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외래 식물 같은 우리나라 고유종 히어리

이호균 주주통신원l승인2018.04.02l수정2018.04.0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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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홍릉수목원에서 만난 히어리

히어리, 이름이 우리나라 식물 같지 않은 나무가 있다. 그래서 외래종으로 오인받기 쉬운 우리나라 토종 나무가 있다. 3월 하순부터 4월초 잎도 채 나오기 전에 노란 벌집처럼 생긴 꽃들이 가지마다 옹기종기 매달려 드리우고 피는 떨기나무가 있다. 늘어진 가지에 위를 향해 하나씩 달려 꽃이 피는 개나리와는 달리 히어리는 여러 개의 작은 꽃들이 가지마다 올망졸망 한데 매달려 드리우고 있다. 얼른 보면 그 모양이 꼭 노란 꽃초롱 같다고나 할까.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화사하고 앙증맞은 꽃송이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하리라.

▲ 오산 물향기수목원에서 만난 히어리

야생화 사이트에서 처음 본 히어리

요즈음은 서울 시내에서도 히어리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홍릉수목원을 비롯하여 아차산생태공원이나 여의도한강공원 등 곳곳에 조성한 공원에 가면 으레 히어리 한두 그루씩은 심어 놓았다. 15년 전 3월 하순경으로 기억된다. 내가 즐겨 찾는 야생화 사이트에 히어리가 올라왔다.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히어리 꽃을 처음 보았다. 가지마다 늘어져 달려 있는 노란 꽃송이가 볼수록 귀엽고 인상적이다. 당장 보고 싶어 수소문을 해보니 남산야외식물원에 가면 이제 막 피었으니 볼 수 있단다.

▲ 아차산생태공원에서 만난 히어리

남산야외식물원에서 첫 대면한 히어리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식물을 만나러 가는 날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 찬다. 주말을 기다려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식물원에 도착했다. 울릉도에서는 삼나물로 더 잘 알려진 눈개승마, 붉은빛이 감도는 새싹이 대지를 뚫고 힘차게 올라온다. 축축 늘어진 짙푸른 줄기에 노란 영춘화도 피기 시작한다. 덩굴식물원 근처 둔덕에서 드디어 히어리를 찾았다. 나지막한 키에 잎이 나지 않은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노란 꽃송이가 따뜻한 봄볕에 화사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지금도 그때 그 인상을 잊지 못해 해가 바뀌면 가까운 식물원에 가서 으레 히어리로 봄을 맞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생지에 생생하게 핀 히어리 꽃을 만나보지 못했다.

▲ 3월 하순 남산야외식물원에서 만난 히어리

국명 ‘히어리’의 유래

일찍이 이 나무를 정태현은 <조선삼림식물도설>(1942)에서 조선납판화(朝鮮蠟瓣花)라 하였다. 중국에서는 히어리 유사종 “Corylopsis sinensis Hemsl.”을 ‘납판화’(蜡瓣花, làbànhuā)라고 한다. 여기서의 ‘蜡’은 ‘蠟’과 같이 쓰이는 밀 ‘납’자다. 정태현은 이 중국명을 원용한 것이다. 납판화는 판화, 곧 꽃잎의 질감이 벌집을 만들기 위하여 벌이 분비하는 누런 빛깔의 물질인 밀납과 비슷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광복 후 정태현의 <한국식물도감(하권 초본부)>(1956)에서는 이것을 송광납판화(松廣蠟瓣花)라고 하였다. 이 나무가 처음 발견된 장소가 전남 순천의 조계산 송광사 근처인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이다. 그 후 이창복은 <한국수목도감>(1966)에서 이 나무를 처음으로 ‘히어리’라고 명명한다. 이우철 <한국식물명고>(1996)에서도 ‘히어리’란 국명을 그대로 쓴다. 산림청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히어리’를 추천명으로 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납판나무라고 한다. 이 밖에 송광꽃나무, 시오리나무, 각설대나무라고도 부른다.

▲ 청양 고운식물원에서 만난 히어리

국명 ‘히어리’의 어원을 찾아서
정태현이 그때까지 이 나무를 ‘송광납판화’라고 한 것을 이창복은 왜 ‘히어리’라고 명명했을까? 이창복은 1960년대 학술조사차 순천 지역에 갔다가 “뒷동산 히어리 단풍들고…”라고 부르는 그 지방 민요 들게 된다. 히어리는 실제 노란 꽃도 깜찍하지만 가을에 노랗게 물든 단풍도 일품이다. 그는 이 노랫말에 나오는 ‘히어리’를 송광납판화와 같은 나무로 보고 중국명 ‘납판화’가 들어간 ‘송광납판화’ 대신 고유어 ‘히어리’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히어리’의 어원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이우철 역시 <한국식물명고>에서 ‘히어리’를 소개하면서 '지리산 지역 방언'이라고만 하였을 뿐 ‘히어리’의 어원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 아차산생태공원에서 만난 히어리

'시오리' 기원설

그렇다면 ‘히어리’라는 이 생경하기 짝이 없는 이름의 기원은 무엇일까? 여기에 몇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시오리’ 기원설이다. 길을 가다가 오리(五里)마다 만나서 이정표를 삼았다는 오리나무처럼 순천 지방에서는 길을 가다보면 시오리(十五里)쯤 떨어진 거리마다 흔하게 이 나무를 볼 수 있단다. 그래서 지금도 그 지방에서는 이 나무를 시오리나무라 부른단다. 그렇게 시오리나무라고 한 것을 후대에 누군가 ‘히오리나무, 히어리나무’로, 언젠가 그냥 ‘히어리’로 이름을 바꾸어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오리’가 ‘히오리’로 변한 데는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 우리말 방언 중에 ‘혀>서, 형>성…’ 과 같이 ‘ㅣ[i]’모음이나 ‘반모음 ‘ㅣ[y]’ 앞에서 ‘ㅎ’이 ‘ㅅ’으로 변하는 음운현상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음운변화는 표준발음으로 인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지적 수준이 낮은 시골사람이 쓰는 말이라고 얕잡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시오리’를 ‘히오리’의 잘못된 발음으로 생각하고 원래의 ‘히오리’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이것이 변하여 ‘히어리’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음운변화로 생각하면 일면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견해도 수긍이 잘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히어리는 오리나무처럼 길가에서 흔하게 만나볼 수 있는 큰키나무가 아니라 떨기나무이기 때문이다.

▲ 3월 26일 오산 물향기수목원에 핀 히어리

‘해여리’ 또는 ‘허여리’ 기원설

다음으로 ‘해여리’ 기원설이 있다. 이 나무는 이른 봄 잎이 나오기 전에 일찍 꽃이 피는 생태적 특성이 있다. 그래서 남부지역 사람들은 이 나무의 꽃이 피는 것을 보게 되면 새로 한 해가 열린다고 생각한다. ‘해를 열다’는 뜻의 ‘해열이’가 후대에 ‘해열이>해여리>히어리’로 변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히어리보다 더 일찍 노란 꽃망울 터트리는 생강나무나 산수유가 있다. 그러므로 히어리를 한 해 여는 꽃으로 보기엔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끝으로 ‘허여리’ 기원설이다. 이 나무의 연노란 꽃잎이나 가지와 잎 뒷면의 색깔이 햇빛에 반사될 때 하얗게 빛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말에 ‘희다, 하얗다’에서 나온 '하얀하리, 하야리, 허여리'와 같은 말이 후대에 변하여 ‘히어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꽃잎도 노랗고 가지와 잎에 그다지 흰빛이 띄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이 역시 억지스럽다. 아직까지 히어리의 어원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셈이다.

▲ 3월 25일 아차산생태공원에 핀 히어리

'히어리'의 외국의 명칭

일본에서는 유사종 “Corylopsis gotoana Makino를 高野水木(コウヤミズキ, 코오야미즈키)라고 부른다. 高野山에서 발견된 '물나무'라는 뜻이다. 아마도 계곡부에 자생하는 생태적 특성에서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홍릉수목원에 가면 히어리와 비슷하면서도 꽃이 풍성하게 피는 '도사물나무'와 ‘일행물나무’가 있는데 이와 유사한 종으로 보인다. 영명으로는 ‘Korean winter hazel’라고 한다.

학명의 명명자와 의미

일본인 수목학자 Homiki Uyeki(植木秀幹, 1882~1977)는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 송광사 근처에서 채집한 이 나무를 기준표본으로 하여 1924년 일본의 “Suigen Gakuho”에 “Corylopsis coreana Uyeki”라는 학명으로 기재하여 처음으로 출판한다. 그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전신인 수원농림전문학교 교수로 우리나라 초기 식물분류학자 이창복, 정태현 교수의 스승이기도 하다. 속명 ‘Corylopsis’는 개암나무속을 뜻하는 ‘Corylus’와 ‘비슷하다’는 뜻의 ‘opsis’의 합성어로 히어리의 소총포가 개암나무의 소총포처럼 마치 투구 모양과 비슷한 데서, 또는 히어리의 잎 모양이 개암나무와 비슷한 데서 유래한다. 종소명 ‘coreana’는 ‘한국의’라는 뜻인데 원산지가 한국임을 밝힌 것이다.

▲ 오산 물향기수목원에 핀 히어리

분포 지역

한반도 고유종인 히어리는 분류학상 조록나무과(Hamamelidaceae)에 해당하는데 우리나라에는 히어리속(Corylopsis)의 히어리 1종과 조록나무속(Distylium)의 조록나무 1종만 자생한다. 히어리보다 더 일찍 피는 같은 과의 풍년화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자생종이 아니라 외국에서 들여온 원예종 재배식물이다. 히어리는 1997년 환경부 선정 보호야생동식물 멸종위기 II급종으로 지정된 바 있다. 그때까지만도 히어리를 희귀종으로 여겼으나 2012년 환경부 야생동식물보호법 개정에서는 이 종을 멸종위기 야생고등식물 II급종에서 해제하였다. 산림청 학술조사단에 의해 경남 하동군과 산청군 등 지리산 지역 산기슭이나 계곡부, 하천변 등에서 50개 개체군에 10,000여 개체 이상이 자생하고 있는 대규모 군락지가 발견되었다. 그뿐 아니라 경기도 광교산에서도 발견되고, 이보다 북쪽인 강원도와 경기도 접경지역 광덕산, 백운산에서도 최근 자생지가 발견되어 북한계선이 새로 설정되고 히어리가 추위에도 잘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전라남도 곡성 희야산에서 만난 히어리 열매

형태적 특성

히어리는 뿌리에서 움이 많이 올라와 무리를 이루며, 줄기는 회갈색, 높이 2~7m, 지름 3~5cm 정도로 자라 가지가 많이 뻗는 낙엽활엽 떨기나무이다. 어린가지는 갈색이고 털이 없으며 껍질눈이 촘촘하게 발달한다. 잎은 어긋나게 달린다. 잎몸은 달걀 모양의 둥근형 또는 심장형, 길이 5~11cm, 너비 7~10cm이고, 잎끝은 길게 뾰족하고, 잎밑은 심장형으로 움푹 파여 있다. 잎가장자리는 뾰족한 톱니가 있다. 잎맥은 부챗살처럼 측맥이 뚜렷하고 중앙맥은 측맥이 나란히 나온다. 잎자루는 길이 1.5~2.8cm, 털이 없다. 잎 앞면은 초록색이고 뒷면은 녹색을 띤 하얀색으로 털이 거의 없다. 가을에 노랗게 단풍 든다. 꽃은 3~4월 잎이 나기 전에 고깔 모양의 밝은 노란색 작은 꽃 양성화가 5~12개씩 초롱 모양의 총상꽃차례에 늘어져 달린다. 꽃차례 길이는 3~4cm이다. 기부의 꽃싸개는 긴 달걀형 막질(膜質)이며 양면에 털이 있다. 꽃받침열편, 꽃잎, 수술은 각각 5개, 꽃밥은 길이 5~8mm, 자줏빛 빨간색, 노란색, 갈색 등 다양하다. 꽃잎은 도란형이고 끝이 둥글다. 암술대는 2개, 길이 7~8mm이다. 열매는 삭과, 지름 7~8mm의 넓은 도란형 내지 구형이며 9월에 익는다. 열매 윗부분에는 뿔처럼 암술대의 흔적이 남는다. 종자는 장타원형, 2~4개가 들어 있는데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다. 성숙한 열매가 다 마르면 속의 종자가 '탁'하고 튀어나간다.

▲ 남산야외식물원에서 만난 히어리 열매

히어리의 이용

히어리는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피는 노란 꽃이 화사하고, 가을철 노랗게 물든 단풍이 아름다워 조경수, 정원수, 산울타리로도 인기가 높다. 가을에 씨앗을 받아서 햇빛에 말리지 말고 노천에 매장하거나 4~5°C의 저온 상태에서 100일쯤 습윤 저장해 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씨를 뿌리면 발아율도 70~80%나 된다고 한다. 봄이 왔음을 알려 주는 꽃을 일찍 보고 싶으면 정원이나 화단, 울 안 빈터 어디에라도 심어봄 직하다. 나무껍질과 잎은 약용한다. 중국수목지에 의하면 번잡함, 혼미함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광교산 히어리를 보고 싶다

식물원에 가면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식물종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접하는 감흥도 떨어지고 그 종에 대한 특징이 머릿속에 오래 남지 못해 쉽게 잊힌다. 뜻하지 않은 자생지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식물을 만나 이게 뭘까 하는 강한 의문을 품고 사진에 담아 와 도감에서 찾아내면 머릿속에 쏙 들어가 오래 기억된다. 몇 년 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에서 주관하는 합동조사차 전라남도 곡성 희야산에 갔다가 열매 달린 히어리를 만난 적이 있다. 며칠 전에는 경기도 오산 물향기수목원에 가서 갓 핀 히어리 꽃을 만나보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생지에서 생생한 히어리 꽃을 만나보진 못했다. 경기도 광교산 자락에도 히어리가 자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맘때쯤이면 그곳에도 꽃이 피었으리라. 생생한 히어리 꽃을 자생지에서 만나보고 싶다. 내주엔 광교산에 가 봐야겠다.

▲ 청양 고운식물원에서 만난 히어리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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