 육안으로 보기엔 털이 10센티 이상 길어보였습니다.

분지 안에도 위압적이지 않은 산봉우리가 있고, 때마침 내린 눈으로 설경을 만끽하게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여러 번 가이드가 두꺼운 옷 준비하라는 말에 골탕을 너무 먹어서 신발은 한여름 망사신발에 얇은 옷 입고 방수자켓만 걸치고 있어서 눈이고 뭐고 추위에 얼마나 떨었는지 호텔생각만 간절했습니다. 속도 모르고 대만사람들은 이정도 날씨는 한국 사람들에겐 봄날 아니냐고 묻는데 안 추운 척 하는 게 더 힘들었지요.

사진 하단은 바인뿌루커초원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경치인 9곡18만(九曲十八灣)입니다. 끝없이 광활한 초원에 굽이굽이 설산에서 내려온 물이 흐르면서 햇빛의 방향에 따라 천변만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는데, 내리는 눈으로 희미한 물굽이만 간신히 눈에 보입니다.

▲ 天鵝湖(천아호, 백조의 호수)

서로 연결이 되는 여러 개의 작은 호수들이 모여 이루어진 호수로, 매년 4월 전후에 크고 작은 백조들과 기러기등 진귀한 조류들이 남쪽으로부터 날아와 번식을 한다고 합니다. 이곳백조의 호수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백조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광활한 대초원 안에 해발 3,000m의 고산 습지호수로 주변은 눈과 얼음으로 덮인 설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천혜의 경관이라고 하나 역시 흐릿한 날씨로 그저 상상만 합니다. 오락가락하는 눈비에 젖은 발, 미끄러운 길! 저 사진을 찍기 위한 저의 노력이 가상합니다. 우리 일행들 일찌감치 자동차 속으로 모두 들어갔고요.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이곳에서 서식하는 야생의 백조는 15,000여 마리입니다. 철새 중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새로 큰 백조는 19Kg에 이릅니다. 물고기는 먹지 않고 수초나 뿌리를 먹고 사는 채식조류입니다. 겨울이 되는 10월이 되면 월동을 위해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천산을 넘고, 곤륜산을 지나 히말라야의 고산을 넘어 인도로 가서 월동을 하고 다음 해 4월에는 또다시 히말라야를 넘어 이곳 백조의 호수로 돌아오는 고난의 여정을 반복합니다.

백조는 평생 일부일처라고 합니다. 태어난 날은 서로 달라도 한 번 짝이 되면 함께 죽기를 원한다고. 한 쌍의 백조는 짝이 먼저 죽으면 남은 백조는 그 위에서 슬픈 울음을 울면서 빙빙 원을 그리며 난다고 합니다. 만약 다른 짐승이 다가오면 생사를 도외시하고 공격을 해서 죽은 짝을 지킨답니다. 그렇게 식음을 전폐하고 슬피 울며 날다가 약 6-7일 후 기력이 다하면 짝 옆에서 숨을 거둔다고 하네요. 자료를 찾아보니 백조의 평균 수명이 10년이군요.

▲ 백조 우리말로 고니라고 부릅니다.

영원을 기약하며 다이아몬드를 주고받지 않습니다. 천번 만번 다짐을 하지도 않습니다. 잘나고 못남, 많고 적음을 구분하는 마음도 부질없고 헛되기만 합니다.

너나없이 비교하는 마음은 번뇌의 시작입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이나 서로에 대한 믿음, 배신도 애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망상이었기에 백조는 그저 그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볼 뿐입니다. 서로에게 무엇이 되고자 애쓰지 않아도 불행할 이유가 없습니다.

수천의 고봉을 넘어, 수만리 길을 같이 날았던 그 순간도 오롯이 희열만이 기억 속에 남아 이승에서의 마지막 삶도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혹시나 먼저 가는 어두운 길이 두렵고 무서울까봐 애절한 울음으로 길이 되어주고 눈이 되어주며 함께 미지의 길을 동행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윤회의 끝에서 순백의 넋이 되어 영원토록 함께할 것입니다.

편집 : 안지애 부에디터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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