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라산 윗세오름 근처에서 만난 구상나무

김대중 대통령은 왜 구상나무를 심었을까?

왜 구상나무를 심었을까? 김영삼 대통령은 캐나다 국기에도 들어 있는 설탕단풍나무(Sugar Maple)를 심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터넛 히코리(Bitternut Hickory)라고 하는 캐나다 가래나무 종류를 심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구상나무를 심었다. 작년 여름 캐나다 동부 여행 때 수도 오타와 시에 있는 총독관저 리도 홀(Rideau Hall) 정원을 둘러볼 때 생긴 의문이다. 잘 정리된 진입로 좌우로 큰키나무 활엽수인 아름드리 단풍나무 종류가 숲을 이룬다. 숲 속 여백 군데군데에 각국의 정상급 국빈들이 캐나다를 방문할 때 기념식수한 나무와 그 앞에 표석이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기념식수한 수종이 궁금하여 눈여겨 살펴보았다. 김영삼, 박근혜 대통령이 심은 나무는 캐나다 자생식이라서 그럴까 튼실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심은 나무는 어딘지 허약해 보인다. 입지 조건이 잘 맞지 않아서일까?

▲ 캐나다 총독관저에 김대중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구상나무

구상나무 국명의 유래

제주도 한라산 영실에서 출발하여 병풍바위를 지나 윗세오름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전나무 비슷하게 생긴 바늘잎나무 군락을 만나게 된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유난히 짙푸른 빛깔에 은빛이 감도는 잎을 달고 거센 풍상에도 꿋꿋이 견뎌온 나무들, 이게 바로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라는 국명은 <조선식물향명집(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 1937)>에 처음 등장한다. 북한에서도 구상나무라고 부른다. 한자명으로 ‘제주백회(濟州白檜)’라고도 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구상나무를 '쿠실낭' 또는 ‘상낭’이라고 부른다. 제주도 방언으로 '쿠실'은 ‘성게’를, '낭'은 ‘나무’를 뜻한다고 하니 ‘쿠실낭’은 잎이 마치의 성게의 몸통에 달린 가시처럼 생긴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낭’은 ‘향낭’이 변한 말로 제사 때 피우는 ‘향나무’의 제주도 방언이다. 실제 제주도에서는 제사 때 향나무 대신 이 나무를 사용한다는데 그 향이 매우 진하고 그윽하다고 한다. 혹자는 구상나무 구과(毬果)의 뒤로 젖혀져 있는 실편(實片)이 갈고리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갈고리 구(鉤), 모양 상(狀) 자를 써서 '鉤狀나무'라고 쓰기도 하지만 한자를 좀 안다는 사람이 지어낸 민간어원으로 여겨진다.

▲ 경기도 가평 연인산 정산에 식재한 구상나무

구상나무의 분포와 형태적 특징

구상나무는 전북 덕유산, 전남 무등산, 지리산, 경남 가야산, 제주도 한라산 등 해발고도 1,000m 이상 산지 사면이나 능선부에서 주로 자란다. 잎이 사계절 늘푸른 바늘잎 모양이고 높이 18m, 지름 1m 정도 자라는 큰키나무다. 어린 나무의 줄기는 겉이 밝은 회색이고 매끄럽지만 오래된 나무는 껍질이 거칠게 갈라진다. 어린가지는 처음에는 황색이지만 차츰 털이 없어지면서 갈색으로 변한다. 겨울눈은 계란 모양 원형이며 배어나온 약간의 나무진에 덮여 있다. 잎은 길이 15~25mm의 거꾸로 된 피침 모양의 선형인데 끝이 갈라져 오목하게 들어가 있어 손으로 만져도 부드럽다. 잎 뒷면에는 흰색의 기공선(氣孔線)이 있어 멀리서 바라보면 나무 전체가 희게 보인다. 암수한그루이며 4~5월에 수분(受粉)하는데 아래쪽에 달리는 수구화수는 타원형이고, 가지 위쪽에 달리는 암구화수는 짙은 자주색, 녹색, 검은색 등 다양하다. 솔방울 모양의 구과(毬果)는 길이 4~6cm, 폭 2.5cm 정도의 원형이며 녹갈색 또는 자갈색을 띤다. 구과의 실편(實片)은 끝이 노출되어 뒤로 젖혀지는데 길이 9mm, 폭1.8mm 정도이다. 종자는 계란 모양의 삼각형이고, 연한 갈색을 띠며, 길이 6mm 정도, 날개가 달려 있다.

▲ 구상나무 암구화수
▲ 구상나무 수구화수

우리나라 소나무과 전나무속 식물들

소나무과(Pinaceae) 전나무속(Abies) 식물은 주로 한반도, 중국 동북부, 러시아 동부, 몽골 등 북반구 한대지방에 분포하는 북방계식물이다. 분류학적으로 겉씨식물문 소나무과(Pinaceae) 전나무속(Abies)은 솔방울 모양의 구과(毬果)가 위쪽을 향해 곧추서서 달리는 특징이 있어 다른 소나무과 식물과는 구분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전나무속 식물에는 전나무, 분비나무, 구상나무 등이 있다. 그중 전나무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나 분비나무는 소백산, 치악산, 화악산, 설악산 등 한반도 중북부 지역 높은 산에 주로 분포한다. 구상나무는 전라북도 덕유산을 북방한계선으로 하여 제주도 한라산까지의 높은 산에 자생한다. 구과의 빛깔에 따라 푸른구상, 검은구상, 붉은구상 등의 품종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생태적 변이로 간주하여 구상나무에 포함하기도 한다. 분비나무도 구과의 빛깔이 푸른 것을 청분비나무라는 품종으로 구분하는 이가 있다. 한편 우리나라 자생종 전나무 외에 도입종 일본전나무가 있다. 주로 공원이나 도로가에 관상수나 조경수로 식재한 것은 대부분 일본전나무다.

▲ 한라산 윗세오름 근처에서 만난 붉은구상나무

구상나무가 전나무, 분비나무와 다른 점

분포역이 가장 넓은 전나무는 구상나무나 분비나무와는 달리 잎끝이 갈라지지 않고 뾰족하여 손으로 만질 때 따가울 정도며, 구과도 상대적으로 훨씬 크고 나무껍질이 거칠어 쉽게 구별된다. 구상나무는 외형상 분비나무와 매우 흡사해서 전문가도 두 종류를 명확히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구상나무는 분비나무에 비해 잎이 약간 짧고 넓으며, 구과(毬果)에 달린 실편(實片)의 끝이 뒤로 젖혀지는데 분비나무는 구상나무에 비해 잎이 약간 좁고 길며, 실편(實片) 끝이 뒤로 젖혀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 실편이 젖혀지지 않는 분비나무의 구과
▲ 실편이 아래로 젖혀지는 구상나무의 구과

한국 특산식물인 구상나무

구상나무는 한국 특산식물이다. 캐나다 여행 당시에는 우리나라 고유종이란 사실을 미처 몰랐다. 나중에야 알고 그 궁금증이 풀렸다. 구상나무 하면 그저 우리나라 자생종인데 외국에 반출된 후 육종되어 서구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용으로 인기가 높아 비싼 가격에 제일 많이 팔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지금은 국외 반출 시 반드시 승인을 받아야 할 대상종이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께서 캐나다 방문 시 기념식수할 나무를 우리나라에서 미리 준비하여 가져갔을 리는 없다. 아마도 총독관저 관계자들이 기념식수할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들을 제시하고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심게 했을 것이다. 그때 대통령 수행원 중 누군가, 혹은 캐나다 공관 측에서 구상나무가 한국 특산식물이란 사실을 귀띔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캐나다 자생식물을 택하지 않고 왜 우리나라 토종 구상나무를 선정했을까? 그분께서는 이왕이면 캐나다에 한국을 심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 한라산 윗세오름 근처 기후변화로 고사해 가는 한국특산종 구상나무

한반도의 생물다양성과 한국 특산식물

한국 특산식물이란 우리나라에서만 생육하는 고유한 식물종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영원히 멸종되는 식물종이란 뜻이다. 현재 지구상에 생육하는 생물종의 수는 500만~1,100만 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중 현재까지 학계에 발표된 기록종의 수는 약 190만 종으로 집계되어 있다. 이 중 식물은 약 39만 종 정도, 그중 기록종의 수는 약 29만 종으로 보고되어 있다. 한반도는 백두대간을 축으로 산림생태계가 근간을 이루고, 남북으로 긴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난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생대가 분포한다. 그래서 온대지역 국가 중 국토 면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식물다양성이 높아 동일 면적의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종 다양성이 매우 풍부할 뿐 아니라 고유성도 높은 편으로 평가된다. 현재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한반도에는 약 45,295종의 다양한 생물들이 생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식물은 217과 3,461종류의 관속식물이 자생하는데, 이 중 양치식물 277종류, 겉씨식물 52종류, 속씨식물 3,122종류로 보고되어 있다. 또한 한반도에는 고사리삼과의 제주고사리삼속, 미나리아재비과의 모데미풀속, 물푸레나무과의 미선나무속, 초롱꽃과의 금강초롱속, 장미과의 금강인가목속, 산형과의 덕우기름나물속 등 7가지의 한반도 특산속과 함께 총 455종류의 한반도 특산식물이 생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상나무는 455종류의 한반도 특산식물 가운데 하나이다.

<2편에 계속>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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