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는 우정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서 어원을 따져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말들이 꽤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변명하지 마!’라는 말이 있지요. 변명의 한자를 보면 ‘변별하여(辨) 명확하게 밝히다(明).’라는 의미로 사용을 하여야 마땅하나, 현실에서는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말하다.’의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싫어할까? 어린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지 못하는 부모들의 조급증은 ‘변명하지 마!’라는 한마디로 가슴속에 불신과 증오를 자라게 하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윗사람에게는 아무런 표현도 못하고, 아랫사람에게는 또 똑같은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대물림을 주고 있지는 않을까?

노자의 선자불변(善者不辯)을 따와 제가 만들어본 선우불변(善友不辯)의 변(辯)은 말을 잘하다는 의미의 한자입니다. 따라서 ‘변명’의 변(辨)을 말을 잘 한다는 뜻의 변(辯)으로 착각해서 굳어진 말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선우불변은 말 그대로 좋은 친구, 유익한 친구는 변설에 능하지 않다는 의미로 만들어봤습니다.

지금도 어느 술자리에서는 관포지교를 논하고, 지란지교를 꿈꾸며, 도원결의의 맹세를 하고 우정과 의리를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을 것입니다.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클수록 단언컨대 그곳에는 친구가 없습니다. 우정 대신 이용가치를 계산하는 이해타산만 넘쳐납니다.

아마도 진정한 친구는 맑은 바람처럼, 밝은 달처럼 소리 없이 지켜주는 친구일 것입니다. 인생에서 그런 친구가 있으면 참으로 행복하겠지요.

얼마 전에 본 충격적인 기사인데 아픈 마음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암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치료하고자 돈을 빌려야 하는 친구를 위해 보증을 섰던 친구가 자살을 택해야만 했던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암으로 사망하고, 아들은 빚을 갚을 길이 없자 자살을 하고 맙니다. 몇 천만 원의 빚은 보증을 선 친구가 떠안게 되고, 결국 감당이 안 되는 젊은 친구 역시 막다른 길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2017년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이 되질 않습니다.

아마 5-6년도 더 지난 일로 기억이 됩니다. 부인이 사채를 빌려 음식점을 하다 망하고, 이혼까지 해야 했던 대만 친구가 있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그 친구의 어머니가 암으로 수술을 받는다고 하여 십시일반 조금이라도 도울까 했더니 강력히 사양을 하더군요. 입원을 해서 수술을 받는데 국민의료보험으로 몇 백 위엔(기억엔 원화로 2만원)만 내면 된다고 걱정을 말라고 하였습니다.

최근에 다시 물어봤습니다. 그 때 얼마나 들었느냐고? 어머니가 중증환자로 분류되어 감면을 받아 입원 수속비도 1-2천원에 거의 돈이 안 들었다고 합니다. 더 좋은 약을 쓴다고 조금 들었지만 그것도 선택사항이었고, 형제들이 조금씩 나누어 간병인 비용을 부담하는데 그쳤다고 확인해줍니다.

어릴 적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팥 아이스크림이 한 개 5원하던 중학교 시절이었지요. 갑자기 중요한 일인 것처럼 다가와 5원만 빌려달라고, 그래서 주었더니 아이스크림 사먹고 말이 없다가 얼마가 지난 후에 또 와서 5원을 빌려달라고. 요 전에 빌린 5원까지 합해서 10원을 갚겠다고. 어리석게도 또 주었지요. 물론 빌려주는 명목으로. 그 친구는 기억도 안 납니다. 돈도 돌려받지 못했고요.

당시의 기억도 나름 교훈이 되었습니다. 누가 돈을 빌리자고 하면 우선 거절을 합니다. 더 큰 교훈은 받지 못할 돈에 연연해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런 깨달음 내지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아픔과 고통이 컸지요.

사업을 할 때 친한 지인이 돈을 빌리자고 전화가 왔습니다. 20여 년 전, 액수도 크고 사실 부담이 많이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우선 거절을 했지만 마음이 엄청 쓰이지요. 오죽하면 나에게 부탁을 했을까? 혹시 정말 일생일대의 도움이 되는 건 아닐까? 결국 전화를 걸어 통장에 입금을 해주고 역시 받지 못했습니다.

친구라고 찾아와 돈을 빌리자고 하면 거절하기 곤란합니다. 온갖 의리 우정을 다 찾지만 정작 그 친구의 곤란함과 어려움은 나 몰라라 하지요. 만약 거절이라도 하면 천하에 몹쓸 친구, 의리도 없고 상종할 인간도 아니라고 오히려 큰소리칩니다. 백해무익한 친구이지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면 대부분 받을 생각을 포기해야 편합니다. 그래서 내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빌려주지요. 어차피 못 받는 금액인데,

아예 1-2년 내 사무실로 출퇴근을 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4-5명의 유사한 무리들을 거느리고 와 식당에서 음식을 대놓고 먹으니 매달 몇 십만 원이 추가로 나오지만, 밥값에는 후한 같은 민족이라 싫은 내색도 못합니다. 괜히 불평이라도 하면 천하에 좀생이 인간으로 역사에 남게 되겠지요.

어떤 친구는 매번 크지 않은 금액을 빌리자고 합니다. 말끝마다 자기 장부에 모조리 적어둔다고. 나중에 갚겠다고. 전 기대를 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금액이 갈수록 커지고 부담도 됩니다. 핑계를 대며 반만 주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구하라고 몇 번을 하였더니 자연스럽게 멀어지더군요.

우리가 살면서 말이나 글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그래서 드러난 글과 말 보다는 그 이면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지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끝마다 자기 말을 믿으라고 하지요. 그렇게 신뢰할 만한 사람은 못됩니다.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지요. 그의 행동이 신용이고 믿음이니까요.

가훈이 정직이라면서 떠드는 사람은 정직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조상까지 정직하지 못한 집안이라는 걸 광고하는 격이지요. 성직자가 입에 매번 하늘의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사기꾼일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세습은 인간의 뜻이고, 수익이 높은 교회의 목사직 세습은 하늘의 뜻이 맞나요? 아마도 같이 망하라는 뜻이라면 하늘의 공평한 역사가 이루어지겠지요. 그런 사람의 현란한 언변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평생을 기도하고 노력해도 하느님의 뜻을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성직자의 모습에서 진실함을 느낍니다.

은연중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과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매우 주의를 해야 하지요. 수십억을 동네 강아지 이름 부르듯 떠벌리는 인간, 머잖아 호기롭게 친구 찾고 우정과 의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껌 값 이야기 하듯 몇 억 빌리자고 할 것입니다. 덧붙여 꼭 많은 이자를 선심 쓰듯 약속하겠지요. 사기꾼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리 식탐이 많지는 않습니다. 중국 심천에 있을 때 주말에 종종 한인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릅니다. 일요예배가 끝날 무렵에 와서 밥을 먹고 가라고. 사전에 반찬 메뉴를 귀띔 받고 염치불구 찾아가 큰 목소리로 ‘아멘’에 동참하고 잘 먹고 오지요.

대만에는 기독교 인구가 적은 편입니다. 교회 건물 찾기가 쉽지 않지요. 신도가 2% 정도라고 하니 50만 정도인 듯합니다. 최근에 인연이 되어 대만 친구들 몇 명 모아놓고 한글을 매주 화요일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친한 차이 따거(大哥,형님) 소개로 모인 사람들인데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참석한 6명이 모두 개신교 신자들임을 알았습니다.

11월 24일 밤에 추수감사절 파티가 있다고,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와 풍성한 음식이 들어간 추수감사절 사진을 올리며 이 친구들이 함께 가자고 합니다. 달콤한 케이크와 단팥이 듬뿍 들어간 찹쌀떡의 유혹을 어리석은 중생이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그렇게 참석한 파티 사진 몇 장 올립니다.

▲ 저녁 7시부터 시작하는 추수감사절 파티라고 해서 저는 준비해간 음식들을 차려놓고, 찬송가 1-2곡 부르고, 기도 한두 번 하고 나면 늦어도 7시 반에는 식사가 시작될 줄 알았습니다.
▲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기 까지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된 음악회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파티를 먹고 마시며 노는 개념으로만 받아들인 저의 잘못. 정식 이름은 ‘추수감사절 음악회’였습니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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