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 누워 창밖을 보니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 소나기가 내린 후의 상쾌한 공기를 맛보고 싶다. 그러나 소나기가 내리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시원해진다. 소나기를 대하는 사람의 마음은 다분히 이중적인 데가 있다. 길을 걷거나 차를 운전할 때 만나는 소나기는 반갑지 않다. 운전자들은 마음이 조급해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서두르기도 하고 여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일정 공간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여행중에 열차 안에서 대하는 소나기는 여행자를 감상에 젖게 하기에 충분하다. 맑고 푸른 하늘을 계속 보다보면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소나기는 그런 따분함을 일거에 해소시켜 준다. 병상에 누워서 소나기를 보는 나도 그러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타고 과거의 기억들과 상념들이 내 마음에 밀려든다. 좋았던 일, 잘 했다고 칭송받던 일, 나의 공적들과 나의 영광들이 장엄한 빗줄기가 되어 내 마음을 흠씬 적시기도 하고, 나의 잘못과 한때의 실수들, 어리석었던 행동들이 차디찬 빗소리를 내며 마음을 후려치기도 한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아련한 기억이 불쑥 되살아났다가 다시 무의식 속으로 잊혀져 간다. 소나기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말끔히 정화되는 느낌이 들고,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진다.

그러면 미래는 어디 있는가? 미래의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백세시대를 맞아 나이 팔십이 되어도 미래는 늘 궁금하다. 소나기가 그친 후의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며 나의 미래와 세상의 미래를 가늠해본다. 내가 살아온 팔십평생동안 한국 사회는 늘 역동적이었다. 과거는 실패였고, 현재는 답답했지만 언제나 무지개 빛 미래를 꿈꾸었다. 그 꿈은 한꺼번에는 아니라해도 기어이 이루어지고야 말았다. 못 이룬 꿈은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 틀림없다. 인간의 시간표는 신의 시간표와 다르니 말이다.

과거를 존중하듯이 다가올 미래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나의 과거는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듯이 나의 미래 또한 내가 알게 될 모든 사람들과 함께 존재할 것이다. 또한 과거의 동거녀들 하나하나가 소중하듯이 앞으로 다가올 동거녀도 소중한 존재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같은 동거녀라도 다른 마음, 다른 태도를 보이면 전혀 다른 인격체로 느껴지기도 한다. 여자들 눈에는 남자가 이중인격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은 반면, 남자들 눈에는 여자가 다중인격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보일 만큼 여자는 자유자재로 변신과 변심을 거듭한다.

패기 왕성하던 젊은 시절, 이런 논문을 쓴 적이 있다. 논문 제목은 <삼한사온의 기후가 한국민들의 성격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 들어 이런 논문을 쓰고 싶다. <사회적 갈등 심화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 - 부제 : 인간성 상실과 자연 재해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것이다.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동거녀와 동거남의 관계가 한국 정치 사회에 미치는 사회심리적 영향>에 대해서다. 나이 팔십에 논문이 웬말이겠냐 마는 그렇다고해서 상상력과 호기심마저 늙어버린 건 아니지 않는가.

이제 나이 80을 먹고 나니 동거녀도 지친 걸까? 십여 년 전부터는 중간 그룹의 동거녀가 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H그룹부터 N그룹에 이르기까지가 이에 해당된다. 그 정도만 해도 지낼만하다. 더 이상 하위그룹의 동거녀가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가급적 A부터 G까지의 그룹이 나타나기를 바라지만 그건 언감생심, 물 건너간 일이다. 갈수록 수중에 돈도 떨어지고 힘도 딸리니 말이다.

6. 세상에 비밀은 없다

이제 동거녀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 병실 문이 열리고 그 모습을 드러낸다. 70대 중반의 여인이다. 조금은 가련한 모습으로 손에는 과일 봉지를 들었다. 참외라도 깎아 주려나보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가슴에 꼭 끼는 분홍색 블라우스를 입었고, 화장은 거의 안 한 채로 립스틱만 연하게 발랐다. 왼쪽 관자놀이 근처에 가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정겹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든다. 내가 내 신체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분양해 준 적이 있던가? 왠지 그녀 신체가 내 신체의 일부인 냥 느껴진다. 몸에서 느껴지는 지각이 남다르다. '내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 그녀 것'이 된 건지, 아니면 '그녀 신체가 내 안에 들어와 내 신체 일부'가 되어 동질감을 느끼게 된 건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그녀가 나를 가련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도 그녀를 가녀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녀 얼굴에 과거 동거녀들의 얼굴이 오버랩 되고, 그녀 얼굴에서 지난 오십여 년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병실이 갑자기 추억으로 가득해진다.

그녀가 침상에 다가오자 그녀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오만 가지 모습으로 조변석개하며, 일정한 기준도 없이 아침저녁으로 갰다 흐렸다를 반복하면서 변신과 변심을 밥 먹듯이 하고, 변덕이 죽 끓듯 했던, 천(千)의 얼굴을 가진 동거녀. 그녀는 바로 반백년을 같이 살아온 나의 아내였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얼굴 표정이 사납다. 대뜸 나에게 큰소리친다.

"당신, 늙어서도 그렇게 주책을 부리고 싶어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멍하니 쳐다본다.

"당신 이멜 다 봤어요. 젊을 때 나이지리아인에게 사기당하더니 이제와서는 젊은 미국 여자에게 사기당해요? 꼴 좋~다~!"

아니, 이걸 어쩌나? 모든 게 들통났나보다. 염렵한 아내가 모든 걸 알고 말았다.

사기의 전말은 이렇다. 어느 날 이멜이 날아왔다. 잘 모르는 영문 이멜은 아예 보지 않고 삭제하는데 이상하게 그 이멜을 열게 되었다. 예쁘장한 여군 사진이 있었다. 자신은 미군부대 여군인데 시리아 전투에 투입되었단다. 그러면서 이멜을 주고받게 되었는데 한 달이 지나자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물론 믿지 않았지만 예쁜 여군이 그런 말하는데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처음부터 돈 얘기를 꺼냈으면 사기당하지 않았을 텐데 돈 얘기는 일절 없었다. 얼마 있더니 내가 보고 싶다며 나를 만나러 한국으로 오겠다고 한다. 솔깃했다. 그런데 한국에 오는 경비가 부족하니 비행기 표 끊을 경비 좀 보태달라고 한다. 그래서 보내주었다. 그 이후 연락이 끊겼다. 이멜을 보내도 일체 답변이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나이 팔십에 장난삼아 이멜을 주고받은 거지만 결과적으로 사이버 사기꾼에게 당한 것이다. 그걸 아내가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입원한 틈을 타서 내 이멜을 몰래 검색이라도 했나보다.

"아무리 아내라해도 남편 이멜을 몰래 보면, 정보통신보호법에 걸리는 거 몰라?"

일단 큰소리를 쳤다.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이만한 게 없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내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래 고발해요. 바로 그 순간, 이혼서류에 도장찍을 테니."

남자가 늙어 이혼당하는 건 비참한 일이다. 내가 큰소리 친 건 잠시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을 뿐 이혼은 어림없다. 당분간 아내에게서 H그룹부터 N그룹까지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아무려면 어떤가. 나이 팔십에 느는 건 뻔뻔함뿐인 것을. <끝>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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