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55] 終身大事(종신대사)

대만의 흥겨운 결혼식 김동호 객원편집위원l승인2018.02.27l수정2018.02.27 20:47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대만에서 중국어를 배우던 초기에 배운 단어가 있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을 뜻하는 ‘종신대사’입니다. 미루어 짐작해도 결혼이 쉽게 유추가 되더군요. 생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이 없지만, 결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입니다.

지난 25일 결혼을 한 신랑은 30년을 지켜봤던 대만친구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선과 악의 양 극단에 카인과 아벨이 있다면, 친구의 두 아들도 거의 양 극단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그야말로 모범생이었고, 둘째는 부모의 걱정거리였지요. 10분을 한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는 부산한 아이였습니다.

둘째를 처음 봤을 때가 아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친구 부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 왔는데 1990년대 중반으로 기억합니다. 큰 아들은 중학교에 막 입학을 했고, 둘째는 초등학교 상급생이었지요. 

서울시내 구경을 위해 버스로 이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가 엉덩이를 들썩이더니 일어나 이 자리 저 자리 툭툭 치며 돌아다닙니다. 정류장에 도착하여 문이 열리면 승강계단을 잽싸게 내려갔다가 오르기를 반복하고요. 친구 부인이 나무래도 전혀 다른 나라 이야기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를 나무라지 않으신 버스기사님이 감사했지요.

서울에 머무는 동안에는 저의 집에서 잠을 잤는데 아직은 밤공기가 쌀쌀한 6월 말 7월 초 둘째는 혼자 베란다에서 뒹굴 거리며 잠을 잤답니다. 돗자리 깔고.

아마도 충주 부근의 리조트로 기억하는데 우리는 30몇 층에 묵었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며 부족한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가는데, 둘째가 슬그머니 따라 나섰습니다. 고층에서 승강기를 타서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요. 둘째는 타자마자 순식간에 1층까지 서른 몇 개 버튼을 다 눌러버렸습니다.

다시 버튼을 눌러봐도 리셋이 되지 않고 모든 층에 다 섰습니다. 저녁시간이라 타는 사람도 많고, 승강기는 느려터지고, 꼬마는 애 혼자여서 누구나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지만 제가 고해성사를 할 상황도 아니고, 나 아니고 애가 그랬다고 고자질 할 수도 없고 참으로 지루하고 갑갑한 승강기였습니다.

전문대학을 어렵사리 마치고 컴퓨터 관련 회사에 들어가더니 일주일도 못되어 나왔습니다. 다른 곳에 취직을 해도 여전히 적응을 하지 못하는 듯 했고요. 당시 친구 부부의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부인은 둘째 이야기만 나오면 자주 눈물을 보였고 ‘저 놈이 언제 인간이 되느냐’며 만나기만 하면 심하게 부딪혔습니다.

저는 인간이란 100% 선하지도 않고 100% 악하지도 않듯이 둘째가 지나치게 동적이고 피가 뜨거워 한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는 아들이라고 위로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친구 집에는 항상 제가 머물 방이 비워져 있기에 어느 겨울에는 한 달을 꼬박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짧아도 한 번 가면 일주일이었지요. 매년 집에 오라고 부르는 친구도 정상은 아니고, 맛있는 거 안 해주면 더 있을 거라고 우기는 저도 보기드믄 인간입니다.

친척은 물론 모든 지인들이 두통거리처럼 여기는 둘째에게 따뜻한 눈길로 말을 걸고 먹을 거 먹고 다니는지 챙겨주는 사람은 저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친구 부부에게는 하찮은 돌멩이도 쓸모가 있다며 기다리자고 했지요.

자랑스런 모범생 큰아들은 공부를 나름 잘 해서 변호사가 되어 현재 자기 법률사무소를 운영합니다. 사립 명문대 법대를 나와 법원에서 함께 근무하던 여자와 결혼을 해서 딸 둘을 낳았지요.

둘째는 공부 말고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그러더군요. 대인관계도 정말 좋습니다. 몇 년 전에 둘째와 비즈니스관계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데 둘째를 머리가 뛰어나고 기발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레저 스포츠 사업을 하면서 승승장구 하고 있지요. TV 프로에서 둘째가 진행했던 계곡타기 일정이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신부는 대만에서 제일 큰 여행사에 근무하고 있고요.

사업을 일으키기 전에 둘째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부모님이 자기 걱정을 안했으면 좋겠다며, 다른 친구들은 살 집도 없는데 자기는 부모님 덕분에 집 걱정 안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고. 이제 아들들 걱정하지 말고 노후를 편안하게 해외여행이나 다니면서 사시라고.

제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항상 근심거리였던 둘째가 이제는 오히려 부모님을 걱정하는 아들로 자라주었기에 더없이 기뻤습니다.

나중에 둘째가 했던 이야기를 친구 부부에게 해줬더니 둘 다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이른 아침 7시에 신랑과 친구들이 신부 집으로 출발합니다. 길(吉)일인 좋은 날짜를 택하고 또 좋은 시간에 맞춰 신부 집에 7시 50분에 도착을 해야 한답니다. 대만은 함을 보내지 않고, 신랑이 직접 부케를 들고 신부에게 간다고 합니다.

신부 집에 도착을 하자 신부 들러리와 신부 측 친구들이 나와 신랑을 맞이합니다. 그냥 올려보내지 않습니다. 관문을 세 번 통과하는데

첫 번째는 장인, 장모 이름을 한자로 쓰는 문제입니다. 당연히 틀리고, 벌칙으로 콜라를 들이켜야 했습니다. 둘째 관문은 신부 인적사항입니다. 역시 틀리고, 신부 친구들이 주는 벌칙을 받습니다. 어렵게 세번째 관문을 통과하여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신부 집에 들어가자 좋은 일에 먹는 탕위엔(湯圓,탕원)을 신랑 측 모두에게 대접하고, 장모는 신랑에게 금목걸이를 걸어줍니다. 약혼식에서도 걸어줬는데 아마도 변치 않는 금의 특성과 재물을 상징하여 오래토록 부유하게 잘 살라는 의미겠지요.

신부 방에 들어가 부케를 건네며 청혼을 합니다.

거실에 나와 부모님과 할머님께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이별은 언제나 아프지요. 어머니와 마지막 포옹을 합니다.

집을 나서는데 8괘가 그려진 태극방패 가리개로 신부를 보호합니다. 피사(사악한 일을 피하는)의 의미라고 합니다.

신부가 살 집으로 첫 걸음을 옮깁니다. 친구 부부와 큰아들 부부 그리고 둘째 부부도 여기에서 함께 살 것이라고 합니다. 큰 며느리에게 따로 사는 게 자유롭지 않느냐고 하면서, 불편하면 나가살게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자기는 직장생활을 해야 하므로 아이를 봐주는 문제도 있고, 오히려 자기들이 신세를 져야 한다며 함께 사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둘째 신부에게도 나가서 살면 가전제품 하나 사주겠다고 했더니, 자기들도 맞벌이라 부모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함께 살기로 했답니다. 친구 부인이 아직도 고생이지요.

처음 집안으로 들어올 때 숯불이 담긴 화로를 넘고 기와를 발로 밟아 깨고 들어옵니다. 신부 표현에 의하면 화로를 건너는 것은 화기를 받아 아이를 잘 낳으라는 의미인 것 같다고 합니다. 기와를 깨는 것은 파사(사악함을 깨는)의 의미인 듯합니다.

먼저 조상의 위패에 신고를 하고 시부모에게 절을 올립니다.

모범적인 삶을 살고있는 큰아들 부부와 두 딸, 이제 새 출발을 하는 신랑과 신부. 

양가부모가 함께 올라와 참석한 하객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노타이에 평상복이 우리와 많이 다르지요.

결혼식은 모두가 어울려 유쾌하고 흥겹게 진행되며, 먹고 마시며 함께 즐기는 분위기입니다.

신부와 신랑 그리고 신랑 들러리들이 작은 어항에 따르는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좀 걱정이 될 정도였지요.

약 20여명 넘는 하객들이 각자 100위엔 지폐를 내고 가위 바위 보에 참가를 했습니다. 신랑어머니와 몇 분이 찬조를 해서 만 위엔(약 40만원) 가까이 되는 거금을 놓고 예선을 치른 후, 무대 위에서 결선을 했습니다. 최종 우승자가 기뻐하는 모습.

신랑 어머니가 최종우승자에게 상금을 전달합니다. 풍성한 코스요리가 모든 테이블에 올라옵니다.

참고로 약혼식은 지난 해 여름이었습니다. 모든 비용은 신부 측에서 부담을 하며, 신부 측 가족 친지 위주로 식을 치뤘습니다. 결혼식 행사와 거의 비슷하게 진행했습니다. 당시 약혼식에는 신랑 가족석 두 테이블(20명)이 제공이 되었고, 저는 축의금도 내지 않고 신랑 가족석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참석자에게 건네는 선물을 신랑 쪽에서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결혼식은 신랑측에서 부담을 합니다. 신랑 쪽 가족과 친지들이 참여했고, 신부가족에게 두 테이블이 제공되었습니다. 신부 어머니가 손수 만든 천연비누 세트를 신랑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저도 받았지요.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donghokim01@daum.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동호 객원편집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대만이야기 54] 대만의 지진

[대만이야기 53] 한신과 토사구팽(兎死狗烹)

[대만이야기 52] 작은 기쁨 큰 행복-위진동(魏進東)

[대만이야기 51] 대장군 한신의 과하지욕(胯下之辱)

[대만이야기 50] 패왕별희(霸王別姬)와 사면초가(四面楚歌)

[대만이야기 49]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대만이야기 48]선우불변(善友不辯)

[대만이야기 47] 래자불선 선자불래(來者不善 善者不來)

[대만이야기 46]: 동북공정과 서북, 서남공정

[대만이야기 45]:신장(新疆,신강)자치구 여행기-10(최종회)

[대만이야기 44]:신장(新疆,신강)자치구 여행기-9

[대만이야기 43]:신장(新疆,신강)자치구 여행기-8

[대만이야기 42]:신장(新疆,신강)자치구 여행기-7

[대만이야기 41]:신장(新疆,신강)자치구 여행기-6

[대만이야기 40] : 신장(新疆,신강)자치구 여행기-5

[대만이야기 39] : 신장(新疆,신강)자치구 여행기-4

[대만이야기 38] : 신장(新疆,신강)자치구 여행기-3

[대만이야기 37]:신장(新疆,신강)자치구 여행기-2

[대만이야기 36]:신장(新疆,신강)자치구 여행기-1

[대만이야기 35]:논공행상(論功行賞)

[대만이야기 34] : 한고조 유방

[대만이야기 33] : 애견과 애연

[대만이야기 32]:지록위마(指鹿爲馬)

[대만이야기 31]:애정천제(愛情天梯)!

[대만이야기 30]: 진시황과 만리장성

[대만이야기 29] 한국을 사랑하는 대만 여인

대만의 경주, 타이난에서의 한량스런 5일

소박한 나라 대만 1 : 타이베이 중정공원과 용산사

[대만이야기 28]이사의 깨달음

[대만이야기 27]:여씨춘추(呂氏春秋)와 일자천금(一字千金)

[대만이야기 26]:여불위(呂不韋)의 奇貨可居(기화가거)

[대만이야기 25] : 교토삼굴(狡兎三窟)

[대만이야기 24]: 계명구도(鷄鳴狗盜)

[대만이야기 23] : 천하통일의 기초를 닦은 법가 상앙!

[대만이야기 22] : 중국인과 대만인 그리고 한국인

[대만이야기 21] : 지진과 태풍

[대만이야기 20]: 한산사(寒山寺)

[대만이야기 19] : 楓橋夜泊(풍교야박)

[대만이야기 18] : 가깝고도 먼 이웃

[대만이야기 17] : 臥薪嘗膽(섶에 눕고, 쓸개를 맛보다)

[대만이야기 16] :日暮途遠(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대만이야기 15] : 한류의 기원

[대만이야기 14] : 因緣(인연)

[대만이야기 13]:一鳴驚人(일명경인) 초나라 장왕

[대만이야기 12] : 過猶不及(과유불급)

[대만이야기 11] 젓가락과 인품

[대만이야기 10] 端午의 유래!

[대만이야기 9] 傾國之色!

[대만이야기 8] 대만의 슬픈 역사

[대만이야기 7] 太極拳(태극권)과 차이(蔡) 따거(형님)

[대만이야기 6] 대만의 희망 차이잉원(蔡英文,채영문)

[대만이야기 5] 장보고와 정청꽁

[대만이야기 4] 寒食과 介子推(한식과 개자추)

[대만이야기 3] 一切唯心造

[대만이야기 2] 無貪,無忿,無急

[대만이야기 1] 我愛臺灣!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참여소통 데스크  |  전화 : 02)710-0093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김광호  |  에디터 : 이동구  |  부에디터 : 심창식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광호
편집위원 : 김경애, 김미경, 박효삼, 서기철, 안지애, 양성숙, 정혁준, 김국화  |  객원편집위원 : 김동호, 김태평
Copyright © 2018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