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온 창간축하 기고] 정연주 언론인

 

정연주 / <한겨레〉 워싱턴특파원, 논설주간을 지냈습니다. 2003년부터 KBS 사장을 지냈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뒤 강제로 해임되었습니다. 2012년 대법원에서 해임처분 무효 판결을 받아 명예를 되찾았습니다. 1997년 통일언론상과 1999년 신문칼럼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기자인 것이 부끄럽다>, <서울-워싱턴-평양>, 함께 쓴 책으로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와 옮긴 책으로 <말콤 엑스>(공역), <자본주의의 전개와 이데올로기>, <경제학사 입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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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했던 시절

1970년 12월 <동아일보사>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으니, ‘언론’을 가슴 한 가운데 품고 살아 온 세월이 어느덧 만 44년이 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거의 평생을 그렇게 ‘언론’ 속에 살아 온 셈이지요. 그 세월 속에는 현장 언론인 생활도 있고, 해직 언론인으로 들판에서 살아온 세월도 있었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는 내가 다시 기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차마 꿈에도 꿀 수 없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 6월 민중 항쟁의 축복으로 <한겨레신문>이 탄생하게 되었고, 나는 다시 기자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한 11년. 그 시절은 <동아일보> 해직 이후 13년 동안 기사를 쓰지 못한 공백을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오로지 일만 했습니다. 휴일을 제외하고 내 머리와 시간을 채운 건 오로지 기사와 관련된 것뿐이었지요.

2000년 여름 귀국하여 2003년 3월까지 <한겨레> 논설위원과 논설주간을 하는 동안은 참 행복했습니다. 비록 논설위원 숫자가 나를 포함하여 6명밖에 되지 않아 시간에 늘 쫓겼으나, 사설을 쓰고, 칼럼을 쓰는 그 기간 동안 한겨레의 영향력을 확인하면서 참 행복했던 나날을 보냈습니다.

‘조폭 언론’ ‘조중동’이라는 말도 그 시절에 썼던 ‘정연주 칼럼’에서 처음 선보인 표현이었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1면에 실렸던 통단 사설 ‘야만의 시대’는 내가 <한겨레> 논설주간으로 쓴 마지막 사설이었습니다. 올해 우리나이로 70살, 살아 온 날을 돌이켜 보면서 가장 따뜻한 마음이 되는 행복한 시절은 바로 바로 논설주간 시절이었지요.

2003년 3월 주주총회 뒤 <한겨레>를 떠났습니다. 동아투위 해직기자들 시대를 접고 후배들에게 한겨레 운영과 편집을 넘기는 시대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그해 4월 말, 한국방송공사(KBS) 사장이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관료조직 문화에 쩔어 있는 KBS를 개혁하고, 시대정신인 자율과 민주의 정신을 심어보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수구언론이 여론 형성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언론 환경에서 저널리즘에 충실한 공영방송이 언론지형의 균형을 잡아줄 것을 소망하면서 KBS의 저널리즘 확대를 위해서도 노력했습니다. KBS 보도본부의 탐사보도팀 창설, 미디어 비평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미디어 포커스’, PD 저널리즘의 꽃이 되었던 ‘한국 사회를 말한다’ ‘인물 현대사’, 그리고 여러 특종이 나온 ‘KBS 스페셜’...

KBS 5년 4개월은 자율과 민주적 의사 결정이 확대되는 조직문화 변화와, KBS 저널리즘 확대의 결과물이었던 언론의 영향력,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을 직접 목격한 참 보람된 시절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변화와 개혁에 저항하는 회사 안팎의 세력, 그리고 2008년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모든 권력기관이 총동원된 나의 해임과정은 참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 기자, 해직 언론인, 한겨레, KBS 등 나의 언론인 생활에서 큰 덩어리들입니다. 거듭된 얘기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한겨레> 논설주간 때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자가 되게 해준 기적은 <한겨레> 창간이었구요. 개인적으로 평생의 꿈을 이루게 해주었고,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게 해준 <한겨레>에 대한 고마움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우리 사회 전체와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 <한겨레>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기적, 이런 보물을 가능하게 해주신 <한겨레> 주주 여러분들이 그저 고맙고, 또 고마울 뿐입니다.

<한겨레> 주주님들. 미쳐버린 세상이지만 씩씩하게 살아갑시다. 결국 사회의 변화와 역사의 진보는 우리 하기 나름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강건하게 버티고, 서로 보듬으며 집단의 지혜를 구하는 강한 연대가 필요한 시절이라 여겨집니다.

 

정연주  ha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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