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고향이 어디세요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17.10.27l수정2017.11.0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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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차 문을 놓지 못했다. 마치 멀리 떠나는 엄마를 잡는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울며 차 문을 움켜잡았다. 그의 아내가 간신히 떼어 놓아 문을 닫았으나 다시 또 차의 열린 창문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간 얼마나 외롭고 서러웠을까? 지나간 감정이 다 북받쳐 쏟아지는 것 같았다. ‘이제 가면 언제 보나’ 하는 심정으로 떠나는 동포의 그림자라도 잡고 싶었을 거다.

▲ 떠나는 취재진의 차를 붙잡고 울부짖는 김재권 할아버지

정수웅 감독은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2016년 15년 만에 "다시 올게요"라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를 찾았다. 2016년 92세가 된 김재권 할아버지는 15년 전의 정감독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졌다.

▲ 2016년 김재권 할아버지

지난 26일, 11월 9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고향이 어디세요> 시사회에 다녀왔다. 이 다큐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영상총감독을 맡았던 정수웅 감독이 제작했다. 그는 1981년 제8회 대한민국 방송대상 대통령상을 시작으로 1994년 NHK아시아다큐멘터리 대표작가상, 1998년 제10회 PD상 작품상, 2005년 독립제작사협회대상 연출상을 수상한 다큐의 전설적 존재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감독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다. 그는 러시아 캄차카 교민 홍춘옥씨와 함께 관람객을 맞았다. 

정수웅 감독은 1995년 캄차카 반도를 처음 방문했다. 이후 2001년, 2016년 두 차례 더 방문하면서 캄차카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의 모습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캄차카 반도는 서울에서 3,500km 북동쪽에 위치한 동토의 땅이다. 그는 이 멀고 먼 언 땅에서 살고 있는, 언 땅에 묻힌 동포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다 보니 20년이 걸렸다고 했다. 캄차카 반도 동포 이야기는 일종의 ‘민족 수난사’로 이 수난사가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고 했다.

정수웅 감독은 캄차카 반도에 갈 때마다 자신을 도와준 현지 코디네이터 홍춘옥씨를 소개했다. 그녀는 캄차카 한국인 1세대는 거의 다 사망했다고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냥 영화를 많이 봐달라고 했다.

2차 대전을 치른 소련은 젊은이들이 많이 죽어 노동인력이 부족했다. 이를 메우기 위해 1946년~1949년 북한에 와서 노동자를 모집해 갔다. 이들은 벌목공 등 막노동자로 일하면서 혹독한 추위와 싸우다 병들어 죽어갔고 부족한 식량으로 굶어 죽어갔다. 하루에 3-4명이 죽어나갔으며 한 가족이 몰살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소련정부 공식기록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는다. 얼마나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캄차카 교민은 주로 캄차카 주의 수도 빼뜨로빠브로프스크와 옐리조바에 모여 산다. 1995년 당시 2000명 정도 살았지만 1세대가 거의 다 사망하면서 그 수도 점차 줄고 있다. 감독은 1995년에서 2016년까지 세 번 방문하면서 국가가 버린 캄차카 반도 동포 모습을 촬영했다.

▲ 임양한 할아버지와 발렌찌나 즈제파노브바 할머니.

결혼식 들러리로 만주에 갔다가 삼팔선에 가로막혀 고향 포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원한 손진택 할아버지, 고향에 묻히고 싶다고 우는 함경도가 고향인 송유득 할머니와 속초가 고향인 송 할머니의 남편 전상수 할아버지, 꿈에서도 고향이 보인다는 경기도 연천이 고향인 임양한 할아버지와 한국인을 어떻게 학대하고 죽였는지 밝혀야 한다고 하는 임 할아버지의 아내 발렌찌나 즈제파노브바 할머니. 감독이 만났던 이들 중 2016년 15년 만에 다시 찾아간 캄차카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김재권 할아버지와 발렌찌나 즈제파노브바 할머니뿐이었다.

▲ 전상수 할아버지와 송유득 할머니의 묘비 고향에 가서 묻히고 싶다고 그리 울던 송할머니는 고향에 묻히질 못했다.

국가란 무엇인가? 고향을 못 잊겠다는 사람들, 고향땅에 묻히고 싶다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언 땅에 묻혀버린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에 앞장 서 주는 것이 국가다. 여자건 남자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하고 하루에도 몇 구씩 마구 매장되었다는 저 새하얀 자작나무 숲 무덤, 이름 없는 300~400명 영혼들의 원통함을 풀어주는 것도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 새하얀 자작나무 숲 사이에 있는 조선노동자사망묘

 

저들에게 그토록 돌아오고 싶어하는 고향은 남한도 북한도 아니다. 그저 같은 말이 통하는 우리 민족이 모여 사는 곳, 서로 얼싸안고 눈물 흘리며 위로받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고향이고 국가다. 북한과 맺은 계약에 의한 모집이라 해도... 소련과 국교를 맺은 지 벌써 27년째인데... 우리가 한 일 아니라고 나 몰라라 하지 말고... 자칭 형님나라 대한민국에서 먼저 따뜻한 손을 내밀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사진출처 : 다음 영화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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