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붉은 열매로 다시 피어나는 산수유나무

이호균 주주통신원l승인2018.01.16l수정2018.01.2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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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제천 청풍호 근처 늦가을 알알이 달린 산수유나무 열매가 꽃처럼 붉다.

성인병에 좋다고 알려진 산수유(山茱萸)는 우리나나 토종이 아니다. 열매를 약재로 쓰기 위해 중국에서 도입한 외래종이다. 주로 산간 마을 근처 빈터에 심어 길렀다. 내가 나고 자란 고장은 농촌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일찍이 그 이름조차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산수유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김종길의 시 「성탄제(聖誕祭)」 에서다.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중략)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아버지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열매가 이러했을까.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산수유, 그땐 그저 열병을 치유하는 약재요, 지금은 안 계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매개체 정도로만 생각했다.

어느 해 겨울 군생활하는 동생 면회차 경기도 양평군 지평을 지나다가 어느 산간 마을 어귀 자연 속에 서 있는 진짜 산수유나무를 처음 만났다. 산천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는 한겨울 도로가 밭둑에 붉은 열매를 다닥다닥 매달고 서 있는 산수유나무, 하이얀 눈과 대비되어 더욱 붉게 보이는 산수유 열매가 지금도 눈앞에 선연하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라는 시구(詩句)에서 육친간의 애틋한 정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 산수유나무 열매는 귀중한 한약재로 산간 마을의 중요한 소득원이 되기도 한다.

산수유는 꽃을 보기 어려운 때에 노란 꽃망울을 일찍 터뜨려 봄이 왔음을 알려 줄 뿐 아니라 흰 눈으로 뒤덮인 삭막한 겨울철엔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정경이 아름다워 요즈음 공원이나 정원의 조경수로도 각광을 받는다. 또한 산수유 열매는 귀중한 약재로도 알려져 있다. 열매에서 씨를 발라내고 햇볕에 과육 말린 것을 생약명으로 석조(石棗), 촉조(蜀棗), 육조(肉棗)라고 하여 약용한다. 이것을 빻아 가루로 직접 복용하기도 하고 설탕과 함께 10배의 소주에 담가 술을 만들어 먹거나 물에 달여 차로 마시면 피로 회복과 자양강장에 효과가 크며 회춘(回春)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두통이나 이명, 해수병, 해열 등에 약재로 쓰며 민간에서는 식은땀, 야뇨증 치료에도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산수유 특산지인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과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경상북도 의성군 등에서는 산수유 꽃이 만발할 즈음에 해마다 산수유 축제를 한다.

▲ 전라북도 부안 내소사 온갖 풍상을 겪어온 산수유나무가 대웅전을 지키고 서 있다.

산수유는 이른 봄 잎이 나기 전 가지에 노란색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핀다. 멀리서 보면 생강나무와 흡사하여 잘 구별되지 않는다. 식물 공부를 시작한 지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야 그 차이점이 눈에 들어왔다.

▲ 상단 왼편 :산수유나무 꽃은 작은꽃자루가 길다 / 상단 오른편 : 생강나무 꽃은 작은꽃자루가 짧다. /

      하단 왼편 : 산수유나무 열매 길쭉하고 붉게 익는다 / 하단 오른편 : 생강나무 열매는 둥글고 검붉게 익는다.

눈높이를 낮추고 찬찬히 관찰해 보면 산수유나무는 생강나무에 비해서 작은꽃자루가 더 길고 꽃잎이 뒤로 발랑 젖혀진다. 또한 나무껍질이 산수유는 너덜너덜 벗겨지고, 가을이 되면 팥알 보다 큰 타원형 열매가 붉게 익는다. 이에 비해 생강나무는 나무껍질이 매끈하고 열매도 둥글며 갈색으로 익으므로 전혀 다르다. 또한 산수유나무는 식재하는 나무기 때문에 산 속에서는 볼 수 없다. 이른 봄 산 속에서 알싸한 향기를 내며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은 다 생강나무라고 보면 틀림없다.

▲ 분당 탄천공원에도 산수유나무 노란 꽃이 활짝 피었다.

산에서 자라며 한약재로 쓰는 ‘茱萸’ 열매가 달리는 나무란 뜻의 ‘산수유’라는 국명은 이창복 <대한식물도감(1980)>에 의한 것이다. 물론 중국 한자명 ‘山茱萸’에서 유래한다. 이보다 먼저 정태현 외 3인의 <조선식물향명집(1937)>에서는 ‘산수유나무’라고 하였다. 북한에서도 ‘산수유나무’라고 부른다. 또한 박만규는 <우리나라식물명감(1949)>에서 ‘산시유나무’라고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감나무, 대추나무, 은행나무’의 열매를 ‘감, 대추, 은행’이라고 하듯 산수유도 산수유나무의 열매를 지칭하므로 산수유보다는 산수유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산수유를 학명으로 ‘Cornus officinalis Siebold & Zucc.’ 라고 한다. 속명 ‘Cornus’는 '뿔'을 뜻하는 라틴어 ‘Cornu’에서 유래하는데 나무의 재질이 뿔처럼 단단한 것과 연관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종소명 ‘officinalis’는 '약효가 있는' 이라는 뜻인데 열매에 약효가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열매 산수유를 약용한 것은 동서양에 공통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산수유나무의 학명은 네덜란드 식물분류학자 Siebold(1796~1866)와 독일의 식물분류학자 Zuccarini(1797~1848)가 나무의 재질이 단단하고, 그 열매에 약효가 있다는 뜻을 감안하여 명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 이른 봄 산촌 계류가에 만발한 산수유나무 꽃과 함께 봄이 찾아온다.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산수유나무는 원산지인 중국 산둥반도 이남의 숲 가장자리나 산사면에 자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약재용으로 도입되어 중부 이남의 마을 주변이나 집 근처에 식재한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미국산 산수유 품종을 도입하여 주로 관상용으로 심어 기른다. 높이 4~8m 정도로 자라는 낙엽소교목으로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나무껍질은 연한 갈색 또는 회갈색을 띠는데 오래되면 불규칙하게 너덜너덜 떨어진다. 꽃눈은 겉에 누운 털이 밀생하는 비늘조각 2개가 감싸고 있는데 길이 2.5~4mm의 장타원형으로 가늘고 길다. 잎은 마주나며, 길이 4~10cm, 폭 2~6cm의 난형 또는 긴 난형이다. 잎끝은 날카롭게 뾰족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 앞면은 녹색이며 털이 나 있고, 뒷면은 연한 녹색 또는 흰빛이 돌며, 털이 있다. 잎자루는 길이 5~10mm이며, 털이 나 있다. 꽃은 3~4월에 잎보다 먼저 피며, 20~30개가 산형꽃차례를 이루고, 지름 4~5mm, 노란색이다. 꽃자루는 가늘고, 길이 1cm쯤, 털이 난다. 열매는 핵과로 길이 1.0~1.5cm의 긴 타원형이며 9~10월에 붉게 익는다.

문득 쌍둥이 손자들이 보고 싶다. 쌍둥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앞쪽 화단에는 내 키보다 더 큰 산수유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었다. 나는 어린이집 앞 화단을 서성이다가 하루 일과가 끝날 때를 기다려 손자를 데리고 나와 종종 식물 체험학습을 시키곤 했다. 따사로운 봄볕이 대지를 어루만질 때쯤이면 산수유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달린 작은 꽃송이들이 한데 어울려 하나의 커다란 꽃다발처럼 피어났다. 작은 꽃가지 하나를 꺾어 “상화야, 이게 산수유 꽃이야!” 하면 “응, 참 예쁘네!” 하며 코에 대고 향기를 맡아 보곤 했다. 서리가 내리고 단풍나무, 은행나무 잎들이 곱게 물드는 가을철이 되면 팥알보다 더 굵고 실한 산수유 열매가 알알이 익어 갔다. 열매가지 하나를 꺾어 보이며 “상유야, 이게 산수유 열매야!” 하면 “할아버지, 이거 먹을 수 있어?”하고 묻곤 했다.

▲ 산간마을은 산수유나무 열매가 알알이 붉게 익어 갈 때 더욱 정겹다.

내일은 기온이 뚝 떨어져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된다고 예보한다. 쌍둥이 손자들은 내 곁을 훌쩍 떠나 버렸다, 멀리 이국 캐나다로. 벌써 두 해가 지나간다. 오늘 따라 쌍둥이 빈자리가 왜 이렇게 썰렁할까. 북아메리카 그곳은 지금 얼마나 추울꼬?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꽁꽁 얼어붙는 살인 한파라는데…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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